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기자가 소셜미디어 담벼락에 적었다고 한다. 세상을 바꾸겠다는 사람이 각자도생을 선택하면 되겠느냐, 나는 사보험조차 들지 않고 있노라. 보험업계에 대한 비판 같지만 김의겸 청와대 대변인 얘기를 하려고 한 게 아닐까 추측한다.

정부공직자윤리위가 27일 공개한 공직자 재산 신고 현황을 보면 김의겸 대변인은 25억7천만 원짜리 건물의 주인이다. 그때까지의 전 재산을 ‘올인’하고 10억원은 대출을 받았다. 이 건물은 재개발구역에 있기에 상당한 시세차익을 기대할 수 있다고 한다. 조선일보는 김의겸 대변인이 1년에 갚아야 할 이자만 5천만원이 넘고 한 달에 330만원을 갚아야 한다는 등의 분석을 더하며 신이 났다. 김의겸 대변인의 친정이라고 할 수 있을 한겨레의 지면은 민망하다. 이런 풍경 자체가 씁쓸한 느낌이다.

청와대 대변인이라고 건물주가 되지 말라는 법은 없다. 하지만 법이라기보다는 공직자로서의 자세와 마인드의 문제다. 보수세력은 청와대가 다주택자들을 죄인 취급하며 부동산 대책을 쏟아내던 그때에 청와대 대변인이 건물주가 됐다는 점을 비판하며 ‘내로남불’이라고 한다. ‘피플파워’를 자처하며 ‘개혁’을 말하는 정권의 맨 앞에 선 사람조차 자신의 노후보장을 위해 공직에 있는 기간 동안 부동산 투자를 선택하는 현실을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까?

김의겸 대변인은 청와대를 나오면 집도 절도 없는 신세이며 노모를 모셔야 하고 어디 취업할 곳도 없어 어쩔 수 없는 선택이었다고 강변한다. 청와대 참모 출신의 재취업은 이런 저런 제한과 보는 눈들이 있어 실제로 쉽지 않다. 그래서 최근 논란이 불거진 것도 사실이다. 그러나 그렇다면 애초에 왜 청와대 대변인이라는 직업을 선택했는지를 묻고 싶다. 언론인 출신 인사가 청와대 대변인으로 직행하는 것에 대해 당시에도 말이 많았다. 더군다나 ‘최순실 국정농단’이라는, 정치적으로 민감한 보도를 이끌었다는 인물이 아닌가.

자유한국당 의원들이 28일 오후 김의겸 청와대 대변인이 매입한 서울 동작구 흑석동 건물을 둘러보고 있다. (연합뉴스)

청와대의 참모로서 가장 뼈아프게 생각해야 할 일은 이런 행위가 결과적으로 대통령에게 부담을 안기는 결과로 돌아왔다는 것이다. 청와대는 그렇잖아도 인사청문회의 후폭풍을 두고 고심 중인 것으로 알려져 있다. 인사청문회를 거친 장관 후보자들에게 우호적인 여론이 형성되지 않는 것은 공직을 맡겠다는 사람들이 온통 자신과 자기 가족들의 이익을 위해서만 살아온 것처럼 비춰지기 때문이다.

최정호 국토교통부 장관 후보자의 경우 전형적인 아파트 투기로 재산을 불렸고, 다주택자라는 멍에(?)를 벗기 위하여 부모 자식 간의 임대차계약서를 만드는 과정에서 최대한 세금을 줄이는 꼼수를 동원했다. 조동호 과학기술정보통신부 장관 후보자는 해외출장 허위 보고 및 증여세 탈루 의혹을 받고 있는데 모두 해외에서 유학 중인 자녀 문제와 관련된 것들이다. 문성혁 해양수산부 장관 후보자는 아들 특혜채용 의혹을 받고 있다. 문성혁 후보자의 아들이 경력직으로 입사한 한국선급은 선박에 대한 안전검사를 업무 영역에 포함하고 있다. ‘해피아’ 문제가 세월호 참사로까지 이어졌다는 지적이 있었던 게 불과 몇 년 전이다.

다들 자신과 주변의 안위만 돌보면서 개혁을 책임지고 추진하는 것에는 무관심하다. 박영선 중소벤처기업부 장관 후보자는 인사청문회 과정에서 내년도 최저임금의 동결 가능성을 언급하는가 하면 개인 의견임을 전제로 지역별 차등화를 지지하는 발언도 했다. CJ 계열사의 사외이사 경력을 갖고 있는 박양우 문화체육관광부 장관 후보자는 스크린독과점과 수직계열화 문제에 있어 불분명한 입장으로 일관했다. 다음 해에 총선이 있는 상황에서 정국을 안정적으로 관리하고 싶다는 의도는 이해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개혁에 역행하는 정책을 말하는 장관 후보자들을 굳이 내정한 것은 오히려 정권이 스스로의 입지를 좁히는 일일 뿐이다.

최근의 자유한국당은 별다른 비전도 보여주지 못하고 극단적 행태로 일관하고 있는데도 지지율은 계속해서 올라가고 있다. 이 덕에 국정농단 정국 이전의 양당구도는 거의 복원됐다. 이것은 대중이 자유한국당의 극단적 행태에 단순히 호응하기 때문에 일어나는 현상이라고만 보기 어렵다. 어차피 손해를 감수하는 개혁이 어렵고 또 안 될 거라면 차라리 각자도생을 선택하는 게 이득이라는 판단이 작용하는 것이다. 이런 현상은 유럽에서 사회민주주의 세력이 주변화 된 경로와 거의 일치한다.

정치적 방언에서 ‘집토끼’는 특정 세력을 그저 무조건적으로 지지하는 집단이 아니다. 여러 흠결에도 불구하고 지지 세력의 가치와 노선에 동의해 그 세력과 집단적 동일시를 이룰 수 있는 집단이 ‘집토끼’다. 그런데 이 정권은 그 가치와 노선이라는 게 사실은 '없는 것'이나 마찬가지라는 표현을 하고 싶어 하는 듯 느껴질 때가 많다. 앞의 장관 후보자들과 김의겸 대변인의 사례는 이점을 보여 준다.

‘집토끼’가 와해되면 개혁을 추진할 동력이 상실되는 악순환에 빠지게 된다. 지금 그런 것 같기도 하다. 악순환을 선순환으로 돌리려면 당장 성과를 내지 못하더라도 최소한 가야 할 방향은 명확히 하는 정치적 캠페인이 필요하다. 청와대가 여론이 좋지 않은 장관 후보자 일부를 사퇴시키는 방안을 고심한다는데 이제라도 정확한 판단을 해야 한다. 아울러 김의겸 대변인도 본인의 거취에 대해 대승적 결단을 했으면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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