“회사 결정에 따라서 저는 오늘자로 물러납니다. 지난 일 년여, 제가 지닌 원칙은 자유, 민주, 힘에 대한 견제, 약자 배려, 그리고 안전이었습니다. 하지만 힘은 언론의 비판을 이해하려고 하지 않아서 답답하고 암울했습니다. 구석구석과 매일 매일, 문제가 도사리고 있어 밝은 메시지를 전하지 못해 아쉬웠지만, 희망을 품은 내일이 언젠가 올 것을 믿습니다. 할 말은 많아도 제 클로징 멘트를 여기서 클로징하겠습니다.” (지난 2009년 4월13일, 마지막 클로징코멘트)

클로징코멘트를 기억한다. 권력과 자본, 힘 있는 사람들에 대한 날카로운 비판이 담긴 그의 클로징코멘트를. 원칙과 상식에 입각한 그의 날카로운 비판을 누군가는 환호했고, 누군가는 불편해 했다. “할 말은 많아도 여기서 클로징하겠다”는 다소 비장한(?) 말과 함께 화면에서 사라진 지 1년 하고도 수개월이 지났지만, 여전히 그는 사람들의 머릿속에 ‘언론인’으로 남아있다. 신경민 전 <뉴스데스크> 앵커가 바로 그다.

▲ 지난 2008년 4월, 서울 여의도 MBC본사 ⓒ미디어스
요즘 그는, 뉴스로 전하지 못한 코멘트들을 트위터를 통해 쏟아내고 있다. 때로는 분노하고, 때로는 비판하고, 때로는 칭찬하기도 한다. 그의 한 마디 한 마디에 수많은 트위터리안들은 열광한다. 적어도 그는, 누리꾼들 사이에서 살아있는 존재다.

지난 17일 오후, 서울 여의도 MBC본사에서 신경민 기자를 만났다. 따뜻한 핫초코 두 잔을 앞에 두고, 인터뷰를 시작했다. 지난 10월 안식년을 맞이한 그는, 기자로서의 삶에서 한 발 더 나아가 교수로, 학생으로 맹활약하고 있다.

먼저, 현재의 일상을 물었다.

“안식년이기 때문에 출근의 의무는 없다. 학교를 왔다 갔다 한다. 강의 준비하고, 강의하고, 공부도 하고 그런다. 강연 일정이 조금 있다. 일주일에 많을 때에는 2~3번 있다. 1년 전 책을 출간한 것에 대한 영향이 있는 것 같다. 주로 대학과 NGO단체 등에서 강연을 한다. 그렇기 때문에 숙제할 시간이 없다.(웃음)”

MBC의 결정으로 원하지 않게 앵커를 그만두게 됐지만, 신경민 기자를 향한 사람들의 관심은 계속 이어졌다. 지금도 여전하다. 특히 그가 트위터에 남긴 한 마디 한 마디는 수많은 RT(퍼나르기)가 되고 있으며, 때로는 의도하지 않게 언론의 주목을 받기도 한다.

그는 이러한 현상에 대해 “왜 화제가 되는지 이해가 되기도 하고, 안 되기도 한다”는 아리송한(?) 답을 했다.

그는 “뉴스 클로징을 할 때도 그렇고, (트위터를 할 때도) 굉장히 상식적인 이야기를 하는 것뿐”이라며 “그만큼 상식적인 이야기를 하는 사람이 많지 않다는 반증이고, 그만큼 비상식적인 사회에 살고 있다는 얘기다. 어떻게 보면, (이러한 것들은) 우리 언론이 다뤄야 할 사안이고, 생각해봐야 할 사안이라는 것을 말하는 것일 수도 있다”고 밝혔다.

‘관심이 부담스럽지는 않냐’고 묻자 “너무 당연한 이야기를 했는데 관심이 쏟아지면, 조금 부담스러울 때도 있다”고 솔직한 속내를 털어놨다.

신경민, 방송 뉴스에 관심을 끄다

▲ 신경민 기자 ⓒ송선영
신경민 기자는 요즘 뉴스를 잘 보지 않는다. MBC 메인 뉴스를 진행하던 그가 방송 뉴스를 잘 보지 않게 된 이유는 무엇일까? ‘방송 뉴스가 현안을 제대로 다루고 있다고 볼 수 없다’는 게 가장 큰 이유다. 사안에 대한 충분한 정보, 현안에 대한 이해, 판단 등이 방송 뉴스로부터 얻을 수 있는 것들이지만, 현재 방송을 통해 이런 것들을 얻을 수 없다는 게 신 기자의 진단이다.

그는 방송 뉴스를 보지 않는 대신, 신문과 인터넷을 열심히 본다고 했다. ‘그 자체가 미디어 기능을 갖고 있는’ 트위터도 일정한 시간에 하고 있다는 점도 덧붙였다.

신경민 기자가 <뉴스데스크> 진행을 그만둔 뒤, 앵커의 주관을 갖고 코멘트를 하는 앵커들을 찾기 어렵게 됐다. 뉴스 전달, 그 자체에만 초점을 두고 있는 대다수 방송사 앵커들을 바라보는 그의 솔직한 속내가 궁금했다. 그래서 물었다. ‘요즘 뉴스 앵커들을 바라보는 속내는 어떠하냐’고. 그러자 그는 “누가 목숨을 걸고 (비판적인 코멘트를) 하겠냐”며 허탈한 웃음을 지었다.

