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재인 대통령이 비서실장을 포함한 신임 참모진 일부 인사를 단행했다. 임종석 비서실장이 떠나는 자리를 노영민 주중대사가 대신하게 됐고 강기정 전 의원이 정무수석으로, 윤도한 전 MBC 논설위원이 국민소통수석을 새로 맡게 됐다.

언론의 평가는 간명하다. ‘원조 친문’이 돌아와서 청와대 친정체제가 강화됐다는 것이다. 일부에선 ‘코드인사’란 비판도 나오고 있다. 야당의 반응은 부정적인 면에서 폭발적(?)이다. 주로 세 사람의 ‘흠’을 지적하면서 인사 돌려막기를 언급하거나 조국 민정수석의 유임 등을 거론하고 있다.

정치권에 오래 있었던 사람치고 ‘흠’이 없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그러나 노영민 신임 비서실장의 시집 강매 논란이나 강기정 신임 정무수석이 수차례 국회에서 몸싸움을 벌인 일은 그 중에서도 비교적 논란의 소지가 컸던 일로 꼽힌다. 윤도한 신임 국민소통수석이 사실상 언론사에서 청와대로 직행했다는 비판도 근거 없는 꼬투리 잡기라고 보기 어렵다. 이런 점들에 대해선 적절한 방식으로 입장 표명 등의 기회가 주어지면 좋을 것이다.

‘원조 친문’의 귀환이라든지 ‘코드인사’라는 비판에 대해선 좀 더 입체적인 판단이 필요하다. 이 시점에 대통령이 주요 참모를 새로 임명하는데 코드인사라는 비판이 안 나올 수는 없다. 취임 당시 꾸렸던 참모진들이 매너리즘에 빠지거나 힘이 약해질 때쯤 분위기 전환을 위해 신뢰할만한 사람에게 직을 맡길 수밖에 없는 때이기 때문이다.

문제는 코드인사 그 자체가 아니라 방향이 어디를 가리키고 있느냐가 중요하다. 청와대가 임종석 비서실장의 교체로 얻을 수 있는 장점은 크게 두 가지로 볼 수 있다. 하나는 보수세력의 색깔론 공격으로부터 상대적으로 자유로워지는 것이다. 임종석 전 비서실장은 학생운동 시절 전대협 3기 의장을 지냈다는 이유로 청와대 내 ‘운동권 참모’의 중심으로 지목돼 왔다.

이에 비하면 노영민 비서실장은 학생운동에 몸을 담은 경력이 있긴 하지만 주요 인물로 볼 수는 없고 오히려 국회의원 활동을 하던 당시 시장주의자를 자처하는 등의 행보를 한 바 있다. 따라서 일부 보수언론 등이 주장하는 대통령이 이념적으로 경직된 운동권 출신 인사들에게 둘러싸여 있다는 비판의 근거는 약화될 거라고 볼 수 있다.

다른 하나는 임종석 전 비서실장이 대통령과 가까운 관계로 차기 대권주자 역할까지 할 수 있는 여당 내 구심이 될 가능성이 커진다는 것이다. 다음해에 총선이 예정돼 있고 경제 위기 논란 등으로 의원들의 자기 앞길 걱정이 심화되는 국면에서 임종석 전 비서실장의 존재는 문재인 대통령의 국정운영에 어떤 방식으로든 도움이 될 가능성이 크다.

강기정 정무수석의 경우 앞서 언급한 사건들 때문에 다소 극단적인 이미지가 있어 초반에는 논란의 대상이 될 수밖에 없다. 하지만 이해관계를 조율하고 협상하는데 나름의 능력을 발휘할 것이라는 기대가 있는 것 또한 사실이다. 그래서 장기적인 관점에서는 정무수석의 역할이 지금보다 커지는 동시에 유연해질 가능성이 높다.

