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54년 3월 7일은 축구 한일전의 역사가 시작된 날입니다. 물론 이전에 지역팀들 간에 시합을 벌인 적은 있었겠지만 '국가-국가'로 제대로 시합을 벌인 것은 이때가 처음이었습니다. 당시 한국은 이승만 대통령의 지시(경기에서 지면 현해탄에 몸을 던질 각오로 싸우라!)도 있었고, 나라 잃었던 설움과 전쟁의 상처를 씻기 위해서는 일본전 승리가 절대적이었습니다. 스위스월드컵 예선이라는 것을 염두에 두는 것보다 자존심을 살리기 위한 목적이 더 강했던 이 경기에서 한국은 그야말로 골 폭죽을 터트리며 5-1 대승으로 기분 좋은 한일전 첫 승리를 거뒀습니다. 이후 또 한 번 대결을 펼쳐 무승부를 기록한 한국은 1승 1무로 사상 첫 월드컵 본선 출전권까지 따내면서 새로운 축구 역사를 썼습니다.

그로부터 56년이 지난 2010년에 이르기까지 한국과 일본은 축구에서 모두 72번 맞대결을 펼쳤고, 이제 73번째 대결을 눈앞에 두고 있습니다. 역대 전적 40승 20무 12패로 한국이 일본에 절대 우위를 나타내고 있지만 만날 때마다 두 팀은 대단한 명승부를 펼쳤고, 축구 역사에도 길이 남을 멋진 경기가 많이 벌어졌습니다. 특히 J리그 창설, 축구 유학 붐 등으로 일본의 실력이 급상승한 1990년대 이후에는 정말 대단한 경기들이 많이 펼쳐졌습니다. 하지만 그런 가운데서도 한국은 특유의 강한 정신력과 투혼을 앞세워 일본의 맹추격을 뿌리치고 여전히 우세를 점하고 있습니다. 73번째 한일전을 앞두고 우리가 기억하고 있는 한일전 명승부, 그리고 짜릿했던 그 순간들은 어떤 것들이 있었는지 살펴보도록 하겠습니다.

1. 1997년 9월 28일 프랑스월드컵 예선 '도쿄대첩' 2-1 승

뭐니뭐니해도 가장 기억에 남는 한일전을 꼽는다면 1997년 9월, 일본 도쿄 국립경기장에서 있었던 프랑스월드컵 예선 3차전 경기였을 겁니다. 벌써 13년이 지난 경기이지만 한국 축구의 역사를 쓴 이 경기는 역대 한국 축구사에서 기억에 남는 경기 톱10에 들 수 있을 만큼 대단한 경기였습니다. 그만큼 경기 전개도 참 박진감 넘쳤고, 명승부라 부를 수 있는 모든 요소가 갖춰졌던 경기였습니다.

푸른색 울트라니폰 응원단이 경기장을 가득 메우고, 한쪽에 붉은악마, 재일동포 응원단이 자리 잡아 응원을 펼치며 경기 시작 전부터 기싸움이 팽팽하게 전개됐던 이 경기는 월드컵 본선 직행 티켓을 놓고 둘 다 물러설 수 없는 승부였습니다. 그런 만큼 전반에는 양 팀 모두 일진일퇴의 공방전이 벌어졌고, 그런 만큼 양 팀 골키퍼가 바쁘게 움직였습니다. 그러다 후반 일본 야마구치의 로빙슛에 의한 선제골로 분위기가 달아오르면서 경기는 더욱 가열되기 시작합니다.

하지만 일본이 체력적으로 문제를 드러낸 틈을 타 한국은 파상공세를 펼치며 밀어붙였고, 후반 38분, 서정원이 극적인 헤딩 동점골을 넣으며 분위기를 가져오는 데 성공했습니다. 그리고 후반 42분, 이민성이 40여m 지점에서 강한 왼발슛으로 골망을 흔들면서 '후지산을 무너트리는' 최고의 결과를 보여줬습니다. 6만여 울트라 니폰 관중들은 망연자실해 침묵이 흐른 반면 5천여 붉은악마, 재일동포 응원단은 서로 얼싸안고 기쁨의 눈물을 흘리는 순간이었습니다. 그것으로 치열했던 90분은 마무리됐고, 한국은 최고의 순간을 만들어내며 온 국민을 기쁘게 했습니다. 당시 차범근 감독은 이 경기 승리로 국민 영웅으로 다시 떠올랐고, 대통령 선거와 맞물려 '차범근을 대통령으로'라는 말이 끊이지 않았습니다. 또 단독 중계를 했던 송재익-신문선 콤비는 '각본 없는 드라마', '후지산이 무너진다'는 어록을 양산하며 스타 축구 중계 콤비로 발돋움하게 됩니다. 이 경기는 결국 '도쿄대첩'으로 명명되고, 지금도 많은 사람들의 기억 속에 남아있는 명승부로 자리 잡고 있습니다.

▲ 도쿄대첩의 주인공 이민성
2. 1993년 미국월드컵 예선 '도하의 기적'

또 하나의 기분 좋은 추억을 떠올린다면 바로 1994년 미국월드컵 예선 때 기적 같은 뒤집기 본선 진출을 떠올릴 수 있을 것입니다. 당시 한국은 일본과의 경기에서 0-1로 패하며 불의의 일격을 당해 마지막 경기 북한전을 이기고도 일본이 최종전 이라크전을 승리한다면 탈락이 확정되는 절체절명의 위기를 맞이했습니다. 일단 북한을 3-0으로 이기고 일본 경기를 기다리던 한국은 일본이 2-1로 앞서고 있다는 소식에 서로를 위로하면서 경기장을 빠져나가려 하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이때 이라크의 자파르 옴란 살만이 경기 종료 30초 전 골을 터트리며 2-2 무승부가 됐고, 한국은 일본과 승점에서 같았지만 골득실에서 2골 앞서는 기적 같은 결과로 천신만고 끝에 월드컵 본선 진출을 확정하는 데 성공했습니다. 일본은 30초를 버티지 못해 월드컵 첫 본선 진출을 다음 기회로 미뤄야 했고, 이 때문에 축제 분위기와 같던 일본 열도는 큰 충격에 빠져 실신하는 축구팬들이 속출하는 사태가 발생하기도 했습니다. 한국은 '도하의 기적'이라 부르지만 일본은 이를 두고 '도하의 비극'이라 부르면서 생각하기도 싫은 순간으로 역사에 길이 남았습니다.