“현재 MBC뉴스, 뉴스의 본령에서 벗어나”

더 나아가, MBC보도에 대한 평가도 부탁했다. 그러자 “주중에 공부하느라 뉴스를 거의 안 보고, 주말에도 별로 안 본다”는 냉정한 한 마디가 돌아왔다. 그러면서 “주말에 최일구 앵커가 뉴스를 진행한다고 하던데, 나는 뉴스에서 재미를 찾으면서 보고 싶은 생각은 없다”는 의미심장한 한 마디를 덧붙였다.

“MBC뉴스를 잘 보지는 않지만, 세간의 평에 대해서는 안다. 구체적으로 잘 모르겠지만, 현안에 대해 잘 다루지 않는다는 느낌은 받는다. 현안을 피해간다는 느낌. 사정은 짐작하지만 그게 뉴스의 본령은 아니다. 어려울 것으로 생각된다. (그러나) 처음 있는 일은 아니고, 과거 80년대에는 이보다 더 어려운 상황에서 뉴스를 했다. 언론을 아무리 통제하려 해도, 어느 사회나 여론이라는 게 있다. 언론이 아무리 입을 다물더라도 진실, 사실에 대해 평가를 하는 여론은 존재한다고 본다. 그 때보다 나아졌는지는 모르겠지만, (적어도) 그때 당시에는 노력은 했다고 볼 수 있다. 당시 뉴스를 개판이라고 보는 사람들도 많았지만, 다만 한 쪽 구석에는 잘하기 위해 노력하는 분위기가 있었다.”

한 때, 신경민 기자의 정치 입문 여부가 주요한 관심사가 되기도 했다. 그는 지난 7.28 재보선을 앞두고 은평을 출마설이 거론되자, 트위터에 ‘당시 은평을을 생각하지 않기로 했다’고 밝히며 출마 의사가 없음을 분명히 했다.

“인터넷, 신문 등 언론에 주로 소식이 뜨더라. 당에서 내 의지와 상관없이 이름을 오르내렸고. 나한테 와서 이야기한 것은 시기가 임박해서였다. 그래서 며칠 생각해 본 거다. 당시 여건이 정치, 은평을을 생각할 만한 상황도 아니었다. 언론에 오르내린 게 한 달 이상 되었기 때문에 사람들의 인상에는 ‘신경민이 오랜 시간동안 고민한 것’으로 남아 있었을 거다. 아마 6.2 지방선거 직후부터 이름이 나왔으니까. 그러나 고민한 시간은 며칠 안 된다.”

그는 ‘내년, 어떤 삶이 되길 기대하냐’는 질문에 “결정된 것은 없다”면서도 “언론 쪽에서 계속 일하고 싶은 마음이 제일 크다”고 말했다.

그는 “우리 사회에서 정치 뿐 아니라 언론의 역할, 기능도 중요하기 때문에 언론 쪽에서 계속 하고 싶은 마음이 제일 크다”며 “언론이 발전하지 않고는 정치, 사회가 발전할 수 없다. 언론이 해야 할 일이 굉장히 많다”고 강조했다. 이어 “MBC에서 일을 할 수 있을지, 다른 언론에 갈 수 있을지 등 결정된 것은 없다”며 “대학교 강의는 열심히 할 생각이고, 들을 생각”이라고 덧붙였다.

▲ <신경민, 클로징을 말하다> 책 표지
가벼운 마음으로 신경민 기자에게 <미디어스> 독자들을 향한 새해 인사를 부탁했다. 그러자 생각했던 것 이상으로 무거운(?) 답변이 되돌아왔다. 다소 희망찬(?) 대답을 기대했던 터라 ‘너무 무거운 것 아니냐’고 되묻자, 그는 “새해 인사가 가벼울 수는 없다”는 점을 재차 강조했다.

“올 해 돌아보면 우리가 예상했던 것보다 더 소란했던 한 해가 아니었나 싶다. 특히, 연평도 포격이라 부르는 사건, 나는 연평도 사변이라고 하는 게 더 정확한 표현이라고 본다. 이 정도의 사변은 근래에 없었던 일이다. 심각한 문제를 보여준 거다. 현 정권의 문제도 있지만 수 십년 동안 누적된 역대 정권들의 문제가 한꺼번에 드러난 것이다. 이에 대한 적절한 해석, 개선, 개혁 등을 해줘야 하는데 우리 사회가 그런 역량을 갖고 있지 못한 것 같다.

2011년, 잘 준비해서 2012년을 맞이해야 하는데 잘 할 수 있을지 걱정이다. 민주화 이후 굉장히 많은 경험을 했는데 이를 제대로 해석하고 그 위에 적절한 행동을 할 수 있느냐가 2011년에 결정될 거다. 새해 인사가 가벼울 수는 없다. (각 사안에 대한) 메시지 분석도 언론이 제대로 못하고 있다.”

한편, 인터뷰가 끝난 뒤 신경민 기자는 지난 17일 자신의 트위터를 통해 이렇게 밝혔다.

“인터넷 언론전문매체 ‘미디어스’와 ‘시리즈:올해 언론계 인물’로 인터뷰 가졌습니다. 난감한 질문들이 많아 답을 하지 못했습니다. TV뉴스 보느냐? 안 본다면 왜? 최일구 앵커 뉴스 어떻게 보느냐? 내년 전망은? 등..시원하게 얘기할 기회 올까???”

난감한 질문들을 많이 한 것에 대한 죄송스러운 마음이 앞선다. 그러면서도, 모든 것을 시원하게 이야기 할 수 있을 그 때, 아니 이야기해도 되는 그 시점에 다시 한 번 인터뷰를 해주십사 정중하게 요청 드리고 싶다는 말을 함께 덧붙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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