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세훈 시장님 안녕하십니까.

이틀 연속, 일간지에 광고 실으신 거 잘 봤습니다. 내용에 공감이 됐더라면, 서울시민의 한 사람으로서 세금이 아깝단 생각이 들진 않았을 텐데 워낙에 '정치적'이고 또 '일방적'인 주장이어서 인터넷에 유행하는 말대로 '이럴 돈 아껴서 차라리 애들 밥이나 먹이지'하는 생각이 절로 들긴 했습니다만. 각설하고.

시장님은 지금 무상급식을' 망국적 복지 포퓰리즘'이라고 밀어 붙이느라 아주 작심을 하고 세금을 쓰고 계십니다. 21일자 <프레시안>에 실린 인터뷰도 아주 인상깊게 읽었습니다. 먼저 밝혀두겠습니다. 저는 시장님이 생각하시는 대로 '무상급식론자 그래서 민주당 지지자'는 아닙니다. 그리고 시장님의 말씀에도 부분적 진실은 있다고 생각합니다.

▲ 동아일보 12월21일치에 실린 서울시의 무상급식 반대 광고(왼쪽)와 누리꾼들이 오세훈 시장의 무상급식 반대 광고를 패러디한 광고(오른쪽)
하지만 저는 시장님이 틀렸다고 생각합니다. 오 시장님이야말로 무상급식을 주장하는 사람들보다 훨씬 더 정치적이고 술수에 가까운 주장을 하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단도직입적으로 묻겠습니다. 무상급식이 '망국적 복지'라면, 학교안전은 '건국적 복지'입니까? 전체에 대한 무상급식이 부자들을 위한 것이라면서 시장님이 추진하시는 무상 준비물은 왜 소득수준에 따른 변별이 아닌 전체 학생을 대상으로 하는 것입니까?

잘 아시는 대로, 서울시 1년 예산은 20조가 훌쩍 넘습니다. 이 가운데 교육 예산의 비율은 1% 정도입니다. 2천 억 원이 조금 넘습니다. 시 의회가 요구한 2011년 무상급식 예산은 700억 원 정도입니다. 시장님의 말씀은 적나라하게 옮기면, 2천 억 원의 예산중에 어떻게 700억을 무상급식에 쓸 수 있냐는 것입니다. 단출한 논리입니다.

오 시장님, 그런데 말입니다. 반포에 만드는 인공분수 예산이 690억 원입니다. 사람들은 토목 예산을 줄여 무상급식을 하라는데 시장님은 자꾸 무상급식을 하면 다른 교육 행정이 부실해진다고 어깃장을 놓고 있습니다. 그러면서 이런 말을 하십니다. 토목 예산은 일회적인 것이지만 무상급식은 한 번 시행하면 계속 재정이 발생하게 된다고. 토목은 한 번 돈이 들어가면 그 뿐이지만, 복지는 계속 돈이 들어가서 못하겠다는 시장님의 말씀은 대꾸하려는 말마저 끊어지는 참 거북한 언어도단입니다.

<프레시안>과 인터뷰에서 시장님은 오늘 "'보수-진보' 전선의 한 가운데에 오 시장이 서 있는 것 같다."는 질문에 "그런 셈이다"고 답하며, 무상급식을 주장하는 사람들이 진보적 정치색을 선명하게 하기 위해 무상급식이 '비논리'라는 것을 감춘 채 무상급식 주장에 '올인'하고 있다고 주장하셨습니다. 저는 이 부분이 오히려 '망국적 복지 표퓰리즘'이란 언어 기만보단 솔직한 속내라고 생각합니다. 시장님은 내년 총선, 대선에서 상징적 효과를 보기 위해 무상급식이라는 "해괴한 발상을 했다"고 했습니다. 그러면서 시장님이 추진 중인 핵심 사업의 필요성과 성과는 무진장 강조하셨습니다.

