굉장히 대담한 발언, 혹은 조심성과 배려가 부족한 옹호였습니다. 성균관 스캔들의 뒤를 이어 방영되는 KBS의 새로운 월화드라마 ‘매리는 외박중’의 여자 주인공으로 발탁된 문근영이 제작 발표회에서 꺼낸 짥은 말 한마디를 접하고 든 생각이었어요. 수시 입학으로 논란이 되었던 성균관 대학교 후배 고아성을 향한 지지와 응원을 담은 충고가 바로 그것이었죠. 매사에 충분히 고려하며 말을 꺼냈던 그녀가 왜 이렇게 민감한 사항에 대해 가볍게 이야기했는지 자못 당황스럽더군요. 그녀 역시도 고아성이나 다른 수시 합격 연예인들을 향한 손가락질과 질타에서 벗어나기 힘들기에 더더욱 그렇구요.

대학교 입학을 위한 수순에서 ‘자신도 부끄러운 과정을 밟은 것이 아니지만 연예인이라는 이유로 시선을 받는 것이 힘들었다’ 던지 “연예인들이 편안하고 쉽게 이룬다고 생각하시는데 고충도 많고 공부, 연기, 두 가지를 지키기 위해 애를 쓰지만 그게 보이질 않을 뿐더러 보일 수도 없기 때문에 쉽게 판단 받고 평가받는 것 같다‘는 그녀의 표현은 사실 새로운 드라마를 소개하는 제작발표회의 본질과는 전혀 상관없는 곁가지에 불과한 말들입니다. 그녀의 입장에서는 같은 대학의 후배가 된 고아성을 향한 애틋함과 격려의 표현일 수도 있을 것이구요. 한 개인의 입장이라면 아무런 문제가 되지 않을 수도 있는 의사 표현이겠죠.

하나하나 따지면 분명 타당하다고도 할 수 있는 말입니다. 연예인이라고 해서 일방적인 매도와 비난의 대상이 되는 것은 부당합니다. 연기자의 길이 결코 평탄하다거나 손쉬운 것이라고 생각하지도 않습니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그들의 대학교 입학 과정 자체에 대한 옹호와 편들기를 하는 것은 너무나 순진한, 혹은 안일한 태도이기도 합니다. 여전히 학력에 의해 인생의 많은 부분이 결정되는, 그래서 많은 것들을 누리고 즐겨야 하는 어린 청소년기를 오로지 대학 진학을 위해 희생해야 하는 수많은 이들의 고행이 반복되고 있는 대한민국의 실정에서 너무나 배려가 부족한 발언이었어요.

초등학교, 아니 유치원 이전부터 조기교육이니 특별 학습이니 하는 가혹한 학력 쌓기에 시달리는 수많은 동년배들, 혹은 과거에 그런 전쟁 같은 경쟁에 시달렸던 한때는 수험생이었던 이들을 생각하지 못했다는 겁니다. 배우로서, 혹은 아이돌, 가수로서 남들과는 다른 혹독한 준비과정과 삶의 노력을 해왔던 것도 사실이겠지만 그들의 동갑내기들 역시도 좀 더 괜찮은 대학의 간판을 얻기 위해 역시 죽어라고 공부하고 괴로운 경쟁의 과정을 거쳐야만 했습니다. 그것도 돈과 명성을 얻으며 고생하는 연예인들과는 달리, 부모님의 돈과 자신의 청춘을 소비해가면서 말이죠. 게다가 이들 연예인들이 방송에서 보여주곤 했던 모습들은 그들이 꿈을 위해 포기해야만 했던 대가이기도 했겠지만 기초 학력 수준조차 의심할 만한 단순한 모습들이 대부분이었거든요. 그런 사람들은 척척 대학에 합격하는 모습을 보고 평범한 사람들이 느낄 상대적인 박탈감, 그리고 억울한 심정을 생각한다면 쉽게 편들기를 할 성질의 주제는 분명 아니었어요.

물론 문근영의 한 마디가 문제의 본질은 아닙니다. 대학이라는 과정이 과연 누구나 반드시 거쳐야만 하는 통과 의례가 되어야 하는지, 연예인들이 주로 애용하는 특별전형이라는 방식이 과연 우수한 인재를 선발하는 기준으로 합당한 것인지, 그런 방식을 통해 선별된 인원들은 전체 선발 정원에서 제외해야 하는 것은 아닌지 등등의, 어쩌면 구조적인 개선과 고려가 우선시되어야 할 사항이죠. 하지만 그런 근본적인 해결 방안이 요원한 상황에서 자신 역시도 특혜의 대상자 중 한 사람인 그녀의 발언은 조심스러워야 하는 것이 당연하다고 생각합니다. 그녀를 비롯한 연예인들이 특별전형을 통해 대학에 갈 수 있었던 가장 큰 이유는 그들이 대중들로부터, 즉 평범하게 성장해서 지옥 같은 입시 과정을 거친 이들로부터 사랑과 지지를 받았다는 사실이니까요. 보통 사람들의 가장 힘들고 괴로운 사정을 단지 연예인이라는 이유로 보다 유리한 대우를 받은 사실을 당연하게 받아들이는 것은 결코 좋게 보이지 않아요.

뭐 비단 고아성 뿐인가요? 찬바람과 함께 입시철이 다가오고 있고, 또 다시 청춘 남녀 연예인들이 여러 악담과 비난을 감수하며 여러 아이돌 그룹의 멤버들 역시 속속들이 특별전형 합격 소식을 전하는 시절이 되었습니다. 어쩌면 문근영의 이번 발언은 그런 혹독한 대학 입학 신고식을 치러야 할 후배 연예인들을 향한 격려라고 할 수도 있겠네요. 분명 이해할 수도, 어쩔 수 없는 상황인 것을 알고도 있지만 그 발언의 대상이 한 개인이나 동료 후배들을 향한 옹호가 아닌 지금의 현실에 대한 불만이나 아쉬움, 그리고 그들 역시도 이상하게 꼬여버린 대입 제도와 어린 시절부터 공부가 아닌 자신의 분야에 매진할 수밖에 없는 사정에 대한 안타까움을 표명하는 것이 더 좋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이 드는 것은 어쩔 수 없네요. 어쩌면 언제나 신중하고 겸손한 태도를 보여준 좋은 배우 문근영이였기에 안티를 부를 수밖에 없는 그녀의 이번 발언은 더더욱 아쉬워요.

'사람들의 마음, 시간과 공간을 공부하는 인문학도. 그런 사람이 운영하는 민심이 제일 직접적이고 빠르게 전달되는 장소인 TV속 세상을 말하는 공간, 그리고 그 안에서 또 다른 사람들의 마음을 확인하고 소통하는 통로' - '들까마귀의 통로' raven13.tistor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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