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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이트데이와 ‘탈연애’ 담론[도우리의 미러볼]
도우리 객원기자 | 승인 2019.03.15 11:18

[미디어스] 이맘때면 알록달록한 사탕이 거리마다 부려져 있다. 매년 3월 14일은 ‘남성이 사랑하는 여성에게 사탕을 주며 사랑을 고백하는 날’인 화이트데이여서다. 하지만 이 다음날 볼썽사나운 재고나 쓰레기로 처지가 바뀌는 사탕처럼, 화이트데이를 둘러싼 일들은 전혀 달콤하지 않다.

화이트데이가 달갑지 않은 사람이더라도 거리의 사탕들이, 인터넷 광고들이, 기사들이 중요한 날이라고 외치는 통에 기억하고 의식할 수밖에 없다. 이날 연인 관계가 아닌 이성 지인과 주고받는 ‘의리사탕’을 챙기냐는 설문에 직장인 절반이 “그렇다”고 대답한 결과까지 기사화될 정도다.

지금의 연애도 그렇다. 아주 자유롭고 친밀해야 할 연인 관계들이 자유롭지도, 로맨틱하지도 않기 때문이다. 그중에서도 마음을 표시하는 것이 의무화되어버린 화이트데이처럼 ‘연애의 스펙화’ 현상이 그렇다.

농심이 화이트데이(3월 14일)를 맞아 서울 서초구 세빛섬 옆에 자사 사탕 브랜드 츄파춥스를 본뜬 대형 조형물을 설치했다고 13일 전했다. 높이 25m에 달하는 이 조형물은 밤에는 불빛이 켜져 세빛섬 조명과 함께 낭만적인 분위기를 연출한다고 농심은 설명했다.(연합뉴스)

‘스펙’이라는 말은 직장을 구할 때나 입시를 치를 때 요구되는 학벌·학점·토익 점수 등의 평가요소를 말한다. 그러니까 스펙의 요소는 평가할 기준, 그리고 평가할 주체다. 특히 기념일은 사적인 관계인 연애를 평가할 기준점이 되고 있다. 화이트데이와 그 짝인 밸런타인데이, 빼빼로데이가 그렇다. 이외에도 투투 데이(만난 지 22일째), 50일, 100일 등을 이벤트 삼거나 커플링이나 커플 패션 시장이 그렇다. 연인끼리 누가 얼마나 기념일을 챙기고, 연락을 얼마나 자주 하는지를 두고 싸움을 벌였다는 일화를 어렵지 않게 들을 수 있는 이유다.

이러한 양상들은 연애의 종착지인 결혼에서도 비슷하게 찾아볼 수 있다. 혼인신고만 하고 결혼식을 올리지 않으면 불완전한 것으로 바라보는 시각이 대표적이다. 결혼식에서는 팡파르, 결혼식 영상 촬영 등 결혼식 옵션들이 빼곡하게 상품화되어있다. 이러한 ‘옵션’은 말 그대로 형식상 선택 가능하지만, ‘남들 다 하니까’, ‘안 하면 이상해 보여서’ 라는 이유로 어쩔 수 없이 갖추는 경우들이 많다.

연애를 두고 평가하는 요소가 난무하다 보니 오히려 연애, 사랑은 텅 빈 기호가 되어버렸다. 관계 내 고유한 친밀함에 집중하기 어려워졌기 때문이다. 연애가 본래 결혼과 같은 계약적, 의무적 관계와 달리 아주 사적이고 자유롭기 위한 관계 맺기였다는 점을 떠올린다면, 작금의 연애를 둘러싼 상황은 오히려 그 반대와 가깝다. 연애를 통해 살아있음의 감각을 느끼고, 나의 경계가 깨지면서 나의 자아가 확장되기보다도 자본과 체면의 촘촘한 기준에 꼼짝없이 갇히기 쉬운 현실이다.

이렇게 연인 관계라면 으레 해야 되는 것들이 통용되는 문화는 결국 ‘정상 연애’와 ‘비정상 연애’를 구별해낸다. ‘연애 스펙’을 충족하지 못하는 연애는 덜 사랑하는 것, 불완전한 것처럼 느끼게 만들기 때문이다. 이외에도 성소수자들의 연애, 노인들의 연애, 구속하지 않는 연애, 성관계를 맺지 않는 연애 등에 대해 ‘이상한 것’이라며 차별하는 문화도 그렇다.  

탈연애란 새로운 연애를 말하고자 함이 아니다. 우리가 잃어버린 관계 능력을 되살리고자 하는 일이다. 기준과 평가, 자본이 잠식한 ‘정상연애’ 문화에 진짜 정상성이 무엇인지, 진정 우리를 살아있게 하는 관계는 무엇인지 질문하며 평가의 주체를 뒤집는 일이다. 그래서 화이트데이든 빼빼로데이든, ‘탈연애’의 관점에서 되물을 수 있어야 한다. ‘달콤함에의 강요를 멈춰달라고. 우리의 관계는 단맛 외에도 신맛, 쓴맛, 그리고 아무런 맛이 없을 자유도 존중받아야 한다고.’ 

도우리 객원기자  webmaster@mediau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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