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KBS 2TV 개그콘서트의 '두분토론'
분명한 '증거'가 있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권력의 드나듦에 따라 대중문화가 사투리를 차용하는 양상이 변해왔던 것만은 분명하다.

'지방색 짙은 사투리 영화'의 붐을 불러일으키며, 충무로 아이템에 일대 혁신을 가져왔던 불세출의 조폭영화 <친구>는 2001년 작품이다. 50년 보수 정권이 종결된 직후였다. 그리고 헌정 사상 최초의 정권교체는 동시에 한국사회를 지배해왔던 언어 권력을 교대시켰다. 아직도 대중문화의 소재로 활용되고 있는 "네가 니 시다바리가", "니가 가라 하와이"의 기억은 그래서 더 강렬했다.

98년을 기점으로 정가를 주름잡았던 영남 사투리의 위세는 급격히 위축되었고, 3호선 안국역에서 청와대로 올라가는 길에는 '홍어의 명가'들이 자리를 잡았다. "우리가 남이가"로 대변되던 경상도의 나눠먹기는 '서해안 시대'라는 미래지향적 컨셉에게 자리를 내줬다.

대중문화의 역사적 유의성에서 2001년 작 <친구>에서 주목할 것은 바로 이 지점이다. 이전의 대중문화 텍스트가 상정했던 '조폭'의 출신 성분이 <친구>에 이르러 뒤집어졌다. 한국 대중문화에서 '조폭'은 대체로 전라도 출신이었다. "워메, 징한거~", "워치키, 요로코롬 됐을까잉", 확, 조사뿔라" 등 조폭에 관한 우리의 일반적 연상은 언제나 전라도 사투리를 경유해왔다. 사회적 실패자의 캐릭터를 강화하기 위한 장치로서의 사투리는 언제나 진한 전라도의 것이 당연시됐었다.

서울말의 위세가 아무리 대단해도 비공식적으로 50여 년 이상 사회를 지배해온 권력의 언어는 경상도 사투리였다. '조폭' 등의 하층 직업군을 통해 대중문화가 밑바닥 정서의 아우라를 만들고 표현하는데 있어 경상도 사투리를 사용한다는 것은 격이 맞지 않았다. 경우에 따라 불경한 짓이 될 수도 있는 문제였다.

이러한 한국 대중문화의 공통된 자기 검열의 굴레를 <친구>가 비로소 끊어낸 것이다. 연출자가 어디까지 염두에 두었는지는 확인할 수 없지만, 단언하건데 DJ정권이 등장하지 않았다면 우리가 <친구>를 2001년에 만나긴 힘들었을 것이다.

사투리가 대중문화의 전면에 배치된다는 것은 그런 문제이다. 최소한 그러한 활용이 정치적으로 오독되어 탄압받을 현저한 위협은 없다는 것이 확인될 때 비로소 가능한 문제이다. 사투리가 살아있는 권력의 언어라면, 그 감수성이 그 사투리가 희화되는 것을 용인해줄 수 있어야 한다. 그게 아니면 한 가지뿐이다. 사투리를 공식 언어로 하는 권력이 저물어 가고 있음이 명백해야 한다. 대중문화가 사투리를 희화하는 사소해 보이지만 결정적인 변화에 권력이 일일이 영향력을 미칠 수 없을 정도여야 한다.

참여정부 당시, 대중문화는 일찍부터 노무현 대통령을 패러디했다. "맞습니다, 맞고요", "이쯤 되면 막 가자는 거지요" 등의 노무현 어록은 대중문화의 단골 소재였다. 이 때도 대중문화가 가장 명징하게 포착해낸 것은 경상남도 출신 대통령의 진한 억양이었다. 참여정부는 살아있는 권력이었지만, 권력자의 언어가 희화화되는 것에 목젖을 놓고 웃어젖힐 정도의 소양과 여유는 갖고 있던 권력이었다.

▲ 당선인 시절 카메라에 함께 잡힌 이명박 대통령과 친형인 이상득 한나라당 의원 ⓒ 연합뉴스
하지만 MB정부는 달랐다. MB정부 들어 숱한 패러디의 '드립'들이 양산되었지만 실제로 그것을 대중문화가 인용한 예는 거의 아니, 아예 없었다. 인터넷이 부글부글 끓을 때도 TV와 영화는 잠잠했다. 익히 확인한대로 MB정부는 인터넷에 글을 올리면 잡아가는 권력이다. 방송사에 낙하산을 떨어뜨리고, 멀쩡히 제작된 시사 프로그램의 방송을 막는 권력이다. 권력의 문제를 대중문화의 전면에 배치할 경우 당연히 오독할 것이고 탄압받을 위협은 현저했다.

