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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욕차 골목길 접어들 때에[여해, 바다와 같아라]
백종훈 원불교 교무 | 승인 2019.03.04 13:44

[미디어스] 햇살 좋은 날. 대지에 볕이 스민다. 땅이 꿈틀거린다. 여기저기 파릇파릇 싹이 움튼다. 매화꽃 몽우리 부풀어 오르는 나른한 정오, 겨우내 움츠렸던 나는 한껏 기지개를 켠다. 지리산에 봄이 내린다. 

삭풍을 피해 한철 더부살이 해온 떠돌이 고양이가 끼니때가 지나도 안 보인다. 마실 나갔나보다. 얻어먹는 처지에도 좀처럼 곁을 허락하지 않는 자존심 센 녀석이다. 이제 날도 풀리니 동냥도 이만 그칠 때가 됐다. 

나른한 오후. 투명 유리 다관茶罐에 더운 물을 부어 메리골드 꽃차를 우린다. 빛깔이 곱다. 한 모금 음미하며 눈을 감는데 정적을 깨고 전화벨이 울린다. 인월 노인복지센터 과장님이다. 꼭 도와줘야 한다고 신신당부다.  

인월 노인복지센터 요양보호사들은 스스로 몸을 가누기 어려운 어르신들을 찾아가 목욕을 도와드린다. 박스 모양의 화물칸에 욕조를 갖춘 트럭을 활용한다. 그런데 운전을 맡고 계신 사무국장님께서 1주일간 자리를 비우게 되었다. 그래서 내게 임시로 1톤 탑차 운전을 부탁하셨다. 

오래 몰아 익숙한 승용차에 비해 이동 목욕차는 높고 길다. 후방카메라가 있다지만 백미러가 없다. 여간 부담스럽지 않았다. 그러나 간곡한 요청을 마다할 수 없었다. 용기를 내기로 했다. 지리산 줄기에 자리를 틀고 여간해선 움직이지 않다가 모처럼 산을 내려왔다.   

요양보호사 화영님이 차에 따뜻한 물을 채우고 장비를 점검한다. 차량 내부는 정갈하다 못해 결벽증이 느껴질 정도다. 이제 내 차례다. 시동을 걸었다. 디젤엔진 차 특유의 진동이 느껴진다. 액셀을  조심스럽게 밟는다. 차가 부드럽게 미끄러져 나간다. 조심해서 서서히 속도를 높인다. 과속방지 턱을 넘을 때마다 탱크에 가득 찬 물을 따라 차도 같이 출렁인다. 

큰 도로 옆으로 난 작은 길을 따라 부락에 들어선다. 길이 점점 좁아진다. 차 한 대 겨우 다닐 정도 너비다. 길 좌우로 키 높이 담장이 이어졌다. 군데군데 함석으로 만들어진 지붕 처마가 담 밖으로 삐져나와 있다. 게다가 오르내리기를 반복한다. 빙판이 아니라 천만다행이다. 구부러진 골목 담벼락에 차를 긁지 않으려 온 신경을 집중했다. 마주 오는 차가 없기를 기도했다. 뒤로 물릴 자신이 없었다. 

목적지에 겨우 도착했다. 물을 들이켰다. 긴장해서 몸이 굳었다. 몸을 풀어주려 내렸다. 텃밭에 발을 들여 본다. 땅기운이 포근하다. 멀리 봄을 맞이하는 농부들이 분주하다. 바람이 시원하다. 요양보소사 두 분이 어르신 집에 들어간 사이에 골목길을 걸었다. 동네 개들이 짖어댄다. 낯선 남자의 냄새를 맡았나보다.  

창고를 지키는 검둥개 한 마리가 눈에 걸렸다. 반갑게 꼬리를 친다. 눈빛이 선하다. 똥이 지저분하게 나뒹군다. 밥그릇 물그릇이 텅텅 비었다. 물을 떠주려 마당 수도꼭지를 돌렸다. 잠겨있다. 차에 돌아가 물병과 먹던 쌀과자를 가져왔다. 검둥이의 빈 그릇에 나눠줬다. 

요양보호사 화영님이 급히 부른다. 어르신이 씻기 싫으신 모양이다. 목욕차까지 할머니를 모셔 와야 했다. 문을 열고 둘이 방에 들어섰다. “할머니 교회가자. 여기 목사님 오셨어.” 졸지에 나는 빡빡머리 목사가 되었다. “할머니 같이 교회가요.” 능글맞게 맞장구쳤다. 놀랍게도 할머니가 몸을 일으켜 따라 나선다. 신앙의 힘이다. 대문 밖을 나서서야 눈치 채셨다. “에이 아니잖아.” 그래도 못 이기는 척 목욕차에 오르셨다. 

한 시간여쯤 지나 목욕차 옆문이 열렸다. 할머니가 달덩이처럼 훤해지셨다. 손을 잡고 방까지 모셔다 드렸다. 잠시 쉬는 시간. 폐가 구석에서 하얗고 긴 털을 가진 고양이가 나온다. 시골동네에 어울리지 않는 고양이다. 몇 년 전에 주인이 놓고 이사 갔다고 한다. 손짓을 하자 소리를 내며 다가와 몸을 비빈다. 버려졌지만 여전히 사람을 따른다. 화영님은 이 마을에 올 때 마다 그 고양이에게 간식을 챙겨준다고 한다. 

젊은이들은 떠났다. 그들의 기억 속에 고향은 그 시절 그대로겠지만, 남겨진 자들의 얼굴에는 주름이 패고 허리는 굽어간다. 좁은 길, 오래된 집, 빛바랜 가족사진, 차가운 방바닥, 낡은 전기장판, 혼자 떠드는 텔레비전 앞에 우두커니 앉은 노인들이 남았다. 한 분 두 분 이슬처럼 스러져간다. 쇠락한 마을의 풍경은 그러하다. 이 시대 한국의 어두운 초상이기도하다. 

지금 이 순간. 방방곡곡에서 쓸쓸한 골목길을 누비며 뭇 생명에 생기를 불어넣는 이들이 있다. 그들의 관심과 정성 헌신이야말로 어르신들 마음에 찾아온 봄소식 아니겠는가. 버려진 생명들에 전해지는 복음이 아니겠는가.

법당에 모신 부처님이 다가 아니었다. 온정이 오가는 자리에 부처님은 함께하신다. 

백종훈 원불교 교무  webmaster@mediau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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