맨유와 아스날이라는 전통적인 강호들의 대결은 현지뿐 아니라 국내에서도 화제가 되었습니다. 물론 박지성이 출전한다는 것이 가장 큰 목적이겠지만 EPL을 즐겨 보시는 분들이라면 이 두 팀의 대결은 필수 관전 경기이지요. 이 경기에서 보여준 박지성의 능력은 그를 둘러싼 다양한 논란을 잠재운 최고의 활약이었습니다.

박지성이 만들어낸 세 가지 가치

전반 끝나갈 무렵 나니가 올려준 낮은 프리킥을 누운 채 감각적인 헤딩슛으로 절묘한 골로 연결한 박지성의 골은 결승골이 되었습니다. 언뜻 보면 자신의 의지와 상관없이 굴절된 공이 골로 연결된 것은 아닌가란 생각이 들 정도로 절묘한 골이었습니다.

리플레이 영상을 보면 박지성이 얼마나 정교하고 교묘하게 헤딩슛을 했는지 알 수 있지요. 자신을 커버하는 수비수를 이용하고 낮고 빠르게 온 프리킥을 가장 효과적인 방식으로 비틀어 슛을 하는 장면은 그가 왜 최고인지를 잘 보여주었습니다.

나니의 패스는 사실 골로 연결시키기 쉽지 않은 볼이었습니다. 다이렉트 슛을 하기도 모호하고 헤딩슛으로 이어가기에는 너무 낮은 패스를 박지성이 아니었다면 과연 누가 해낼 수 있을까란 생각이 들 정도로 박지성의 골 감각은 최고였습니다.

컵 대회 두 골을 포함해 리그 4호골 포함 6골을 기록한 그는 자신이 가지고 있었던 한 시즌 최다골인 5골을 넘어서며 최고의 한 해를 예약했습니다. 아직 시즌 경기가 많이 남아 있고 그 어느 때보다 공격본능을 되살리고 있는 그로서는 시즌 10호 골도 순조로울 것으로 보입니다.

공간 지배자로 맨유의 공격수에게 날개를 달아주던 그가 골 욕심을 내며 중앙에서 골 찬스를 만들어내고 있는 올 시즌 그는 맨유에 없어서는 안 되는 중요한 존재로 부각되고 있습니다. 일각에서 일고 있는 이적설을 잠재운 그의 감각과 성실함은 퍼거슨 경의 아쉬움을 통해서도 잘 알 수 있지요.

아시안 컵 대회에 차출되어 시즌 7 경기에 불참하게 된 박지성의 공백을 어떻게 메울 것인지에 대한 고민은 퍼거슨 경을 힘들게 할지도 모르겠습니다. 역설적으로 그가 없는 맨유가 어떤 모습을 보이느냐는 그의 존재감을 확실하게 볼 수 있는 기회가 될 수도 있을 것입니다.

맨유 자체에서 뽑은 11월의 선수가 되었던 박지성이 아시안 컵 경기 전 마지막 경기에서 강호 아스날을 무너트린 첨병이 되었다는 것은 시사하는 바가 많습니다. 공격력이 좋지 않다는 평가로 인해 항상 불안한 입지에 놓일 수밖에 없었던 그에게는 최근의 경기력으로 공격력에 대한 부정적인 시각을 어느 정도 해소할 수 있었습니다.

후반 패널티 킥을 얻어 완벽한 승리를 가져갈 수 있었던 맨유는 에이스 루니가 실축하면서 마지막까지 가슴 조이는 승부를 펼칠 수밖에 없었습니다. 후반 반 페르시와 파브레가스를 투입하며 승리에 강한 집착을 보였던 아스날로서는 루니의 실축이 자신들에게는 행운이 될 수밖에 없으니 말이지요.

결과적으로 박지성이 넣은 한 골을 잘 지켜낸 맨유는 다른 상위권 팀들인 첼시와 아스날보다 한 게임을 덜 치르고도 리그 1위에 올라서는 기쁨을 맛보게 되었습니다. 아스날로서는 비기기만 해도 단독 선두를 할 수 있는 상황이었기에 더욱 아쉬운 경기였을 듯합니다.

