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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학의 대 김은경'이라는 구도에 대해공수처가 국민의 이익을 위해 필요하다는 사실 설득해야
김민하 / 저술가 | 승인 2019.03.27 08:50

어쩔 수 없이 정국은 수사기관들의 힘겨루기 양상으로 빨려 들어가는 모양이다. 서로 별 직접적 관계가 없는 김학의 전 법무부 차관 사건과 김은경 전 환경부 장관 구속영장 기각이 검찰과 경찰 및 정권의 이해관계와 맞물려 돌아가는 국면이 돼버린 것이다. 그렇다면 이 상황은 ‘김학의 대 김은경’ 이라는 단순화 된 구도로 설명할 수 있는 것일까?

먼저 김학의 전 법무부 차관 문제부터 따져보자. 법무부 산하 검찰과거사위는 이 사건에 대한 재수사를 권고하면서 박근혜 정권에서 청와대 민정수석비서관을 지낸바 있는 자유한국당 곽상도 의원과 이중희 전 청와대 민정비서관의 직권남용 혐의에 대해 수사하도록 권고했다. 당사자들은 격렬히 반발하고 있다. 곽상도 의원은 자신이 문재인 대통령의 친족들을 겨냥한 공격을 한 것에 대한 보복이라는 주장까지 내세우고 있다.

이들의 직권남용 혐의란 김학의 전 차관의 뇌물혐의에 대한 수사를 방해했거나 수사팀에 대한 인사상의 불이익을 줬다는 등의 내용이다. 이에 대해 곽상도 의원 등은 오히려 경찰이 수사 상황에 대한 거짓 보고를 했고 수사팀에 불이익을 줄만한 수단을 갖고 있지도 않았다는 반론을 펴고 있다.

같은 시기에 청와대에 근무했던 더불어민주당 조응천 의원도 이 부분에 있어선 곽상도 의원 등의 주장과 같은 말을 하고 있다. 조응천 의원은 자신이 김학의 전 차관 의혹에 대한 경고를 담은 보고를 올렸지만 박근혜 전 대통령 등 청와대가 묵살했다면서 당시 경찰이 김학의 전 차관에 대한 내사 사실을 청와대에 제대로 보고하지 않았다고 주장한다. 반면 경찰은 관련 첩보를 어쨌든 청와대에 보고했다는 입장인 걸로 파악된다.

상황을 종합하면 진실은 다음과 같은 내용에 가까웠을 걸로 추정된다. 경찰은 검찰총장에 내정됐다는 소문까지 돌았던 김학의 전 차관에 대한 사실상의 내사를 진행했지만 수사 상황이 구체적으로 검찰에 알려질 것 등을 우려해 적극적으로 청와대에 보고하지 않았고, 청와대는 이를 근거로 김학의 전 차관 사건의 인화성을 과소평가 했다. 그리고 이게 법무부 차관 인사로 이어졌다. 경찰은 김학의 전 차관이 법무부 차관에 임명되고 나서야 내사 사실을 보고했고 당시 청와대 민정수석실의 곽상도 의원 등은 이 일에 대해 경찰에 어떤 형식으로든 항의한 것으로 추정된다. 이게 경찰 내부에서 인사상 불이익 등 조치를 촉발시켰을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

당시 청와대의 잘못된 판단은 물론 경찰의 보고 문제도 있겠지만 무엇보다도 박근혜 전 대통령의 김학의 전 차관에 대한 선호(?)를 빼놓고 말할 수 없을 것이다. 이것은 김학의 전 차관을 굳이 무혐의 처리한 검찰의 태도에도 영향을 줬다고 볼 수 있다. 검찰 입장에선 경찰이 나름대로 수사를 해 기소 의견으로 송치한 사건을 단지 ‘제 식구 감싸기’ 논리 만으로 무혐의 처리하는 무리수를 둘 이유가 없다. 경찰의 수사 의도에 이미 전년도에 ‘검란’으로 만신창이가 된 검찰에 대한 비판적 여론을 조성해 수사권 조정 등의 숙원을 이루려는 목적이 포함됐다고 하더라도, 동영상의 존재 등 자극적 소재로 이미 여론의 집중포화를 피할 수 없게 된 마당에 스스로 매를 벌어야 할 이유가 없다.

검찰은 이런 저런 이유를 들어 김학의 전 차관이 결론적으로 부적절한 행위를 했다 하더라도 물을 죄가 없는데 기소할 순 없지 않느냐는 논리를 펴고 있는데, 당시 검찰이 수사에 적극적으로 나섰다면 상황은 달라질 수 있었고 무리한 기소가 되더라도 재판에서 무죄 판결이 나면 그만인 것이다. 검찰 고위직이 건설업자의 초청으로 별장에서 부적절한 행위를 벌인 영상이 존재한다는 게 무엇을 의미하는지 추정하는 게 어렵지 않은데도 사실상 아무것도 하지 않은 것은 법리나 조직보위 논리를 넘는 다른 ‘판단’이 작용했을 가능성을 가리킨다고 봐야 한다. 결국 ‘빽’의 문제 였던 게 아니냐는 거다. 황교안 대표 책임론 등은 법무부 장관과 전 차관의 관계가 아니라 바로 이 대목에서, 이런 정치에 동조한 책임으로부터 파생되는 것이다.

