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와대 직원들의 이해할 수 없는 일탈 행위가 방송과 신문을 뒤덮고 있다. 당혹스러운 일이다. 특히 청와대 민정수석실 특별감찰반을 둘러싼 의혹은 이게 일회적인 우발적 사건들이 아닐 가능성을 시사한다는 점에서 우려된다. G20 정상회의 일정에 참석하는 도중에 소식을 접했을 문재인 대통령도 곤혹스러웠을 것이다.

특별감찰반 직원들이 했다는 일은 황당한 수준이다. 경찰을 찾아가 건설업자 지인에 대한 수사 상황을 묻는가 하면, 비위첩보를 통해 과학기술정보통신부 3급 감사관을 밀어내고 5급 사무관 공채에 지원하려다 포기했다는 것이다. 업무 시간 또는 휴일에 단체로 골프를 쳤다는 의혹도 있는데, 잘나가는 공무원들답게 하필 골프장에서 단합대회를 한 것인지 아니면 무슨 접대를 받은 것인지 알 수가 없다.

일련의 사건들에 대한 청와대의 대응이 석연찮다는 점은 당혹감을 키운다. 검찰직 6급 수사관이 자기 권한을 남용해 5급으로의 승진을 도모한 사건을 이미 감지했는데도 “공채 지원을 제지한 것” 외의 어떤 대응을 한 것인지 알 수 없다. 새롭게 밝혀진 사실들에 대해서도 청와대는 특별감찰반 직원들의 원 소속청 감찰이 끝나기 전까지는 사실관계를 확정할 수 없다는 태도다.

이런 상황의 원인이 뭔지는 추측을 해볼 수밖에 없다. 첫째는 특별감찰반 직원들이 청와대나 각 부처의 여러 민감한 정보를 취득하고 있는 상황에서 이들의 비위 사실을 신중히 다룰 수밖에 없다는 현실적 이유가 작용한 결과일 가능성이다. 그런 것이라면 문재인 대통령이 소셜미디어를 통해 “믿어 달라”고 한 만큼 강력한 조치가 뒤따라야 오해를 불식시킬 수 있을 것이다.

둘째는 청와대 권력이 공직사회를 제대로 통제하지 못하는 상황의 방증일 경우이다. 청와대로 국한해 말하면 조국 청와대 민정수석의 역할을 둘러싼 논란이다. 조국 민정수석은 현안을 도외시하고 소셜미디어와 학자로서의 활동만 지나치게 열심히 하고 있다는 다소 민망한 논란에 휘말려 있다. 이번 사건에서도 민정수석비서관으로서 사태가 더 심각해지는 것을 방지하는 데 어떤 역할을 한 것인지 알 수 없다.

이 때문에 시중에는 ‘왕따론’까지 나돌고 있다. 이른바 ‘실세’는 백원우 민정비서관이고 조국 민정수석은 상징적 역할만 하고 있다는 것이다. 물론 어떤 역할분담의 문제를 꼭 실세냐 아니냐로 볼 필요는 없다. 하지만 이런 소문의 실체가 백원우 비서관이 실무적 문제의 총괄 역할을 맡는 상황이 부풀려진 것이라 하더라도 여전히 권력의 핵심이 소속 직원들을 통제하지 못한 문제가 남는다.

문재인 대통령과 조국 청와대 민정수석 (연합뉴스)

음주운전이나 시민 폭행 등은 우발적 일탈행위라 보더라도 최근 경찰 인사를 두고 ‘항명’ 논란이 불거진 것은 공직사회의 분위기를 걱정할 수밖에 없게 만든다. 지난달 29일 치안감 인사에서 탈락해 명예퇴직을 신청한 송무빈 서울경찰청 경비부장은 내부게시판과 언론 등을 통해 2015년 백남기 씨 사망사건 당시 서울청 기동본부장을 맡았던 게 탈락 원인이 아니냐는 주장을 내놓고 있다.

