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8년 한 해가 다 갔다. ‘촛불’의 열망을 끌어안고 ‘피플파워’를 자처하던 정부는 이 한 해 동안 만신창이가 되었다. 지난 지방선거에서 ‘정초선거’라는 말이 나올 정도로 앞으로 상당 기간 여당의 일방적 우세가 점쳐졌지만 최근 여론조사 결과를 보면 그것도 장담할 수 없게 된 것 같다. 과거 보수정권을 지지했지만 박근혜 정권의 심판에 동조한 중도층은 ‘촛불’의 한 축이었다. 이 사람들이 자유한국당 등을 지지하게 된 것 같지는 않지만, 문재인 정부에 등을 돌리고 있다는 점은 사실로 보인다.

문재인 정부가 절대 다수 시민의 지지를 받는 정부에서 양당제적 정파의 일원으로 위상이 하락한 원인은 하나로만 짚을 수 없다. 정부가 자초한 부분도 있고 보수세력의 ‘정략’이 적중한 대목도 있다. 그런데 정부의 실책이든 보수세력의 간계든 그것에 반응하는 대중적 인식이 현실적 조건의 일부라는 점 또한 부인할 수 없다.

대표적인 것이 ‘내로남불’과 ‘이중잣대’ 비판 논리에 대한 맹신이다. ‘내로남불’이나 ‘이중잣대’임을 증명하면 모든 가치판단이 종료되는 것으로 여기는 세태가 심각한 수준에 이르렀다. 자기가 비판한 일을 스스로 했다는 걸 증명하고 이는 ‘불매대상’에 해당하는 행위임을 공표하면 논의가 끝난다고 생각하는 것이다.

이렇게 되니 아예 ‘로맨스’와 ‘불륜’의 관계로 설명할 수 없는 것들을 동렬에 놓고 비교해 그게 ‘내로남불’이라고 결론짓는 억지가 정치적 비판의 상당 부분을 차지하게 되었다. 많은 사람들이 이렇게 생각하게 된 이유에는 물론 구조적 문제가 있지만 공론을 다루는 행위자들의 책임을 따지자면 보수언론을 빼놓고 말할 수 없을 것 같다.

최근 청와대 특감반 문제를 다루는 논조를 보면 이 점이 확연히 드러난다. 보수언론은 환경부가 작성한 전직 관료들의 동향 문건을 ‘블랙리스트’로 부르며 전임 정부의 실책과 비교하고 있다. 자유한국당은 이명박 정권의 민간인 사찰 문제를 거론하며 문재인 대통령이 당시 ‘대통령 탄핵’까지 언급했었다며 지금은 어찌 생각하느냐고 묻고 있다.

환경부가 작성해 김태우 수사관 등을 통해 청와대에 보고했다는 문건을 문화예술계 블랙리스트나 이명박 정권의 민간인 사찰 문제에 비견할 수 있을까? 문건의 실행 여부 등은 추가로 사실관계를 밝혀 봐야 하니 드러난 사건의 성격만 놓고 비교해보자. 환경부가 작성했다는 문건은 야당 성향의 전직 관료의 선거 출마 여부나 이전 정부에서 임명된 인사들의 퇴직 의사에 관한 정보 등을 담고 있다.

자유한국당 나경원 원내대표(가운데)가 27일 오후 국회에서 열린 청와대 특감반 진상조사단 회의에서 발언하고 있다. (연합뉴스)

반면 과거 문제가 된 문화예술계 블랙리스트는 특정 정치 성향의 방송인들을 지목해 활동을 못하게 하고 지원대상 등에서 배제한 것이다. 문화예술계에서 좌파를 솎아내야 한다는 논리였다. 단지 ‘좌파’를 미워한 것을 넘어서 국민 여론에 영향을 미칠 수 있는 문화예술분야에 대한 사상적 개입을 시도한 것이다.

이명박 정권의 민간인 사찰은 대통령을 희화화 한 ‘쥐코’ 동영상을 인터넷에 올린 사업가를 사찰하고 압박했다는 사실이 드러나면서 문제가 되기 시작했다. 이 과정에서 이명박 정권의 민간인 사찰이 다양한 수단을 통해 ‘영포회’라는 비선라인을 통해 작동했다는 사실이 확인됐다. 내부고발자의 폭로를 막기 위해 국정원 특수활동비가 입막음용으로 전달됐다는 게 드러나기도 했다. 과연 이런 사건들에 청와대 특감반 논란을 비교하며 ‘내로남불’과 ‘이중잣대’를 말하는 게 온당한 일일까?

