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이 시끄럽지만 정치권의 뜨거운 뉴스는 황교안 전 총리의 자유한국당 입당 소식 정도인 것 같다. 황교안 전 총리의 입당은 전당대회 출마를 겨냥한 것으로 볼 수밖에 없는데 이렇든 저렇든 모처럼 자유한국당 안팎이 들썩이는 계기가 되고 있는 것 같다.

황교안 전 총리는 당내 일각으로부터 결단력이 없는 것 아니냐는 비판을 받아 왔다. 이번에도 타이밍이 너무 늦었다는 볼멘소리가 나온다. 특히 친박계 일부가 늦게라도 결단해줘서 고맙다는 게 아니라 왜 이제와 입당을 하느냐는 반응을 보이는 건 황교안 전 총리가 출마하지 않는 경우를 전제하고 자기 진로를 설계해온 사람들이 있기 때문이다. 게다가 황교안 전 총리가 수면 위로 부상한다는 것은 박근혜 정권을 떠올리게 하기 때문에 반대편에서도 비판의 빌미를 주게 될 여지가 크다.

결코 좋은 조건이라고 할 수 없는 환경에도 황교안 전 총리가 입당을 결심한 것은 크게 세 가지 요인 덕분인 것으로 보인다. 첫째, 보수정치 전반을 아우르는 구심점을 형성할 수 있는 인물이 부재한 상황에서 대권주자로서 확실히 각인돼 있다는 점이 여론조사 결과 등을 통해 지속적으로 확인되고 있다. 둘째, 차기 전당대회로 만들어질 지도부의 성격이 당 장악과 승자독식을 통해 대권으로 가는 그림에 가까워지고 있다. 셋째, 박근혜 전 대통령에 우호적인 세력의 대중적 위력이 여전히 식지 않고 있다.

최근 나온 자유한국당 관련 뉴스를 보면 이런 사실들이 확인된다. 예를 들어 ‘광주 북한군 개입론’을 주장하는 지만원 씨를 5.18 진상조사위원으로 추천해야 한다는 주장을 현역 의원이 공개적으로 제기하고 있는 것은 어떤가? 여기에 공수부대 여단장 출신 인사 추천을 검토한다는 보도까지 이어지는 걸 보면 일부 지역을 중심으로 한 박근혜 전 대통령 지지 세력이 적어도 자유한국당 지지층 내에서는 상당한 대중적 위력을 발휘하고 있다는 점을 알 수 있다.

이런 상황과 함께 새로 선출할 지도부 성격을 둘러싸고 당내의 논쟁이 뜨거운 것 역시 앞으로의 일을 전망하기 위해 함께 봐야 할 대목이다. 자유한국당 비대위는 14일 전당대회에서 선출할 지도부의 구성과 관련해 단일지도체제를 유지할지 아니면 집단지도체제로 변경할지를 결정할 예정이다. 소속 의원 전수조사를 통해 나온 결과를 보면 단일지도체제 유지 가능성이 큰 것 같다.

단일지도체제는 대표 명부를 분리해서 선출하는 방식이다. 당 대표가 갖는 권한이 상대적으로 크다. 반면 집단지도체제는 최고위원 중 최다득표자가 대표최고위원직을 갖는 방식이다. 대표최고위원이 다수파를 형성하지 못할 경우 나머지 계파가 연합해 지도부를 붕괴시킬 수 있다.

아이러니하게도 홍준표 전 대표는 두 경우를 모두 경험해 본 인물이다. 집단지도체제였던 2012년의 경우 유승민 의원이 당시 최고위원직을 사퇴하면서 홍준표 대표 체제가 와해됐다. 단일지도체제였던 2017년에는 “사당화”, “독선”, “불통” 등 홍준표 대표를 겨냥한 당내 반발이 끊이지 않았다. 당내 기반이 빈약한 인물인 홍준표 전 대표가 겪은 일과 받은 비판을 종합해보면 각각의 장단점이 나온다.

