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동안 FA컵은 우리 축구계에서 크게 외면받아왔습니다. 지난 1996년 처음 출범해 우리나라 최고 클럽을 가리는 대회로서 나름대로 권위 있는 대회의 의미를 부여해 왔지만 어느 팀이 우승했는지조차 모를 만큼 수시로 바뀌는 대회 방식, 권위를 떨어트리는 경기력 또는 심판 판정 등은 FA컵을 '별 의미 없는 대회'로 전락하는 수준에 이르게 했습니다. 그나마 AFC(아시아축구연맹) 챔피언스리그 출전권을 부여하고, 하부 리그 팀들이 상부 리그를 이기면 승리 수당을 얻는 이른바 '당근책'이 제시됐다고 하지만 이렇다 할 마땅한 흥행 요소가 없어 최근까지도 크게 주목받지 못한 게 사실이었습니다.

하지만 지난 24일 부산 아시아드주경기장에서 열린 2010 FA컵 결승전은 여러 가지로 새로운 희망을 제시했다는 점에서 상당히 의미 있는 경기였습니다. 어떻게 보면 공통분모가 거의 없다시피 한 수원 삼성과 부산 아이파크가 만난 가운데서도 축구협회를 비롯한 축구계 차원에서 어떻게든 이야깃거리를 만들어내기 위해 노력했고, 새로운 팬서비스로 축구팬들을 흥분하게 만들면서 어느 정도 흥행몰이에 성공한 모습을 보여줬습니다. 완벽한 수준은 아니어도 FA컵이 국내 최고 권위를 자랑하는 대회라는 인식을 만드는 데 가능성을 보여주며 기분 좋게 이번 대회를 마치게 됐습니다.

▲ 수원 삼성 FA컵 우승 ⓒ연합뉴스
사실 이번 FA컵 결승전에 대한 우려의 목소리는 역시 예년만큼 컸습니다. 경기가 열리는 부산 아시아드 주경기장은 대표적으로 평균 관중이 그리 많지 않은 구장이었고, 무엇보다 부산이 '야구 도시'라는 이미지가 강해 과연 흥행 몰이에 성공할지 걱정하는 사람들이 많았습니다. 수도권이 아닌 지방에서 FA컵 결승전이 열리는 것이 색다른 면이 있었기는 해도 흥행과 다소 거리가 있는 곳에서 경기를 치르는 것은 여러 가지로 모험과 같다는 지적이 있었습니다.

하지만 축구협회는 결승전이라도 국내 최고 권위 수준을 갖추기 위해 최선을 다한 모습을 보였습니다. 그 가운데 하나가 바로 FA컵 특별열차가 운행된 것입니다. 이번 FA컵 흥행을 위해 축구협회는 철도공사와 연계해 '축구 전용 열차'를 운영하면서 수도권에 사는 수원, 부산 서포터, 기자단, 축구협회 관계자 등을 태우고 곧바로 부산으로 갈 수 있는 방법을 마련해 팬들의 높은 관심을 샀습니다. 이 독특한 마케팅은 충분히 팬들의 열렬한 반응을 이끌어냈고, 특히 수원에 할당된 좌석은 2시간 만에 동이 나는 '사태'가 빚어지기도 했습니다. 지방 원정 응원을 위해 자비를 털어 힘겹게 응원을 펼쳤던 팬들 입장에서는 축구협회의 배려 덕분에 모처럼 즐거운 추억도 만들고, 자신이 좋아하는 팀을 열렬히 응원하며 흥을 돋울 수 있었습니다. 덩달아 축구협회 역시 특별열차 운행 덕에 3만1천여 명의 관중을 동원하는 데 성공, 어느 정도 권위 있는 대회 분위기를 만들어 냈습니다. 팬과 협회, 그리고 팀이 서로 '윈-윈'할 수 있는 가능성을 보여준 셈입니다.

▲ 우승한 수원삼성 블루윙즈 선수들이 수원팬들의 뜨거운 응원에 손을 들어 화답하고 있다 ⓒ연합뉴스
그동안 FA컵은 경기 내적인 부분에 대해서만 신경 쓰는 경향이 많았습니다. 동기 부여를 위해 AFC 챔피언스리그 출전권, 승리 수당을 챙겨주겠다는 것이 대표적인 케이스지요. 하지만 내적인 부분만큼이나 상당히 신경 써야 할 관중, 흥행, 수익 같은 외적인 요소에 대해서는 크게 무관심해왔던 것이 사실이었습니다. 이번을 계기로 축구협회가 FA컵에 대한 권위를 스스로 찾으려 노력하고, 그 덕에 어느 정도 가능성을 보여준 것만큼은 상당히 주목할 만 했고, 의미 있는 일이 아닐 수 없었습니다.

물론 FA컵이 가야할 길은 아주 멀고도 멉니다. 32강, 16강 등 기존 토너먼트전에서도 많은 팬들의 관심을 불러일으키고, 정상급 선수들이 대부분 출전할 수 있는 기반을 제대로 마련해야 합니다. 여기에 개인적으로는 잉글랜드 FA컵 결승전처럼 상징성이 있는 경기장, 다시 말해 잠실올림픽주경기장 같은 곳에서 결승전을 치르며 더욱 권위를 부여하고, 상징적인 대회를 치르면 어떨까 하는 생각도 가져보게 됩니다. 아직까지는 걸음마 수준인 최고 권위 대회 FA컵이지만 어쨌든 이번에 얻은 가능성을 바탕으로 위상에 걸맞은 모습을 갖추며 탄탄한 클럽 축구 시스템의 기초를 만드는 데 긍정적인 영향을 주는 대회로 거듭나기를 기대해봅니다. 오늘보다 더 나은 미래를 지향하는 한국 축구 최고 대회 FA컵이 되기를 바라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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