그런데 시장님의 주장은 역설적입니다. 그것도 아주 '해괴한 역설'입니다. 무상급식을 정치적 색안경으로 보는 시장님의 반대는 내 것은 중하고 남의 것은 모르겠다는 '5세 훈이' 수준의 무조건적인 거부 외에 별로 읽히는 것이 없습니다. 시장님은 무상급식을 주장하는 사람들이 논리적으로 허술하다고 했지만 제가 보기엔 시장님은 아예 논리에 입각해 있지도 않습니다. 애들 밥 먹이는 문제를 이념의 문제로 포장하여, 정치의 한 복판으로 끌고 온 것은 그 누구도 아닌 바로 시장님 당신입니다. 왜 그러셨습니까? 민주당에 의제를 선점 당하면 안 된다는 정치적 판단 때문이었습니까? 아니면 전임 이명박 시장이 그랬던 것처럼 '불도저'처럼 밀어붙이는 이미지가 장기적으로 정치 행보에 도움이 되리라는 자의적인 판단 때문입니까?

오 시장님, 공직자의 기본 자세, 근본적 도리는 다양한 시민의 목소리를 열린 자세로 겸허하게 듣고, 과감하게 수용하는 것입니다. 시민의 목소리를 자신의 정치적 이해에 따라 '배제'하는 것은 공직자가 취할 수 있는 선택 가운데서 가장 하급의 결정입니다. 시장님이 지금 하고 계신 것이 바로 그런 하급의 결정입니다.

무상급식을 두고 의회, 야당과 그래서 세상과 맞서겠다는 '과대망상'을 버리십시오. 시장님은 복지가 '나라의 형편에 따라 결정될 문제'라고 보시는지 모르겠지만, 대다수의 서울 시민들은 복지가 '사회적 합의에 따라 결정될 문제'라고 보고 있습니다. 시장님은 광고를 통해, 홍보를 통해 누군가를 설득하겠다고 생각하시는 것 같은데 앞서 말씀드렸듯 시장님의 주장은 논리에 기반한 것이 아니기에 누군가를 설득할 수 없고 오히려 조롱의 대상이 될 뿐입니다.

▲ 무상급식과 관련해 입장차이를 보이고 있는 오세훈 서울시장과 곽노현 서울시교육감이 20일 오후 서울 종로구 세종로 정부중앙청사에서 서울지역 '국제다솜학교' 업무협약 체결식을 마친 뒤 인사를 나누고 있다ⓒ연합뉴스
시장으로서 현 국면에서 '무상급식'이 가장 최우선적으로 시행되어야 할 시급한 정책이 아니라고 생각하실 수 있습니다. 하지만 지난 <6.2지방선거>에서 이미 무상급식에 대한 사회적 합의는 어느 정도 공감을 이뤘습니다. 시장님 스스로 당장은 아니더라도 시기의 문제라고 생각하시고, 대대적으로 광고까지 해야겠다고 판단하실 만큼 대세로 굳어진 문제입니다. 아집과 편견을 버리십시오. 운하 잘못 팠다가 나라 망할 뻔 했다는 이집트 얘기는 들어봤지만, 애들 밥 먹이느라 나라가 망했다는 얘기는 한 번도 들어보지 못했습니다. 과도한 염려 또한 과감히 거두셔도 좋습니다.

올 한해 제가 서울시에 세금을 얼마 냈는지 찾아봤더니 많지 않지만, 부과된 것은 모두 빠짐없이 납부했습니다. 부디, 그 세금이 더 이상 시장님의 자존심을 위해 정치적 술수를 위해 사용되지 않길 바랄 뿐입니다. 공사판 벌이는 데도 좀 그만 쓰였으면 좋겠습니다. 일부나마 애들 밥 먹이는 데 사용된다면 그나마 기성세대로서 조금 뿌듯함은 들 것도 같습니다.

오 시장님, 행정은 무엇입니까? <웰컴 투 동막골>의 이장님은 "주민들 배 곯리지 않는 것"이라고 했습니다. 남은 임기 서울시민의 삶을 위무하는 행정 부탁드립니다. 건설업자들의 삶에만, 인테리어 업자들의 삶에만 관심 두시지 마시고 말입니다. 두서없이 쓴 편지, 이만 줄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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