치안감 승진은 그 자체가 치열한 경쟁이므로 이 주장에 근거가 얼마나 있는 것인지는 판단하기는 어렵다. 그런데 이런 식의 불만이 승진에서 탈락한 어느 한 사람의 것만이 아니라면 문제의 양상은 달라진다. 공무원 사회 내에 현 정부의 성향 때문에 불이익을 받고 있다는 불만이 팽배해지면 정치적 문제가 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여기서 정치적 문제란 개혁 과제의 불이행이나 복지부동을 유지하는 것으로 표출되는데, 대통령의 국정수행 지지율이 저하될수록 이런 경향은 심화될 것이다.

앞서 특별감찰반 소속 직원의 부적절한 행위도 이런 분위기와 관련이 있는 것은 아닌지 걱정된다. 공직을 맡은 자로서 개혁을 추진하려는 정권의 방침을 이행하자는 게 아니라 어차피 개혁은 가능하지 않으니 기회가 없어지기 전에 승진을 하고 봐야 한다는, 마치 난파선에서 자기 살 길만 찾는 사람의 마음이 아니었는지 의심된다.

작은 사고들이 반복되는 것은 큰 사고의 전조일 수 있다는 경고를 담은 하인리히의 법칙에서 보듯, 최근 ‘공직기강 해이’ 논란이 이어지고 있는 게 문제인 것은 이런 상황이 방치되면 더 큰 문제가 일어날 수 있기 때문이다. 얼마 전 청와대가 공개적으로 경고하고 나선 일련의 청와대 관계자 사칭 사기 사건들이 걱정인 것도 이런 이유다.

이 사건들이 보여주는 것은 어쨌든 청와대 관계자와 가까운 사이임을 자처하는 일이 많아지고 있고 그것으로 목적을 달성하는 사람들이 존재한다는 것이다. 이게 ‘사기’에서 그치면 다행인데 실제 ‘청와대 관계자와 가까운 사람’이 연루된 사건이 발생한다면 ‘게이트’가 되는 것은 순식간일 것이다.

얼마 전 화제가 된 윤장현 전 광주시장의 보이스피싱 사건도 마찬가지다. 윤장현 전 시장이 당시 현직으로 공천이나 어떤 대가를 기대하고 금품을 제공한 것이라면 사건의 심각성은 좀 더 커진다. 윤장현 전 시장의 사례야 그렇다 치더라도 지난 지방선거를 전후해 ‘성공한 청탁’이 과연 없었던 것인지에 의문이 생길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지난 정부에서는 대통령의 친인척과 최측근 관리 등을 전담하는 특별감찰관은 장기간 공석인 채로 남아있다. 이번 정부는 특별감찰관의 기능을 고위공직자비리수사처(공수처)로 이관하려고 한다. 공수처 설치의 전제는 사법개혁인데 국회에서는 보수야당이 사실상 반대하고 검찰은 미온적 태도다. 여기다가 공수처와 세트로 묶여있는 검경수사권조정도 검찰이 이런 저런 이유를 들어 반대하고 있다.

경찰이 이번 정부 들어 백남기 씨 사망 사건 등에 대해 전향적 태도를 보이고 ‘인권경찰’로 거듭나겠다는 등의 새삼스러운 결의를 내놓은 배경에는 조직문화가 갑작스레 바뀌었기 때문이 아니라 검경수사권조정이라는 ‘당근’을 기대한 때문일 것이다. 그런데 경찰 입장에서 ‘당근’에 대한 확신은 희미해져 가는 것 아닌가 싶다. 앞서 경찰의 인사 반발도 이런 맥락이 작용한 것 아닌가 의심된다.

그렇기 때문에 이 상황을 타개하기 위해선 개혁을 중심에 놓는 국정운영을 통해 악순환을 선순환으로 바꾸는 결단이 필요하다. 민정수석의 사퇴나 청와대 인적쇄신 등에 해법을 국한해 개혁의 포기가 기정사실화 되는 결말이 되지 말았으면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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