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차 남북정상회담 모습.
2007년 10월 남북정상회담 때 노무현 전 대통령과 김정일 국방위원장이 제2별항으로 정상회담의 정례화를 놓고 가시있는 말을 주고받았다. 노무현 전 대통령이 정상회담의 정례화를 제안하자 김정일 국방위원장은 “친척 집에 갈 때 정례적으로 가느냐. 수시로 놀러 가는 것이다. 국가 간 관계에서는 정례적이지만 북남 관계에서는 맞지 않다”고 응대했다. 이 대화는 두 가지 의미를 함축했다. ‘우리민족’ ‘아랫집 윗집’을 의미하는 호의적 취지의 답변인 동시에 이면에는 남을 국가로 인정하지 않는다는 의지가 담겨 있었다. 남북관계가 국가간 관계가 아니라는 점에서 정례화 표현을 사용할 수 없다는 주장이었다.

남도 북을 하나의 온전한 국가로 명시적으로 인정한 적은 없었다. 다만 한미FTA 협상의 원산지 분야에서 국가간 무역통상 문제를 구체적으로 다루었다는 점을 상기할 수 있다. 한미FTA 원산지 분야에서는 △한반도 비핵화 진전 △남북한 관계에 미치는 영향 △노동.환경 기준 충족 등 세 가지 조건을 다루었다. 2.13합의 조치 완료, 핵 불능화와 테러지원국 및 적성국 교역법 해제 조치가 이루어진다면 세 가지 조건이 충족되는 것으로 평가되었다. 한국 협상단은 개성공단을 한반도 평화프로세스 연장이라는 정치적 측면과 개성공단을 포함한 북 생산 제품의 대외 수출길 확보라는 경제적 측면에서 원산지 인정을 주장했고, 미국 협상단은 적대적 대북정책의 연장의 측면과 전체 협상을 유리하게 이끌기 위한 협상 카드로서의 측면에서 원산지 불인정을 주장했다. 협상 결과는 정치적 차원에서 일단락 되었다. 한미FTA가 발효되고 한반도OPZ위원회가 가동되면 한미FTA의 연장위에서 전개되는 남북경협은 남북FTA의 의미를 갖게 된다. 당시 일각에서는 CEPA(경제협력강화약정)를 제기하기도 했다. 남북기본합의서의 ‘교류협력에 관한 부속합의서’를 토대로 남북간 상품교역, 서비스교역, 무역/투자관리화 조치 등을 단계적으로 자유화하는 것을 골격으로 하는 한편 부속합의서에 무관세 제도를 규정해 사실상의 남북FTA를 의미했다. 말하자면 남은 북에 대해 경제적으로 무역통상 대상의 국가로 간주하고 체제와 제도에 있어서는 남북연합의 지향을 가졌다고 볼 수 있다.

어찌되었든 분단 이래 지금까지 북은 남을, 남은 북을 하나의 국가로 명시적으로 인정한 적이 없었다. 북은 반외세 자주화 노선에 기반한 연방제 통일방안을, 남은 분단 논리가 온전히 반영된 영토조항에 기반한 남북연합 통일방안을 통일의 상으로 사고해왔다. 2000년 6.15선언 제2항의 합의(남과 북은 나라의 통일을 위한 남측의 연합제안과 북측의 낮은 단계의 연방제안이 서로 공통성이 있다고 인정하고 앞으로 이 방향에서 통일을 지향시켜 나가기로 하였다)는 그 자체로 놀라운 일이었다. 대결적이었던 두 통일방안의 공통분모가 남북 화해의 물결을 타고 통일 지향의 6.15선언으로 형질전환한 것이었다. 그리고 2007년 정상선언과 이어진 남북총리회담에서는 사실상의 남북연합의 골격을 구성하는 단계에 이르렀다.(남북경제협력공동위원회(부총리급), 서해평화협력특별지대추진위원회(장관급), 사회문화교류협력추진위원회(장관급) 등 3개의 위원회 신설과 국방장관회담과 남북적십자회담(차관급)의 운영) 여기에 내용물을 담아냈다면 남북 관계의 급진전이 이루어질 수 있었겠지만 정권이 바뀌면서 남북정상선언의 의미마저 퇴색하고 말았다.

남북 체제의 골은 분단의 역사만큼이나 깊다. 북은 수령 중심의 당-국가 융합체제를 형성해왔다. ‘우리식 사회주의’로 회자되는 북의 정치체제는 당 우위의 당-국가융합체제로서의 국가사회주의체제로 정의된다. 북은 수령제와 주체사상, 그리고 주체사상을 실현시키는 방도로서의 혁명적 군중노선을 관철시켜왔다. 북 정치체제는 북 인민에 대한 당-국가의 전일적 지배체제로, 주체사상을 통한 인민의 이데올로기적 통합에 유례없는 성공을 거두었고, 수령-당-인민의 수직적 동원구조를 재생산해왔다. 구 소련 및 동구권의 몰락에도 불구하고 북 체제가 유지될 수 있었던 데는 수령제의 수립과 함께 제반 구 계급사회 착취 일반의 폐기, 복지체제의 수립, 혁명적 군중노선 채택, 민족 자주성의 확보 등이 배경을 이루었다.