임종석 현 대통령 비서실장이 8일 오후 청와대 춘추관 대브리핑룸에서 수석비서관급 이상 인사를 발표한 뒤 후임 비서실장인 노영민 주 중국대사와 악수하고 있다. (연합뉴스)

문제는 이들의 이런 특성이 앞으로 청와대가 개혁적 과제를 관철하는 것보다는 상황을 관리하면서 실리를 추구하는 것에 초점을 맞출 가능성이 커보인다는 것이다. 노영민 비서실장이나 강기정 정무수석 두 사람 모두 스스로 유연해질 수 있는 만큼 정책적 지향은 강하지 않다는 특징이 있다.

여기에 더해 두 사람이 ‘설화’에 휘말린 이력이 있어 이런 문제가 재현될 가능성이 있다는 것 또한 잠재적인 위험 요소라고 볼 수 있다. 노영민 비서실장은 앞서 시집 강매 의혹이나 아들 특혜 취업 논란 등에서 해명으로 오히려 논란을 키운 바 있다. 강기정 정무수석 역시 절제된 언행 보다는 다소 감정에 치우치는 돌발 발언으로 비판을 받는 일이 많았다.

이런 문제는 간단히 생각하면 국민소통수석의 역할을 강화하는 것으로 보완할 수 있을 것 같다. 그런데 윤도한 신임 국민소통수석은 정치권과의 접점이 거의 없어 능력이 검증된 바 없는 인물이다. 국민소통수석과 함께 기자들을 직접 상대하는 김의겸 대변인의 경우 문제 소지가 있는 다른 참모들의 발언을 수습하고 메시지를 정리하는 게 아니라 오히려 논란을 키우는 대응으로 도마에 오른 일이 많다.

따라서 답은 청와대 참모들이 되도록 전면에 나서는 역할을 하지 않는 것이다. 이런 점에서 문재인 대통령이 8일 새해 첫 국무회의에서 책임장관제를 강조한 것은 적절한 입장 표명이다. 문제는 역대 정권 역시 기회가 될 때마다 강조했는데도 끝내 실현하지 못한 책임장관제를 어떤 방식으로 구현할 것인가 이다.

책임장관제를 구현하기 어려운 이유는 관료 조직이라는 큰 구조가 변하지 않는 상황에서 장관의 의지만으로 정권의 철학을 관철하기가 쉽지 않은 게 현실이기 때문이다. 때문에 개혁적 비전을 갖춘 학자나 민간 영역 출신의 장관은 관료 조직을 장악하는데 실패하고, 관료 출신 장관은 기성의 해법만 반복하며 개혁을 추진하지 못하는 일이 반복돼왔다. 정치인 출신 장관은 양쪽의 타협 같은 것으로 볼 수 있겠는데 선거로부터 자유롭지 않다는 한계가 있다.

어떤 경우든 개혁을 지속적으로 추진하기 위해서는 두 가지 정치일정을 통해 제대로 된 메시지가 전달돼야 한다. 첫 번째는 오는 10일 열리는 문재인 대통령의 신년 기자회견이다. 이 자리에서 구체적인 개혁의 비전이 제시되는지, 아니면 선거를 의식하는 수준에서 그치는 메시지가 나오는지에 따라 이후 평가가 달라질 수 있다.

두 번째는 개각이다. 정치인 출신 장관들의 선거 준비 문제가 있기 때문에 개각 일정을 짤 수밖에 없는 시점인데, 언론은 설 연휴 이전에 개각이 단행될 가능성을 점치고 있다. 새로운 장관 후보자들이 어떤 성향의 인물인지에 따라 이 정권이 개혁의 성과를 어떤 방식으로 낼 수 있을지를 예상할 수 있다.

그런데 장관 후보자들은 청문회를 거쳐야 하기 때문에 야당이 극단적 인사로 지목하는 인물들을 발탁하기가 쉽지 않다. 이래저래 개혁을 추진하기 어려운 조건들만 반복 확인되고 있는 셈이다. 이런 어려움을 뚫고 마지막까지 노력을 계속하는지 아니면 경제 활력을 제고한다는 이유로 적당한 선에서 상황 관리에만 주력하는지에 따라 총선의 성과와 정권 재창출 가능성이 달라질 수도 있다. 정권이 이 중요한 시기를 어떻게 넘기려는 생각을 갖고 있는지 궁금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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