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통 집권당 대표는 '권력을 찾는 사람'이기 마련이다. 특히나, 집권 4년차를 맞는 때의 집권당 대표라면, 그의 머릿속에는 온통 '정권재창출'이 가득 차 있어야 마땅하다. 하지만 한나라당 안상수 대표는 다르다. 확실하다. 그는 '웃음을 찾는 사람'이다.

'행불상수', '보온병 포탄' 파문이 있기 전부터 네티즌들은 그의 이력에 집권당 대표와 어울리지 않는 희극적 요소가 있음을 간파하고 있었다. 행방불명 처리되어 군을 면제받았으나 기어이 사법고시는 패스하고 만 그의 젊은 날은 확실히 뭇사람들의 그것과 비교할 때, 너무 '비범'해서 웃긴다.

그리고 '보온병 포탄' 드립이 떨어졌다. 연평도 포격 현장을 방문한 안 대표는 검게 탄 보온병을 들고 "이게 포탄입니다. 포탄"이라며 '유레카'를 외쳤다. 안 대표가 심형래 뺨치는 '바보 개그'의 주연이었다면, 동행했던 3성 장군 출신의 황진하 의원은 “이게 76mm같다”, “이건 곡사포다” 등의 멘트로 받혀주는 역할을 훌륭히 수행했다. 군 면제자와 3성 장군, 전혀 뜻밖의 조합이 연출해낸 희대의 코미디였다. 웃음은 그런 의외성에서 도드라지기 마련이다.

안 대표의 '보온병 포탄' 드립 이후, 지금은 폐지된 한 지상파 공개 코미디 프로그램의 PD는 자신의 트위터를 통해 "도무지 안상수보다 웃기는 아이템이 떠오르지 않는다"며 괴로워했다. 제갈공명의 시대를 살아갔던 오나라의 주유가 그랬던 것처럼, 안상수 집권당 대표의 시대를 살아가는 모든 희극인은 괴롭다. '하늘이여, 왜 정녕 안상수를 낳고 또 저를 낳으셨단 말입니까.'

▲ 22일 민생을 챙기겠다면 장애시설을 방문했던 한나라당 안상수 대표는 기자들과의 오찬에서 성희롱 발언을 했다ⓒ연합뉴스
'빅 재미' 뒤에 잠시 숨을 고르던 안 대표가 어제는 작심한 듯 '큰 웃음'을 날렸다. 민생을 챙기겠다며 중증 장애인 시설을 찾은 안 대표는 자신 때문에 함께 민생을 챙기게 된 이들이 고달팠다고 생각했는지 또 한 번의 강렬한 드립을 난사했다. 안 대표는 국회에서 '1일 보좌관' 체험중인 유명 걸 그룹 멤버를 거론하며 "요즘은 전신 성형을 하니 얼굴을 구분하지 못하겠다"고 입을 풀더니, "요즘 룸살롱에 가면 오히려 '자연산'을 더 찾는다고 하더라, 요즘은 성형을 너무 많이 하면 좋아하지 않아. 자연산을 더 찾는다고..."라며 상식을 가진 사람이라면 도무지 생각도 할 수 없을, 비유도 하지 않을 희한한 '여성관'을 선보였다.

그 밥에 그 나물, 안에서 세는 바가지 밖에서도 센다고 안 대표의 비서실장인 원희목 의원 역시 "<역전의 여왕> 드라마에 나오는 OOO은 얼굴에 너무 보톡스를 맞아서 코가 주저앉았다고 하더라", "여기 앉아 있는 기자분들은 성형을 하나도 안 해도 되는 분들이네"하며 눙을 치고, 여기자들에게 일일이 "(성형) 했어요?"라고 거듭 묻기까지 했다고 한다.

보통 사람들은 '자연산'을 횟집 가서 찾는데 안 대표는 '룸살롱'가서 찾는다. "도무지 안상수보다 웃기는 아이템이 떠오르지 않는다"고 공개적으로 괴로워했던 한 예능 PD의 고뇌가 충분히 이해되는 언어적 도단이다. 안 대표는 일반적 상식, 사회적 통념과는 상관없는 세계관을 갖고 있는 낭인이다. 뒤집어진 사고를 갖고 있기에 그는 '행방불명'이란 희소적인 이유로 군을 면제받을 수 있었던 것이고, 보온병을 보고 즉각적으로 '포탄'을 상상해내는 도발적 인식을 갖게 된 것이고, 때가 어느 때인데 할 말 못 할 말 구분 못하고 그것도 민생 현장 방문에 나선 자리에서 서슴없이 성희롱을 일삼을 수 있는 인성을 갖추게 된 것이다.

안상수 대표의 직업을 새로 찾아주는 것, 이제는 집권 후반기를 맞는 정부 차원의 과제가 아닐까 싶다. 물론, 성희롱 소재를 개그 아이템으로 사용해선 곤란하겠지만 안 대표는 충분한 자질이 엿보인다. 어제 현장에 있었던 <뷰스앤뉴스> 기자가 성희롱 소지가 있다는 지적을 하자 한나라당은 "웃자고 가볍게 한 얘기가 아니냐"고 되물었다고 한다. 안 대표의 본분이 웃기는 데 있음을 한나라당도 인정한 셈이다. 그리고 한 가지 더, 안 대표 스스로도 본인의 사회적 역할이 무엇인지 잘 알고 있다.

어제 안 대표는 "수능 끝난 고3을 대상으로 고등학교에 강연을 갔다. 가니까 분위기가 어수선하더라. 그래서 내가 '안녕하세요, 보온병 안상수입니다'라고 말했더니 다들 난리가 났다. 옆 사람을 치고 웃으면서 죽더라 죽어"라며 좌중을 압도하는 자신만의 개그 카리스마를 뿜었다고 한다.

야당은 일제히 안 대표를 향해 의원직과 대표직을 내놓으라고 요구하고 있다. '좌파 스님', '보온병 파문' 등 잇단 메가톤급 파문을 통해 내성을 키운 그가 쉽사리 물러서진 않을 것이다. 카메라 세례를 받는 데 익숙해진 그인데 당장 그만 두면 카메라 금단 현상이 걱정되기도 할 것이다. 문제는 간단하다. 범시민적 캠페인으로 그를 이직시켜야 한다. 요새 개그계에서 가장 핫한 아이템 가운데 하나가 중년 개그맨들의 '자학 개그'이다. 자신의 실패를 소재로 삼되 추하게 보이지 말아야 하는 것이 포인트이다. 이미, 안 대표는 '자학 개그'를 능숙하게 구사할 수 있는 경지에 이른 검증된 '실패자'이다. 코미디PD들이여, 두려워하지 말고 그를 스카웃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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