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평도 사격훈련이 재개됐던 20일 저녁 지상파 방송3사의 초점은 ‘연평도’에 쏠렸다. 뉴스의 2/3가량 연평도 사격훈련에 맞춰지면서 타 사회이슈에 대한 보도는 그 만큼 적어졌다. 그 중 뉴스의 가치를 따져봤을 때 가장 홀대를 받은 뉴스는 단연 한명숙 전 총리 재판보도였다.

20일 서울중앙지법에서는 한명숙 전 총리가 건설사로부터 9억 원의 금품을 수수했다는 불법 정치자금 혐의에 대한 재판이 진행됐다. 그리고 이 자리에서 한명숙 전 총리에게 9억 원을 줬다고 주장한 전 한신건영 대표(이하 한씨)는 “한 전 총리가 누명을 쓰고 있다”, “애초 진술 자체가 허위였다”며 검찰 진술을 180도 뒤집었다. 한 씨는 또 수감 후 억울하게 빼앗긴 회사자금을 되찾을 욕심 때문에 거짓진술을 했다고 밝혔다.

검찰은 지난 4월 8일, 한 씨 진술을 바탕으로 건설사 압수수색을 진행했으며 한 전 총리를 기소했다. 그러나 20일 재판으로 인해 검찰의 기소 자체가 무리였다는 점이 드러났으며 한명숙 전 총리를 둘러싼 불법 정치자금 재판은 새로운 국면을 맞게 됐다.

▲ 불법정치자금을 받은 혐의로 불구속 기소된 한명숙 전 총리가 6일 오후 서초동 서울중앙지법에서 열리는 첫 공판에 참석하기 위해 법원청사로 들어서고 있다ⓒ연합뉴스
그러나 MBC와 KBS는 간판뉴스를 통해 한 전 총리의 재판 관련 소식을 뉴스의 끝자락에서 ‘단신’으로 처리했다.

KBS·MBC, 한명숙 전 총리 재판 보도 ‘단신’ 처리

“9억 원의 정치자금을 받은 혐의로 기소된 한명숙 전 총리에 대한 재판에서 돈을 줬다는 한만호 한신건영 대표가 오늘 증인신문에서 돈을 준 사실이 없다고 진술을 번복했습니다. 한씨는 검찰 조사에서는 회사를 되찾을 욕심으로 거짓 진술했다고 주장했지만, 검찰은 다른 사람 증언과 수표추적 결과로 한 전총리의 혐의를 입증할 수 있다는 입장입니다.”<MBC 뉴스데스크>

“9억여 원의 불법정치자금을 수수한 혐의로 기소된 한명숙 전 총리에 대한 공판에서 건설업자 한모씨는 ‘빼앗긴 회사를 되찾고 싶은 욕심에 검찰에서 허위 진술을 했고 돈을 건넨 사실이 없다’며 기존 진술을 번복했습니다.”<KBS 뉴스9>

▲ 4월 8일 MBC 보도 캡처
그러나 MBC와 KBS는 정작 검찰이 한명숙 전 총리에 대한 9억 수수 관련 수사에 나섰을 때 보도는 비중을 달리했다.

4월 8일 MBC <뉴스데스크>는 8번째 꼭지를 통해 “검찰은 한 건설회사가 한명숙 전 총리에게 거액의 정치자금을 건넨 혐의를 잡고 이 회사를 압수수색했다”며 “이번 사건은 내일 선고를 앞둔 5만 달러 수수 사건과는 별개지만, 상당한 파장이 예상된다”고 비중있게 보도했다.

KBS <뉴스9> 역시 9일 한명숙 전 총리의 무죄 판결 소식과 함께, “검찰은 별건으로 시작한 한명숙 전 총리의 불법 정치자금 의혹 수사에 더욱 속도를 내고 있다”고 전했다. KBS는 “한씨의 건설업체와 자회사 등 3곳을 압수 수색했다. 이미 대검찰청의 계좌추적 전문 수사관까지 동원돼 자금 흐름 파악도 끝냈고, 사기 혐의로 수감 중인 한 씨의 진술도 모두 받았다”는 등 자세한 상황까지 전했다.

결국 언론은 한명숙 전 총리가 9억 원을 받았다는 검찰의 기소내용은 비중 있게 다뤄진 반면 핵심 진술인이 말을 번복했다는 보도는 그에 비해 적은 양으로 보도된 셈이다.

반면 지상파 중 SBS <8시뉴스만이 정식 리포트를 통해 “한명숙 전 국무총리를 기소했다가 무죄판결이 나는 바람에 한 차례 당혹스러웠을 검찰이 두 번째로 기소한 재판에서도 난관에 봉착했다”고 관련 소식을 전했다. 또한 “한 전 총리에게 금품을 줬다고 진술한 핵심증인이 오늘 법정에서 말을 완전히 뒤집었다”면서 “검찰은 핵심 증인의 진술 번복으로 한 전 총리의 혐의 입증에 큰 어려움을 겪게 됐다”고 보도했다.

“한 전 총리가 ‘받았다’는 사실만 각일 될 것”

이와 관련해 정연우 세명대 언론광고학부 교수는 “한명숙 전 총리는 참여정부의 도덕성 바로미터 역할을 하고 있는 중요한 정치적 인물”이라며 “이번 재판은 뉴스의 가치를 봤을 때 언론에서 비중 있게 다뤘어야하는 사안”이라고 주장했다.

정연우 교수는 “특히 이번 경우는 물증이 있었던 게 아니라 건설사 사장의 진술이 사건 구성의 핵심이었고 그것이 번복된 것”이라며 “그래서 이 사안 전체가 검찰이 만들어낸 사건일 개연성이 높아진 것임에도 뉴스는 의도적으로 침묵했다”고 비판했다. 이어 “결과적으로 언론의 침묵으로 ‘받았다’는 사실만 국민들에게 각인될 것이고 한명숙 전 총리는 부도덕한 정치인으로 남게 될 수도 있다”고 지적했다.

또한 “연평도 문제도 뉴스의 가치가 높을 수밖에 없지만 그렇다고 해서 한명숙 전 총리의 재판이 거기에 가려져 단신으로 처리될 문제는 아니다”라면서 “매우 중요한 사건인 만큼 오늘(21일)이라도 꼭 뉴스에서 볼 수 있었으면 한다”고 말했다. 이 밖에도 그는 정연주 전 KBS 사장의 배임혐의에 대한 무죄판결 역시 기사 비중이 적어 정 전 사장이 무죄라는 사실을 모르는 사람이 많다며 언론보도의 문제점을 제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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