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디어스=송창한 기자]

"당사의 신문광고 및 각종 홍보물의 일부 내용에 포함된 여성을 성적 대상화한 표현과 문구에 대해서 뼈저리게 책임을 통감하고 저희 대호(주)를 믿고 사랑해주신 전국 여성농민 분들께 실망을 안겨드린 점 고개숙여 진심으로 사과 말씀드린다" - 2018년 5월 30일 대호 주식회사 사과문 중

지난해 농기계 업체 '대호'는 여성을 성적 대상화 한 홍보물로 다수의 언론과 시민사회로부터 비판받은 뒤 이 같은 사과문을 게재, 재발방지를 약속했다. 그런데 올해 '대호'가 제작한 홍보물 역시 문제가 됐던 일부 문구를 삭제했을 뿐 광고 콘셉트는 그대로 유지해 여성에 대한 성적 대상화를 반복했다는 비판이 제기된다.

지난해 해당 문제를 고발한 '헬로파머'는 25일 "여성의 신체를 노골적으로 성적대상화 해 사과문을 발표했던 농기계 회사가 새로운 광고를 냈지만, 여전히 여성혐오가 담겨있다는 비판을 받고 있다"고 보도했다. 아울러 "문제의 광고를 싣어와 함께 비판 받았던 농민신문 역시 문제가 없다며 대호의 광고를 다시 싣고있다"고 지적했다.

2019년도 대호(주) 농기계 홍보물

대호는 올해 제작한 새로운 홍보물을 자사 홈페이지에 게재하고 있다. 문제가 됐던 문구들은 삭제됐지만 광고 컨셉은 그대로 유지한 홍보물들이 게재된 상황이다. 써레의 실린더를 여성모델이 안고 있는 사진과 함께 '더욱 커지고 강력해진 실린더와 연결링크'라고 설명하거나, 삽을 들고 있는 모델이 '언덕 밑에도 골을 낼 수 있다'는 문구와 함께 뒤돌아 있는 식이다.

지난해 대호의 광고가 논란이 빚자 전국여성농민회총연합(전여농)은 '여성을 성적 대상화하고 여성농민을 배제한 대호 농기계 광고 규탄한다'는 제목의 성명을 발표한 바 있다. "튼튼하고 성능이 좋으며 농기계의 장점을 해설하기 위한 방법은 얼마든지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대호농기계는 여성의 성적대상화를 통해 성 평등을 요구하는 목소리가 그 어느 때보다도 높은 지금 시대의 흐름을 역행하는 행위를 일삼고 있다"는 게 전여농의 지적이었다.

당시 전여농은 ▲튼튼하고 성능 좋은 농기계를 남성으로 상정하고, 여성모델은 농기계의 성능이 좋은지에 대해 성적인 비유와 표현으로 대상화되고 있다는 점 ▲농기계를 남성들만의 전유물로 여기고, 여성농민들을 배제하고 있다는 점 등을 비판했다. 이 같은 문제점들이 노골적인 일부 문구만 삭제되었다고 해서 해소되었을까.

2019년도 대호(주) 농기계 홍보물

지난해 대호의 광고를 보고 “전문가가 아닌 사람이 보더라도 심각한 문제를 느낄 정도로 여성을 성적으로 대상화하고 있다"고 비판한 윤김지영 건국대학교 몸문화연구소 교수는 '헬로파머'와의 인터뷰에서 대호의 올해 광고 역시 여성을 성적 대상화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더 커지고 강력해졌다'는 표현은 남성의 성기를 강조할 때 흔히 쓰이는 표현이며 해당 부품을 정 중앙에 우뚝 솟은 것으로 표현, 여성모델이 그것을 팔로 껴안고 있다는 점 ▲ '예쁘게 쌓아 올린 두둑'이라며 자연을 여성의 몸, 성기로 빗대고 그 위에 다리를 벌린 여성모델을 의도적으로 배치한 점 ▲ 농기구 성능과 관계없이 엉덩이를 뒤로 빼는 방식의 포즈를 취한 여성모델을 맥락없이 배치한 점 등이 여성의 신체를 여전히 성적으로 대상화하고 있다는 지적이다.