북이 다른 어떤 사회주의체제보다 당과 국가에 대한 인민대중의 지지를 이끌어내는데 성공했지만, 당 우위의 당-국가융합체제는 위로부터의 국가의 강화를 가져왔다. 따라서 북이 지난 시기 계급적 착취의 폐기와 복지체제의 수립과 같은 주요한 사회주의적 조치와 함께 인민대중의 당-국가융합체제로의 통합에 성공했음에도 불구하고 ‘생산자의 자유로운 연합체’라는 사회주의 본래의 의미를 살리지는 못했다. 말하자면 ‘국가의 사회화’가 아니라 ‘사회의 국가화’가 전면적으로 관철되면서 인민대중에 대한 국가의 통제가 강화되었고, 인민대중은 자신으로부터 분리된 국가와 국가로 전화한 당에 종속되는 관료적 사회주의체제의 발전에 봉사해온 것이다.

남은 (종속적) 국가독점자본주의의 내적 모순의 심화에 따라 외환위기를 겪었고, 신자유주의축적체제가 이루어졌다. 신자유주의축적체제는 자본 우위의 신자유주의정치체제와 함께 구축되었다. 국민의정부와 참여정부는 사회 전부문에 걸쳐 시장 중심의 효율과 경쟁 원리를 관철하는 정책을 펼쳤다. 한미FTA 타결은 사회구성원의 삶의 전체에 대해 글로벌스탠다드와 시장민주주의를 강요하는 것이었으며, 노동유연화 강화와 이에 따른 사회적 빈곤은 더 이상 나빠질 수 없는 상황을 예고했다. 이명박 정부는 1-2년 만에 정확히 확인해주었다.

북은 북대로, 남은 남대로 자기 길을 걸었다. 북은 중국과 동맹적 외교관계를 강화했고 남은 미국과 동맹적 외교관계를 강화했다. 북은 개방, 개혁 정책 대신 화폐개혁 등을 통해 시장과 인민에 대한 통제를 강화하는 방향으로 정책을 펼쳐왔고, 남은 사회적 빈곤을 심화하는 시장민주주의를 강화하는 방향으로 정책을 펼쳐왔다. 최근 2-3년간 남북 화해와 교류를 위한 정치적, 외교적 노력은 중단됐다. 북은 북의 체제를 강화하는 방식으로, 남은 남의 체제를 강화하는 방식으로 제각각 발전했다.

남북에 대해 이야기하자면, 국가와 체제의 문제나 민주화를 언급하기 전에 모든 것에 앞서 우선해야 할 물음이 있다. 우선 남이 북을 북이 남을 하나의 온전한 국가로 인정하는가를 물어야 한다. 그 바탕 위에서 궁극적으로 한반도 생태의 지속가능성, 한반도 사회구성원 모두의 균등한 삶의 질 구현, 민주주의와 평화인권의 보편적 가치의 실현에 접근하고 있는가를 물어야 한다. 그리고 지금으로서는 수령 중심의 당-국가융합체제 하에 있는 북의 인민은 행복한가, 자본 중심의 한미FTA 체제 하에 있는 남의 인민은 행복한가를 물어야 한다.

▲ 경향신문 10월 1일자 사설 '민노당은 3대 세습을 인정하겠다는 것인가'

경향신문 사설 ‘민노당은 3대 세습을 인정하겠다는 것인가’는 이같은 점을 고려하지 않았다. 북의 체제 내지 세습을 비판하지 않는 진보(민주노동당)를 비판하는 것 이상도 이하도 아니었다. 북이 사회주의인가 아닌가, 민주주의인가 아닌가, 3대세습이 문제인가 아닌가를 지적하고 평가하는 것은 북을 하나의 국가, 하나의 체제로 인정하고 난 다음에 할 일이다. 북이 특정 국가, 특정 체제여서 문제라면 그것은 오직 북 인민의 삶이 행복한가 그렇지 않는가로 접근해 논평할 일이지, 세습 여부를 판단의 절대치로 삼을 게 아니다. 잣대를 들이밀자면 남의 특정 국가, 특정 체제에 대해서도 동일한 가중치를 적용해서 논평해야 한다. 지금 북 인민의 삶이 행복한가 여부로 접근하면 세습은 사소한 문제로 평가될 수도 있다.

민주노동당이 단지 북의 권력을 의식해 입을 다물었다는 점은 물론 비판받을 일이다. 그러나 경향신문이 단지 세습에 대해 특정한 태도를 취하지 않았다고 진보(민주노동당)를 비난하는 것은 한마디로 분에 넘치는 행동이다. 이어진 논란은 대부분 북을 둘러싼 민주노동당과 진보신당의 해묵은 논쟁 프레임을 벗어나지 않았고, 오히려 경향신문 절독 운운 해프닝에서 진보의 피폐한 실체가 확인되었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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