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를 보러 갈 때 철저한 시간계산을 하고 조금의 시간낭비도 용납하지 않는 제가, 기꺼이 한 시간이 넘도록 기다리면서 그라우만스 차이니즈 시어터에서 관람했던 영화가 <스카이라인>입니다. 그 결과 일정부분의 기대치는 충족시켜줘서 다행이었지만 한편으론 굉장히 김이 빠지게 해서 허탈하게 만들기도 했던 영화입니다.

예고편을 보기 전까지는 <스카이라인>에 대해서 그리 기대를 하지 않았었습니다. 그냥 그런 영화인가 보다 하고 무심결에 줄곧 넘겼었는데, 심심하던 차에 보았던 예고편이 SF 영화를 좋아하는 저의 눈길을 확 사로잡더군요. 아무래도 이런 류의 영화는 웬만해선 최소한의 볼거리를 안겨주기 마련이거든요. 더군다나 예고편에 불과하다고는 하지만 고작 1~2천만 불의 저렴한 제작비를 가지고 만들었다는 사실을 알게 된 이후에는 더욱이 호기심이 동했습니다. 그리하여 관람을 결심한 <스카이라인>은 본편을 봐도 예고편이 전부라는 가혹한 말이 나오지 않을 만큼 비주얼에 있어서는 탁월한 성능을 보유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그와 동시에 또 다른 의미에서는 예고편이 전부라는 혹평이 제격인 영화이기도 합니다.

확실히 <스카이라인>은 제작비를 감안하면 놀라울 만한 시각효과를 선보입니다. 러닝타임의 대부분이 건물 안에서 흘러가지만 하늘을 뒤덮은 괴물체와 그들이 인간을 생포하는 장면, 공중전 등의 시각적 완성도는 꽤 뛰어납니다. 그토록 저렴한 제작비가 결국은 감독인 스트라우스 형제가 대표로 있는 특수효과 전문회사 '하이드라록스' 덕택이라곤 하나, 어쨌거나 1~2천만 불로 이만한 결과물을 뽑아냈다는 것은 괄목할 만한 성과입니다. 물론 굳이 <스카이라인>이 아니더라도 이 두 사람은 수많은 대작영화에서 이미 그 실력을 인정받았었죠. 하지만 스트라우스 형제는 더 이상의 연출 욕심은 내지 않고 자신들이 인정받고 있는 전문분야에서 업계의 선두주자로 활동하는 편을 택하는 것이 나을 듯합니다.

그도 그럴 것이 <스카이라인>은 이야기적인 측면에서 뿌리째 새로울 것이 전혀 없습니다. 느닷없는 외계 생명체의 침입과 그들이 인간을 생포해 뇌수를 빨아들여 생명력을 유지하는 등은 좋든 싫든 관객으로 하여금 <우주전쟁>의 그것을 연상할 수밖에 없게 만듭니다. 그나마 이런 굵직하지도 않은 줄기마저 쳐내면 <스카이라인>에서는 이야기다운 이야기를 찾아보기가 어렵습니다. 간간이 영화의 호흡을 유지시키고자 안간힘을 쓰고 있는 것이 주인공 커플의 연애담이지만 이마저도 빈약하고 진부하며, 심지어 허탈하기 그지없는 결승선으로 내달려 관객이 바닥에 털썩 주저앉게 만들어버립니다. 보는 내내 도대체 이걸 어떻게 수습하려나 궁금했는데 절로 쓴웃음이 지어지게 하더군요. 이런 면에서도 <스카이라인>은 <우주전쟁>과 쏙 빼닮았습니다. 그래도 <우주전쟁>은 원작이라도 있어서 그렇다고 치지만...

<스카이라인>은 다시 한번 영화에 있어서 이야기의 힘이 차지하는 비중이 얼마나 큰지를 확인시켜줍니다. 조금은 다르지만 이 영화와 <디스트릭트 9>을 비교해보면 둘의 장단점은 확연합니다. 시각예술이라곤 하지만 영화는 결코 화면이 전부가 아니라는 것 말입니다. 시각효과만으로 놓고 보자면 <디스트릭트 9>보다야 <스카이라인>이 월등하게 앞서지만 관객들로부터 환호를 얻어내는 쪽은 결국 전자였음을 상기하여 보면 쉽게 알 수 있는 진리입니다. 그리고 스트라우스 형제는 전작인 <에일리언 대 프레데터 2>에서도 확인한 바 있지만 앞으로는 연출에 대한 욕심은 부리지 않는 것이 좋을 것 같습니다. 그래도 보는 동안 눈만큼은 즐거웠기에 별 세 개를 하사하기로 결정했습니다.

덧) 도대체 <스카이라인>의 국내 배급사가 어디길래 알바 어쩌고 하는 기사까지 나오게 하나요? 부끄러운 줄 알아야지!

영화가 삶의 전부이며 운이 좋아 유럽여행기 두 권을 출판했다. 하지만 작가라는 호칭은 질색이다. 그보다는 좋아하고 관심 있는 모든 분야에 대해 주절거리는 수다쟁이가 더 잘 어울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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