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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다른 언어로 꿈을 꾼다’, 사라져가는 언어를 통해 찾은 다름의 미학[미디어비평] 너돌양의 세상전망대
너돌양 | 승인 2019.03.10 15:31

*영화 주요 부분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다른 언어를 배운다는 것은 다른 문화, 세계관을 알게 되는 것과 같다. 2017년에 열린 제33회 선댄스영화제에서 월드시네마 부문 관객상을 수상한 <나는 다른 언어로 꿈을 꾼다>(2017)는 낯선 언어를 통해 진정한 교감을 꿈꾸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다루고자 한다. 

멕시코에서 토착 원주민 언어를 연구하는 마르틴(페르난도 알바레스 레베일 분)은 소멸 위기의 고대 토착 언어 ‘시크릴어’의 비밀을 찾기 위해 해변가에 위치한 한 마을을 찾는다. 하지만 마르틴이 어렵게 당도한 마을에는 시크릴어를 구사할 줄 아는 원주민들이 몇 명 없을 뿐더러, 그들마저 수십 년 전 크게 다툰 이후로 서로 얼굴도 보지 않고 사는 사이가 되었다. 어떻게든 시크릴어를 연구하고 싶은 마르틴은 마을에서 유일하게 시크릴어를 구사하는 이사우로(호세 마누엘 폰셀리스 분)와 에바리스토(엘리지오 메렌데즈 분)을 화해시키기 위해 별의 별 노력을 기울이지만, 생각보다 두 사람 간의 갈등의 골이 깊어 보인다.

영화 <나는 다른 언어로 꿈을 꾼다> 스틸 이미지

수십 년 전 크게 다툰 이후 같은 마을에 살아도 말도 섞지 않고 살았던 이사우로와 에바리스토가 서로 등을 돌리게 된 이유는 순전히 ‘사랑’ 때문이다. 마을 사람들은 이사우로와 에바리스토가 한 여자를 동시에 사랑했기 때문에 연적이 되었다고 하지만, 진실은 저 너머에 있었다. 

애초 이뤄질 수 없는 사랑이었다. 원주민이었지만 일찌감치 스페인어를 능숙하게 구사하는 독실한 크리스천이 된 에바리스토는 하나님의 교리에 반하는 행동을 할 수 없었다. 그래서 에바리스토는 자기가 진짜 좋아하는 사람이 아닌 다른 사람과 결혼하게 된다. 하지만 에바리스토가 진정 좋아했던 연인은 그가 자신이 아닌 다른 사람을 선택한 것을 도저히 받아들일 수 없었다. 사랑했지만 그저 멀리서 바라볼 수밖에 없었던 두 사람 간의 애증은 점점 더 커져가고, 그들을 화해시킬 뾰족한 방도 또한 없어 보인다. 

그런데 우여곡절 끝에 수십 년 만에 얼굴을 마주한 두 사람은 마치 어제 만난 사이처럼 보자마자 친밀한 대화를 이어 나간다. 그러다가 또 다시 틀어져버린 두 사람은 서로가 가장 소중하게 여기는 것에 불을 지르는 대참사를 벌인다. 도무지 쉬이 이해가 가지 않는 두 사람의 아귀다툼은, 사실은 그들이 서로를 얼마나 그리워하고 애타게 찾고 있었는지를 보여주는 방증이다. 

영화 <나는 다른 언어로 꿈을 꾼다> 스틸 이미지

시크릴어를 연구하고 싶은 스페인계(라틴계) 백인 마르틴은 에바리스토의 손녀이자 시크릴어를 사용하는 원주민의 피가 섞인 루비아(파티마 몰리나 분)를 사랑하게 된다. 지역 라디오 방송국에서 주민들을 상대로 영어를 가르치는 루비아는 시크릴어가 아니라 전 세계 인구의 절반이 사용하는 영어를 배우고 싶어 하고, 미국으로 떠나는 것이 그녀의 꿈이다. 그럼에도 루비아는 평생을 크리스천으로 살고자 했던 에바리스토가 하나님의 품에 안기는 것이 아닌 시크릴어를 구사하는 시크릴 주민들만 갈 수 있다는 ‘이상향’에서 먼저 간 조상, 친구들과 함께 지내기를 원한다. 

본능대신 멕시코를 점령한 백인들의 종교(가톨릭)를 선택한 에바리스토와, 스페인어를 알지 못해 마을 주민들로부터 점점 고립되어갔던 이사우로의 슬픈 운명은 16세기 스페인의 지배 이후 원주민의 언어, 종교, 문화가 거의 사라져버린 멕시코의 현실을 보여 준다. 원주민의 후손들은 선조들이 힘겹게 지키고자 했던 언어와 문화를 존중하고 자랑스러워하지만, 정작 조상의 언어를 배우려고 하지는 않는다. 

언어의 맥이 끊기는 것은 세대 간의 단절, 더 나아가 문화의 소멸로 이어진다. 그런데 마을에서 몇 안 되는 시크릴어 구사자들은 그들의 자식들에게 조상 대대로 내려온 언어를 배우고 명맥을 이을 것을 강요하지 않는다. 시크릴어를 배우지 않는 크리스천 후손들 또한 자신의 부모만큼은 마을 고유 신앙을 기반으로 한 사후세계에서 영원한 안식을 찾길 간절히 바란다.

영화 <나는 다른 언어로 꿈을 꾼다> 포스터

디즈니-픽사에서 제작한 애니메이션 영화 <코코>(2017)와 비슷하게 죽은 자와 산 자가 어느 정도 왕래가 가능한 사후세계관을 보여주는 시크릴어 주민들의 비밀 동굴은 오직 시크릴어를 사용하는 사람들만 들어갈 수 있다. 하지만 시크릴어를 모르는 사람들도 시크릴어를 우호적으로 생각하고, 조금이라도 배우고 싶다면 얼마든지 시크릴어의 비밀이 숨겨진 숲속에서 산 자, 죽은 자, 모든 동식물이 자유롭게 나누는 대화를 들을 수 있는 경이로운 체험이 가능하다. 

<나는 다른 언어로 꿈을 꾼다>에 등장하는 인물들은 자신과 다른 생각과 세계관을 가지지 않는 이들을 배척하지 않는다. 서로 다른 언어, 종교, 문화, 성적취향을 가지고 있지만, 자신의 생각을 타인에게 강요하기보다 상대방의 입장에서 이해하고 바라보고자 한다. 가끔 서로에 대한 애착과 집착이 상대방의 가슴을 후벼 파기도 하지만, 언제 그랬냐는 듯 긴밀하게 마음을 여는 영혼의 동반자로 돌아가는 인물들의 관계는 이상하게 깊고 미묘한 여운을 남긴다. 사라져가는 토착 언어 속에서 다름을 인정하는 자세를 돌아보게 하는, 신비롭고 몽환적인 꿈을 닮은 영화다. 

연예계와 대중 미디어를 통해 세상을 보고자합니다. 너돌양의 세상전망대 http://neodol.tistory.com

너돌양  knudol@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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