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일 김대중 전 대통령의 장남 김홍일 전 의원이 별세했다. 향년 71세. 김 전 의원의 사망은 군사독재시절 받은 고문과 무관하지 않을 것이다. 김 전 의원은 박정희 정권 때인 1974년 민청학련 사건, 전두환 신군부에 의한 1980년 ‘김대중 내란음모사건’으로 심한 고초를 당했다. 모진 고문에 책상 위에 올라 바닥으로 머리를 박아 스스로 목숨을 버리려고 했다는 일화가 전해진다.

CBS <김현정의 뉴스쇼>에 출연한 박지원 의원은 김홍일 전 의원이 “고문 후유증으로 거의 30여 년 동안 활동이 제약되고, 또 마지막 15년간은 거의 움직이지 못하는 그런 불행한 생활을 하시다 가셨다”며 안타까움을 감추지 못했다. 또한 김대중 전 대통령도 “결국 나는 성공했다고 볼 수 있겠지만 우리 아들들, 특히 우리 큰아들 홍일이를 보면 가슴이 미어져서 살 수가 없다”고 했다는 말도 전했다. 새삼 과거 독재정권의 폭압에 치를 떨지 않을 수 없다.

김대중 전 대통령 장남 김홍일 전 의원 별세…향년 71세 (JTBC 뉴스룸 보도영상 갈무리)

김홍일 전 의원의 별세는 다시 한 번 과거 독재정권의 잔악함을 일깨워주는 계기가 되었다. 그렇게 김홍일 전 의원이 세상을 떠난 날, 자유한국당은 광화문 광장에서 “좌파독재”를 외쳤다. 이미선 헌법재판관 임명으로 그 좌파독재의 마지막 퍼즐을 맞췄다는 주장도 나왔다. 그 주장이 공허함을 넘어 분노를 산 이유는 같은 날 고문피해자 김홍일 전 의원이 별세했기 때문만은 아닐 것이다.

남북관계를 냉전시대 수준으로 악화시키고, 헌정사 최악의 사태인 국정농단의 책임으로부터 자유로울 수 없는 자유한국당이 바로 그 광장에서 “좌파독재”를 외치는 것은 뻔뻔하기까지 하다. 광화문광장은 국정농단에 분노한 국민이 모여 촛불을 켜 든 장소이다. 촛불혁명의 상징인 곳에서 국정농단으로 탄핵된 대통령이 임명했던 전직 국무총리가 “좌파독재”를 외쳤다.

황교안 자유한국당 대표가 미는 “좌파독재”라는 수사에는 두 가지 노림수가 엿보인다. 자유한국당의 녹슨 보검인 색깔론을 유지하면서 누구나 싫어할 수밖에 없는 독재라는 개념을 결합하고자 했던 것으로 보인다. 황 대표는 연설 동안 이 말을 무려 17번이나 반복했다. 이 정도면 후크송이 무색할 정도다. 그러면서 나경원 원내대표를 대형 논란에 빠지게 했던 “김정은 대변인” 발언을 리메이크하기도 했다.

'인사' 문제 제기하다…기승전 '박근혜·색깔론' (MBC 뉴스데스크 보도영상 갈무리)

자유한국당이 거리로 나선 것은 당연히 내년 총선 때문이다. 지지율이 반등하는 상황에서 내침 김에 기세를 더 타보자는 것이다. 게다가 여야 4당이 선거법 개정안, 공수처 법안 등 개혁법안 합의에 도달한 것도 또 다른 이유가 될 것이다. 유치원 3법에 이어 자유한국당으로서는 사실상 말발이 서지 않는 개혁법안들에 대해서 방어적 입장에만 서서는 비난여론에 직면하기 십상인 까닭이다.

아무리 그렇다 할지라도 ‘독재’ 프레임은 지나치게 크게 그린 그림이었다. 문재인 정부에 ‘독재’ 프레임을 덧씌우는 것은 무리수가 아닐 수 없다. 이미선 헌법재판관 임명이 그렇다는 것인데 시민들은 무관심하다. 게다가 자유한국당이 할 말은 아니지 않겠는가. 결과적으로 황교안 대표가 ‘독재’ 프레임을 들고 나온 것은 무모했다. 자신이 어떤 당의 대표인지를 모르지 않을 황 대표의 독재 운운은 부메랑이 될 수밖에 없다. 그것도 하필 김홍일 전 의원이 별세한 날에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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