뱅거 아스날 감독이 경기 전 키 플레이어로 루니나 다른 선수가 아닌 박지성을 지목한 것은 그가 아스날 전에 유독 강했기 때문이지요. 맨유 입단 이후 아스날과의 7번의 경기에 4골을 터트린 만큼 박지성은 아스날에 유독 강한 면모를 보였습니다. 그가 기록한 22골 중 아스날에서 4골을 뽑아냈다는 것은 얼마나 강했는지를 잘 알 수 있게 해줍니다.

"불행하게도 우리는 아시안컵으로 인해 7경기 동안 박지성의 모습을 찾아볼 수 없게 됐다. 그가 그리울 것이다. 이는 실망스러운 사실"

1월 개최되는 아시안 컵 대회로 인해 맨유 경기에 출전할 수 없는 박지성의 공백을 두고 아쉬움을 토로한 퍼거슨 경의 인터뷰입니다. 이 말이 늘상 있어왔던 립서비스일 수도 있겠지만 최근 부상 선수들이 늘어나며 힘들 수도 있었던 맨유를 구원한 박지성의 역할을 봤을 때 마음에서 우러난 아쉬움으로 볼 수 있겠지요.

아스날의 레전드이기도 한 융배리와 비슷한 선수라고 이야기한 뱅거 감독의 말은 정확하게 맞아 떨어져 다시 한번 많은 이들을 놀라게 했지요. 경기 전 아스날 홈페이지 인터뷰에 실린 내용을 보면 마치 경기가 끝난 후 인터뷰한 것은 아닐까란 생각을 하게 할 정도입니다.

"박지성은 융베리 같은 타입의 선수"
"팀을 위해 뛰지만 골도 넣을 줄 안다. 말이 많지 않아 눈에 띄지 않지만 효과적인 선수임에 분명"

1998년부터 2007년 까지 10년 동안 아스날에서 활약했던 스웨덴의 전설 같은 선수 융배리는 아스날의 무패 우승의 주역들인 티에리 앙리, 데니스 베르캄프, 로베르트 피레 등과 함께 활약하던 무적의 시절 아스날을 빛냈던 선수입니다. 그런 선수와 박지성이 비슷하다는 것은 '아스날=뱅거'라는 등식을 가진 그가 할 수 있는 최고의 찬사였습니다.

박지성은 리그 선두였던 아스날과의 경기를 통해 1)개인 한 시즌 최다 골 경신, 2)맨유 리그 1위 등극, 3)끊임없는 이적설 잠재우기 등 세 마리 토끼를 모두 잡아낼 수 있었습니다. 아시안컵 착출 없이 지속적으로 리그 경기에 출전한다면 맨유에서의 자신의 입지를 다질 수 있는 절호의 기회가 될 텐데 아쉽기는 합니다.

이런 경기력이 아시안컵에 출전하는 한국팀에게는 그 무엇보다 소중한 가치로 다가오겠지만 맨유나 프로 선수 박지성으로서는 아쉬움도 함께 할 듯합니다. 볼튼 상승세와 함께 하는 이청용과 독일 분데스리가의 떠오르는 샛별인 손흥민 등 유럽 리그에서 활약하는 한국 선수들의 승전보들은 언제 들어도 항상 즐겁기만 합니다.

이적설이 끊임없이 이어지는 와중에도 맨유에 대한 충성심과 애정을 보였던 박지성이 자신의 커리어를 맨유에서 모두 쌓을 수 있을지 알 수 없지만, 그의 존재감은 여전히 맨유에서도 소중하게 자리하고 있음을 알게 한 경기였습니다.

영화를 꿈꾸었던 어린시절의 철없는 흥겨움이 현실에서는 얼마나 힘겨움으로 다가오는지 몸소 체험하며 살아가는 dramastory2.tistory.com를 운영하는 블로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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