그렇다면 지금 시점에 검찰이 대통령과 법무부 검찰과거사위의 지적에 따라 지금까지 드러나지 않았던 사건의 전모를 밝혀낼 수 있을까? 쉽지 않을 것 같다. 검찰과거사위가 특수강간이 아닌 뇌물 혐의를 거론한 이유도 여기에 있을 것이다. 현재 시점에선 김학의 전 차관이 2007년 12월 21일 이후 윤중천 씨 등에게 받은 뇌물이 1억원 이상으로 특정될 때에야 공소시효가 성립된다. 윤중천 씨는 대검찰청 진상조사단에 김학의 전 차관에게 건넨 뇌물 규모를 수천만원대라고 진술한 걸로 알려져 있다. 곽상도 의원 등의 직권남용 혐의 역시 당시 직책과 권한, 과거 사례 등으로 볼 때 실제로 적용하기는 쉽지 않다.

만일 김학의 전 차관 사건이 법무부 산하 검찰과거사조사위의 재수사 권고에도 불구 제대로 처리되지 않는다면 ‘제 머리 못 깎는 검찰’이란 규정에 의해 공수처 도입 필요성은 더욱 커질 것이다. 더불어민주당의 주요 인사들은 이미 김학의 전 차관 사건을 거론하며 공수처 도입의 필요성을 강조하고 있다. 

김은경 전 환경부 장관이 26일 새벽 서울 동부구치소를 나서고 있다. (연합뉴스)

이 반대편에 있는 것으로 보이는 사건이 김은경 전 환경부 장관이 연루된 이른바 ‘환경부 블랙리스트 사건’이다. 문재인 대통령은 과거 공수처의 필요성을 강조하면서 검찰이 살아있는 권력을 수사할 수 있어야 한다고 했는데, 이 사건이 바로 그러한 사례에 해당하기 때문이다. 만일 김은경 전 장관이 구속됐더라면 검찰은 수사의 초점을 청와대로 옮길 수 있었을 것이고 검찰이 마음만 먹으면 살아있는 권력도 얼마든지 엄정한 수사의 대상으로 삼을 수 있다는 사실을 증명하는데 성공했을 것이다. 그러나 조선일보의 표현을 빌리자면 “80년대 총학 출신에 원칙주의자”인 영장전담 판사가 구속영장 발부를 기각했기 때문에 검찰의 수사는 힘이 빠지게 됐다.

이 판사가 밝힌 기각 사유에 “최순실 일파”란 표현이 담겨 정치적 결정이란 논란이 일고 있는데, 이건 오히려 지엽적인 부분에 불과하다. 기각의 논리는 두 가지 판단에 기초하고 있다. 첫째는 국정농단 이후라는 특수한 상황이 이 정권이 ‘낙하산’을 동원해 공공기관 인사를 장악해야 한다는 당위를 뒷받침 한다는 것이다. “최순실 일파”란 표현은 이 논리를 뒷받침한다. 둘째는 ‘낙하산’이란 관행이 보편적으로 존재해왔다는 점을 고려하지 않을 수 없다는 것이다. 그 외 현직 장관이 아니어서 증거인멸 등의 우려가 없다는 점 역시 언급됐는데, 결국 특수성과 보편성이란 두 가지 측면에서 영장 발부의 필요가 없다고 본 것이다. 이 판사의 변은 “최순실 일파”라는 표현이 아니라 바로 이 대목에서 정치성을 띈다. 

이 지면에서도 수차례 지적했듯 이전 정권의 문화계 블랙리스트 사건과 김은경 전 장관이 연루된 사건은 성격이 다르다. 법리야 일부분에서 같은 것을 적용할 수 있을지 모르지만 전자는 국민이 누려야 할 표현의 자유를 국가 권력이 조직적으로 침해한 것이고 후자는 ‘낙하산 인사’의 문제이다. 그러나 양자가 다르다는 게 죄를 물을 수 없다는 말은 아니다.

때문에 ‘낙하산 인사’를 통해 관철해야 할 어떤 가치가 있었는지를 영장전담 판사가 아니라 정권이 정치적으로 설명하고 국민을 설득할 수 있어야 한다. 그것은 앞의 김학의 전 차관 사건에서도 마찬가지다. 혐의를 적용하기 쉽지 않음에도 재수사 권고가 의미있는 것은 그 시도 자체가 권력에 짓밟힌 피해자의 구제를 마지막까지 시도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공수처가 파벌들의 재편성이나 재집권을 위해서가 아니라 국민의 권리 보장을 위해 필요하다는 점을 설득해야 한다.

김민하 / 저술가  webmaster@mediau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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