이 같은 지적에 우선 농민신문 측은 대호의 광고를 게재한 것은 사실이나 대호의 올해 홍보물을 그대로 게재한 것이 아닌, 수정본을 게재했다는 입장이다. 농민신문 광고국 관계자는 25일 미디어스와의 통화에서 "(대호의)홈페이지 광고를 그대로 넣었다면 당연히 문제제기에 동의한다. 그러나 게재된 걸 보면 그 그림과는 상관도 없고, 문구도 전혀 상관이 없다. 작년과 비교해 확연히 달라졌다"고 말했다.

올해 3월 농민신문에 게재된 대호 광고.

하지만 농민신문은 지난 달 20일 <농업계 구수한 'B급 광고' 바람>이라는 제목의 기사를 게재해 이 같은 대호의 광고를 홍보하기도 했다. 해당 기사에서 농민신문은 "'딱딱한 농기계 녹는다~녹아!', 어딘가 촌스럽고 뭔가 어설픈 이 같은 'B급 광고'가 최근 20~30대는 물론 중장년층으로부터 인기를 끈다"며 "'B급 광고'가 세간의 화제가 되면서 농업계 광고가 새삼 주목 받는다"고 썼다.

이어 농민신문은 "어울리지 않는 상황을 설정해 눈길을 끄는 방식도 동원된다. 대표적인 경우가 농기계 업체인 대호(주)의 광고"라며 "이 업체는 제품을 홍보하는 자사 신문광고에 8년째 젊은 아가씨를 등장시키고 있다. 민소매 티셔츠에 쫄반바지를 입은 아가씨를 농기계에 태우거나, 말쑥한 아가씨에게 농기구를 들고 서 있게 하는 모습은 그 자체만으로도 어색하고 우스꽝스럽지만, 광고 효과는 크다는 게 업체측 설명"이라고 보도했다.

“광고가 너무 유치하고 때로는 경우 없는 것 아니냐는 지적도 받긴 하지만, 젊은이들이 떠나버린 농촌에서 젊고 발랄한 아가씨를 등장시킨 사진은 그 자체만으로도 효과 만점”이라는 대호 관계자의 입장도 덧붙였다. 해당 기사는 2011년에 작성돼 게재된 기사로, 농민신문은 8년 전 게재한 기사를 지난 달 한 번 더 게재했다.

농민신문 2월 20일자 <농업계 구수한 ‘B급 광고’ 바람>. 해당 기사는 2011년 농민신문에 게재된 바 있다.

홍보물을 제작한 대호는 지난해와 달리 문제가 됐던 문구들을 삭제했으므로 광고 콘셉트를 유지하는 것은 문제가 없다는 입장이다. 대호 관계자는 25일 미디어스와의 통화에서 "문구가 가장 문제였고 그 부분에 대해 잘못을 명확하게 시인했듯, 어떤 걸 연상케 하는 문구를 전부 수정한 것"이라며 "그런 의도도 없고, 기존에 있었던 요소들을 뺀 채 10년째 해왔던 콘셉트대로 한 것"이라고 항변했다.

문구는 삭제됐지만 여성을 성적 대상화 해 문제가 된 지난해 광고 콘셉트를 그대로 유지하고 있는 것 아니냐는 질문에는 "저희 농기계의 특성을 살린 것"이라며 "(예컨데)여성모델이 왜 실린더를 들고 있느냐는 지적인데, 다른 제품보다 더 굵고, 크고, 강력해진 게 저희 실린더의 특징이고 차별성"이라고 답했다.

농민신문 측이 현재의 홍보물에 문제점을 느껴 수정본을 요청했다는 내용에 대해서는 "홈페이지에 있는 내용(홍보물)이 문제가 있다고 생각하는 게 아니다. 신문사 측에서 혹시 문제가 될 수 있다며 조심스러워 하고 (수정)요청을 했기 때문에 바꿔주겠다고 한 것"이라며 "협조를 한 것이다. 문제의식이 있기 때문에 투트랙으로 간 게 아니다"라고 말했다.

한편, 현재 전여농 측은 올해 제작된 대호의 홍보물과 농민신문에 게재된 광고에 대해 지난해와 같은 문제가 발생하고 있다고 판단, 입장표명을 비롯한 대응을 준비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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