황교안 전 총리가 4일 저녁 강원 동해시 현진관광호텔에서 열린 제49회 극동포럼에 참석해 '위기를 기회로 만들자'라는 주제로 강연하고 있다. (연합뉴스)

황교안 전 총리는 박근혜 정권의 상징적 인물이긴 하지만 당내 기반이 없는 것은 마찬가지다. 앞서 확인한 ‘전제’를 근거로 황교안 전 총리가 대권에 도전하려면 단일지도체제의 대표로 당을 자기 위주로 재편하거나, 아니면 현실 정치와 거리를 두고 있다가 대선이 다가오는 시점에 범보수권의 추대에 준하는 분위기가 형성되기를 기대해야 한다. 그런데 전당대회를 대권 도전의 징검다리로 이용하려는 인물들이 많아지는 시점에서 후자를 바라는 것은 갈수록 어려워지고 있기 때문에 황교안 전 총리의 입당은 결국 전자를 택한 것으로 해석할 수 있다.

여기서 주목할 것은 김병준 비대위가 나름대로 의지를 갖고 이런 상황을 조성한 것으로 보인다는 점이다. 일부 보도에 의하면 김병준 비대위는 단일지도체제 유지에 힘을 실으면서 황교안 전 총리의 입당을 권유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김병준 비대위가 이렇게 방향을 잡은 이유는 크게 두 가지로 볼 수 있다. 공천과 홍준표 전 대표의 출마 문제이다.

다가오는 전당대회를 통해 구성된 지도부는 차기 총선에서의 공천권을 사실상 행사하게 되는데 여기서 이른바 ‘물갈이’가 얼마나 가능할 것인지에 보수진영 내의 대권구도가 달렸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런데 집단지도체제는 앞서 지적했듯 계파들의 연합 구도가 될 수밖에 없어서 공천 역시 지분을 나누는 방식으로 논의될 가능성이 커진다. 반면 단일지도체제는 총선까지 이르는 과정에서 당 대표가 공천에 직간접적 영향력을 행사할 수단이 넓어진다고 볼 수 있다.

이런 전제를 놓고 보면 김병준 비대위의 입당 제의가 가능하려면 황교안 전 총리가 ‘태극기 아바타’와 같은 행보는 하지 않는다는 공감대를 형성하는 것이 전제라고 볼 수 있다. 황교안 전 총리 입장에서도 대권에 도전하기 위해서는 “국정농단의 종범”과 같은 평가에서 벗어나야 할 필요성이 생긴다. 그러자면 어느 정도는 중도적 행보가 불가피하다는 점에서 김병준 비대위와 이해관계를 같이 하는 측면이 생겼다고 볼 수 있다.

마찬가지로 전당대회 출마를 준비 중인 오세훈 전 서울시장 입장에서도 황교안 전 총리의 출마는 나쁘지 않다. 오세훈 전 시장은 정치공백이 길어 당내 기반이 튼튼하지 않다. 선거 구도가 명확하지 않다면 선전을 기대하기가 어렵다. 오세훈 전 시장이 단일지도체제 유지를 요구한 것도 같은 맥락이다. ‘전당대회에 출마한 여러 명 중 한 명’ 이라는 구도로는 승부를 유리하게 만들기 어렵다. 하지만 황교안 전 총리가 출마하면 ‘친박 대 새로운 보수’라는 선명한 구도가 형성된다는 것이다.

여기서 문제를 더 복잡하게 만드는 것은 홍준표 전 대표의 재출마 여부이다. 홍준표 전 대표는 애초 전당대회 출마가 어렵고 친박계가 김태호 전 경남지사 등을 지지할 경우 유사한 행보를 할 것이란 예상도 나왔지만, 유튜브 방송 등의 활동이 예상보다도 더 큰 인기를 끌면서 출마를 저울질 하는 것으로 분위기가 바뀌었다. 일부 언론은 김병준 비대위가 홍준표 전 대표 출마를 막기 위해 황교안 전 총리 입당을 추진했다는 취지로 보도하고 있다. 오세훈 전 시장이 기대하는 대로 친박 대 비박 구도가 형성되면 홍준표 전 대표의 공간이 없어지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렇기 때문에 홍준표 전 대표로서는 출마를 강행할 수밖에 없을 거라는 전망도 있다.

물론 멀리서 지켜보는 입장에선 누가 나오든 마찬가지 그림이라는 기분인 게 사실이다. 오세훈, 황교안, 홍준표 등이 차기 당권을 놓고 다투는 당이 한국 정치의 발전에 무엇을 기여할 수 있을까? 집권 여당은 슬랩스틱 코미디에서 벗어나지 않는 제1야당에 고마워해야 한다. 이런 황당한 정치 환경 속에서 건전한 노선 경쟁을 통해 실제 문제를 해결하는 정치의 구현은 여전히 요원할 수밖에 없어 쓸쓸한 기분마저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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