이런 지적이 이 정부가 했다는 이들에 대한 면죄부를 줄 수 있는 것은 아니다. 환경부가 작성했다는 문건은 적어도 ‘낙하산 인사’를 위한 물갈이 시도라는 비판을 피해갈 수 없다. 낙하산 인사는 크게 두 가지 논리로 정당화돼왔다. 첫째는 낙하산의 대상이 되는 자리에 있는 사람들 역시 전임 정권에서 부당하게 임명된 이들이라는 것이다. 둘째는 정권 창출에 공을 세운 사람들이 있는데 챙겨주지 않을 현실적 방법이 없다는 것이다.

그러나 ‘창업공신의 논리’는 정파 내에선 통용되는 것일지 몰라도 공직사회를 다루는 방법론으로서 자랑스럽게 내세울만한 것은 아니라는 점에서 이런 행태는 근절되어야 한다. ‘전임 정권 낙하산론’의 경우 기준과 원칙을 분명히 해서 최소한의 전문성을 가진 인사로 대체할 수 있도록 해야 문제가 해결된다. 그런데 이 두 가지 측면에서 문재인 정부가 성공을 거둔 것으로 보이지 않는다. 여기서부터 문제 해결의 실마리를 찾아야 하지만 보수언론은 이런 방식의 접근을 거부하고 있다.

이런 현상은 정치적 냉소주의를 강화해 문제 해결의 실제 과정에서 대중을 유리시킨다. ‘내로남불’이라는 논리적 오류를 저지르지 않는다면 문제가 해결된다는 믿음을 재생산하기 때문이다. 문재인 정권에 대한 중도층 이탈은 이런 저런 실제적 이유가 작용하였겠지만 촛불시위와 대통령 탄핵이라는 충격적 사건 이후에도 사회가 크게 바뀌지 않았다는 실망감을 짚지 않고서는 설명이 불가능하다. 그리고 바로 이 점이 “역시 그 놈이 그 놈이다”라는, 냉소주의의 강화로 이어지는 악순환의 고리가 되고 있다.

그러나 정치 현실의 문제는 내로남불이 아니라 실제 문제 해결의 방법이 당장은 없는 것에 가깝다는 데에서 비롯되는 것이다. 청와대 특감반의 권한을 줄이자고 하면 국정원 독대나 정보경찰 권한 강화를 대안으로 말하는 사람들이 있다. 그게 아니라 공수처가 필요하다고 하면 그건 법 내용이 어떻든 청와대 권력의 강화로 이어질 수 있으니 안 된다고 한다. 그러다가도 무슨 문제가 생기면 청와대가 어떻게 몰랐을 수 있느냐며 ‘무능’을 말한다.

현실을 바꾸는 게 어렵기 때문에 다 포기해야 한다는 얘기가 아니다. 그렇기 때문에 주권자인 국민이 더 집요하고 끈질기게 권력을 감시하고 비판하며 대안을 제시하는 일에 직접 나서야 한다는 것이다. ‘개혁적 정권’을 자처하는 정부도 국민이 주권자로서의 실질적 권한을 행사할 수 있도록 제도적 정비를 계속해서 추진하는 일을 포기하지 말아야 할 것이다.

여기에는 다소간의 정무적 기교가 필요하다는 점을 부정할 수 없다. 그런 면에서 27일 일어난 일 중 비교적 모범적인 사례로 삼을만한 것은 문재인 대통령이 김용균법 통과를 위해 임종석 비서실장과 조국 민정수석의 국회 운영위 출석을 지시해 교착 정국을 풀게 했다는 사실이다.

물론 김용균법이 정부안에서 후퇴해 누더기로 국회 통과가 되었다거나 청와대 참모의 국회 운영위 출석은 거래의 대상이 될 수 없다는 비판이 가능한 것이 사실이다. 그러나 그 와중에도 무언가 한 발짝의 진보를 위해 권력이 무언가를 노력했다는 점을 평가하지 않을 수 없다. 다가오는 새해에는 지지율에 일희일비하는 게 아니라 이러한 다양한 수단을 통해 중단 없는 개혁을 추진해 실질적 성과를 내는 한 해가 되었으면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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