이제는 진부한 얘기지만, MB정권은 '대통령의 형님'을 정점으로 한 피라미드 모형의 권력 집단이다. 어느 정부에나 '실세'는 있었지만, 대개의 실세가 대통령보다 밑이었던 반해 MB정부의 실세는 대통령의 생물학적 형이라는 점에서 독보적이다. 대통령이 권력의 정점이 아닌 매우 독특한 상황이다.

그래서 '영포회'라는 특정한 출신 지역의 집단지배체제가 작동하는 것이다. '영포회'는 권력의 모형을 구조화한 집단의 이름이면서 동시에 실제로 권력을 나눠가진 이들의 집단지배체제를 일컫는 말이기도 하다. 뭘 어떻게 하는지 몰라도 포항으로 예산이 쭉쭉 내려가고, 한나라당이 다른 건 다 내팽개치더라도 '형님 예산'만은 절대 사수하는 호위병 역할에 충실한 것은 바로 그 때문이다. 우리는 지금 최소한 50년 전에 사라졌다고 믿었던, '형님'을 정점으로 '삼촌'과 '작은아버지'들이 권력을 분점하는, 가부장 권력의 시대에 살고 있는 셈이다.

이 가부장 권력의 시대가 야만인 까닭은 '형님'의 승인을 받은 '형님'의 권력을 대리하는 이들의 패악 때문이다. 아무리 공식적으로 대단한 직함을 가진들 '형님'의 족보에 이름이 올라있지 않으면 행세를 할 수 없다. 그래서 일개 비서관이 국회의원을 사찰하고, 차관이 장관들을 불러 모으는 위세를 떤다.

MB의 집권 4년차를 맞고 있다. 이쯤 되면, 포항을 소재로 한 아니 최소한 과메기라도 등장시키는 뭔가의 은유가 있을 법도 한데 여태 없단 점은 황폐해진 언론 환경 때문이거니 했다. 언론 장악의 드잡이가 유례없이 거셌고, 경북 사투리를 전면화하는 용기 있는 대중문화 텍스트는 그래서 아예 존재할 수 없거니 했다. 물론, 다른 이유도 있을 것이다. 이중적으로 보자면, 3년이 넘도록 경북 사투리가 정치권력의 공식 언어였기에 아예 그 자체로 금기시 됐던 측면과 함께 대중적으로 드러나는 권력의 이미지에 그것이 투영되지 않기 때문에 간과됐을 수도 있다.

▲ KBS 2TV 개그콘서트 두분토론의 박영진 남하당 대표
하지만 얼마 전부터 놀랍도록 적나라한 직설적 '경북 사투리'의 존재를 깨달았다. 매주 일요일 밤 안방을 찾아오는 <개그콘서트>의 '두 분 토론'이 바로 진한 경북 사투리를 사용하고 있었다. 게다가 더욱 기가 막힌 것은 그 코너가 웃음을 빚어내는 코드가 바로 '가부장제'에 대한 조롱이었단 점이다.

사회적 약자인 여성을 향해 막무가내로 "소는 누가 키우냐"고 억지를 부리는 남하당 대표 박영진의 인식은 직설적으로 이 정부의 권력관과 닮아 있는 것이다. 권력이 미처 눈치 채지 못했고, 우리 모두 역시 그러려니 했던 사이 대중문화는 예민하게도 그 틈새를 놓치지 않고 '경북 사투리'의 결정적 지점, 궁극적 모순을 포착해냈다.

대중문화가 경북 사투리를 희화화하고 있단 사실은 비범한 진실이다. 앞서 말했듯 그런 것을 감내해 줄 감수성을 지니지 않은 권력이다. 그렇다면 한 가지뿐이다. 분명히, 권력이 저물어 가고 있는 것이다.

복지예산은 싣지 않은 채 예산안을 날치기해놓고도 대통령은 "정부의 복지 예산은 매년 늘어나고 있으며, 내년 복지 예산은 역대 최대로, 우리가 복지국가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의 수준"이라고 우겨대고 있다. 그저 "기가 막히고 코가 막힐 뿐이다" 차라리 국민들을 향해 복잡한 비판 하지 말고 "소나 키우라"고 막무가내로 우기는 게 솔직하지 않을까 싶다. 물론, 그마저도 워낙 다방면에 걸쳐 무능함을 뻗치고 있는 정부라 '구제역'도 제대로 막지 못하고 있긴 하지만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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