라이벌이 만나면 많은 사람들은 뜨거운 명승부를 기대하고 열광합니다. 경기 내적으로 불꽃 튀는 경쟁이 벌어지지만 경기 외적으로, 즉 팬들끼리 치열한 신경전이 벌어지는 것은 또 다른 묘미를 선사하기도 합니다. 하지만 이런 라이벌 경기가 재미있는 것은 오랜 희소가치를 지니면서 전통이 쌓이고 쌓이면서 생긴 '일련의 가공되지 않은 스토리'가 있었기에 가능했습니다. 자연스럽게 생긴 라이벌 매치는 그래서 많은 사람들을 흥분하게 만들고, 또 다른 감동을 선사합니다.

우리나라 K-리그에서 가장 큰 라이벌 매치 또는 더비를 꼽는다면 단연 수원 삼성과 FC 서울을 꼽는 사람들이 많을 것입니다. 2000년대 초반부터 형성된 이 더비는 '수도권 더비'로서 숱한 이야깃거리들을 양산해내고 발전하면서 오늘날 '명품 더비'로 거듭났습니다. 하지만 이 둘이 최근 '새로운 더비 매치'를 추진한다고 해서 관심을 모으고 있습니다. 바로 '프리 시즌 매치'가 그것입니다. 두 팀은 최근 정규 시즌 직전에 매년 정기전을 갖기로 합의했다면서 라이벌전의 활성화가 축구 흥행에 도움이 될 것이고 이 때문에 시즌 개막 직전 붐을 일으키기 위해 추진하기로 했다고 밝혔습니다. 이 '수도권 더비'를 지지하는 팬들 입장에서는 당연히 반가운 일이 아닐 수 없을 것입니다.

▲ 프로축구 포스코컵 4강 FC서울과 수원 삼성의 경기에서 FC서울 정조국과 수원삼성 양상민이 볼다툼을 벌이고 있다 ⓒ연합뉴스
그러나 이 '프리 시즌 더비'에는 두 가지 시선이 공존하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동안 이렇다 할 관심조차 없었던 '프리 시즌'이라는 개념을 활성화하고 어느 정도 붐을 일으키는 데는 도움이 될 수 있겠지만 선수들의 부상 위험, 그리고 이 한 경기를 통해서 과연 붐이 제대로 확산될 수 있을지는 의문이라는 것입니다.

그동안 한국 축구에 '프리 시즌'이라는 개념은 사실 거의 없다시피 했습니다. 프로야구, 농구 같은 경우엔 시범 경기라는 것이 존재했지만 축구에서는 그나마 전년도 컵대회 우승팀이 참가하는 '팬퍼시픽 대회' 정도가 프리 시즌 매치로 알려져 왔습니다. 사실 '프리 시즌'은 각 팀 입장에서는 시즌 외에 팬들의 흥미를 끌어 모을 수 있는 매치를 통해 관심을 환기시키고, 미미한 정도긴 하지만 어느 정도 수익도 거둘 수 있는 장으로 활용돼 왔습니다. 비시즌 기간 동안 새롭게 리빌딩된 팀의 첫 선을 보이며, 팬들과 함께 호흡하고 새 시즌을 활기차게 맞이하자는 의미도 역시 담겨 있습니다. 그런 프리 시즌이 좀 더 활성화된다면 축구 흥행에도 어느 정도 영향을 미칠 수 있다고 보고 있습니다.

하지만 '프리 시즌 매치'가 위험하다는 인식을 갖고 있는 경우는 대체로 선수들의 부상 위험이 높다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아직 몸을 정상 수준으로 끌어올리지 못한 상황에서 자칫 무리하게 뛰다 부상을 당하면 시즌 자체를 망칠 공산이 큰 경기가 바로 '프리 시즌'입니다. 이 때문에 유럽 유수의 팀들이 아시아나 아프리카 투어를 하면서 '프리 시즌 매치'를 진행하는 것을 두고 부정적인 시선을 거두지 못하는 사람들이 많은 것도 사실입니다. 실제로 우리나라 선수 가운데서는 손흥민이 이번 프리 시즌에서 정말 좋은 활약을 펼쳤음에도 마지막 경기 첼시전에서 발가락 부상을 당해 8주간 뛰지 못하며 아쉬운 데뷔를 치러야 했습니다. 어떻게 보면 '조금 원치 않는 경기'일 수 있는 이 프리 매치를 잘못 치렀다간 선수뿐 아니라 팀 전체가 망칠 수 있다는 위험도 내재돼 있는 게 사실입니다.

부상 위험도 부상 위험이지만 이번 수원-서울 프리 시즌 매치를 통해 K-리그 전체 흥행에 도움이 될 것이라는 발상이 조금은 위험해 보인다는 지적도 들 수 있습니다. 매번 수원-서울 더비 경기가 열릴 때마다 나오는 문제지만 K-리그가 명품 더비를 갖추고도 다른 경기에서는 왜 많은 관중이 찾지 않고, 관심이 없을까라는 문제를 깊이 있게 고민하고 물음표를 던져보곤 했습니다. 국가대표 경기, 월드컵을 통해서 'K-리그에 관심 갖자'고 하면서 정작 관중이 찾지 않는 것을 보면 우리 축구의 근본적인 문제가 무엇인지를 좀 더 깊게 고민하고 해결하려는 모습을 보여야 한다는 것입니다. 하지만 가장 '뜨거운 팀'으로 불리는 두 팀의 프리 시즌 매치가 관심을 환기시키는 데는 어느 정도 도움이 될 수 있다 할지라도 그것이 K-리그 전체 팀에 확산될지 여부도 불투명해 보입니다. 자극이 돼서 다른 팀들이 새로운 프리 시즌 매치를 벌인다 할지라도 시즌 중에 자연스럽게 형성되는 '더비 매치'와는 또 다른 개념인 게 사실입니다. 또 과연 아직까지는 쌀쌀할 3월에 선수들이 박진감 넘치는 경기를 펼쳐서 '명품 더비'다운 면모를 보여줄지 여부마저 의문부호를 달게 만듭니다. 종합적으로 보면 오히려 역효과를 낳아 더비 매치의 희소가치도 떨어뜨리고 '이것도 저것도 아닌 매치'가 될 수도 있다는 얘깁니다.

어쨌든 이 '프리 시즌 매치'가 잘만 치러지면 도움이 될 수도 있겠지만 그렇지 않으면 팀이나 리그 전체에도 그다지 큰 장점이 되지 않을 가능성도 있습니다. 합의는 이뤄졌다고 하는데 만약 실행에 옮긴다면 보다 면밀하고 세심한 검토를 통해서 정말로 K-리그 모두에 '나비 효과'를 불러일으킬 만한 '프리 시즌 매치'를 벌이기를 기대해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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