한국 입장에서 참 기분 좋은 순간이기는 했지만 이를 계기로 한국은 일본과의 경쟁 의식이 더욱 단단해지는 계기가 됐고, 그동안 문제점이 무엇이었는지를 돌아보면서 이듬해 열린 본선에서 더욱 경쟁력을 갖춘 팀으로 거듭나는 계기로도 이어졌습니다. 당시에는 참 악몽과도 같았을 상황이었지만 어쨌든 한국 축구가 새롭게 거듭나고, 한일전이 더욱 재미있는 매치가 될 수 있었다는 점에서는 큰 전환점이 됐던 때가 바로 이 때였습니다.

3. 1985년 11월 3일 멕시코월드컵 예선 '32년 만의 월드컵 진출' 1-0 승

월드컵 예선과 관련해서 또 하나의 명승부를 기억한다면 바로 1985년 11월 3일, 서울 잠실올림픽주경기장에서 있었던 멕시코월드컵 예선 2차전을 꼽을 수 있을 것입니다. 2번 대결을 펼쳐 상대 전적이 우세한 팀이 월드컵에 나서는 방식이었는데 1차전 일본 도쿄에서 열린 경기에서 한국은 2-1 승리를 거두며 비교적 여유 있는 자세로 2차전 홈경기를 맞이할 수 있었습니다.

경기장을 가득 메운 홈팬들 앞에서 월드컵 본선 진출의 위업을 달성하고 싶었던 한국은 맹공을 펼치면서 일본의 골문을 열려 했고, 일본 역시 만만치 않은 공세를 폈습니다. 그러다 후반 16분, 최순호의 강슛이 골대 맞고 나온 것을 허정무가 정확하게 자리를 잡고 골문을 향해 밀어 넣으며 결승골을 뽑아내 1-0 승리를 거뒀습니다. 1954년 스위스월드컵 이후 32년 만에 월드컵 본선에 나서는 최고의 순간이었습니다. 그야말로 당시 당대 최고의 선수들만 모아 월드컵에 나섰던 한국은 이듬해 열린 본선에서 세계에 강한 인상을 심어줬고, 이후 아시아 축구 강국이라는 이미지를 만드는 데도 적지 않은 계기가 만들어졌습니다.

4. 2007년 7월 28일 아시안컵 3-4위전 '기분 좋은 승부차기 승' 0-0(PK 6-5 승) 무

개인적으로 2007 아시안컵은 여러 가지로 참 아쉬움이 많았던 대회로 생각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3-4위전에서 일본을 만나 정면 대결을 펼쳐 승부차기로 승리를 거두고 3위로 다음 대회 아시안컵 본선 진출 티켓을 따낸 것은 참 의미 있었습니다. 이 경기 승리로 한국은 남아공월드컵 본선을 앞두고 한국이 원했던 팀들과 평가전을 치르며 순조로운 준비를 할 수 있었던 반면 일본은 차기 대회 아시안컵 예선을 치르면서 원치 않은 에너지 소모를 해야 했기 때문입니다.

사실 이 대회에서 한국은 만신창이나 다름없는 상황이었습니다. 조별 예선에서 바레인에 1-2로 패한데다 약체 인도네시아마저 1-0으로 겨우 이기고 8강에 올랐고, 8강, 4강마저 무득점으로 전후반 120분을 뛰며 승부차기를 펼쳐 결국 4강에서 이라크에 패해 47년 만의 우승에 실패했기 때문입니다. 핌 베어벡 감독에 대한 여론이 좋지 않았고, 선수들의 사기도 떨어져있는 상황이었지만 일본을 이기기 위한 선수들의 마지막 분전은 그래도 대단했습니다. 당시 일본 에이스였던 나카무라 슌스케, 엔도 야스히토 등 정예로 투입된 일본을 상대로 한국은 이천수, 조재진을 앞세워 힘겨운 승부를 펼쳤고 급기야 후반 11분 강민수가 경고 누적 퇴장을 당해 수적인 열세를 면치 못했습니다. 그러던 가운데서 핌 베어벡 감독, 홍명보 코치 등은 항의를 했다는 이유로 퇴장당했고 압신 고트비 코치만 잔여 시간 동안 지휘해야 하는 최악의 상황까지 맞이했습니다.

하지만 일본의 파상공세를 한국 수비진은 육탄방어를 하면서 잘 막아냈고, 결국 연장 120분 승부에서 0-0 무승부를 일궈내며 또다시 승부차기로 몰고 갔습니다. 승부차기에 강한 자신감을 갖고 있던 이운재는 6-5로 앞서 있던 상황에서 일본의 6번 키커 한유 나오다케의 슛을 펀칭해 막아냈고 그것으로 극적인 승부를 마감하며 3위에 오르는 데 성공했습니다. 비록 훗날 '음주 파문' 등으로 축구대표팀에 대한 이미지에 큰 타격을 입은 대회이기는 했지만 한일전에서 보여줬던 투혼만큼은 참 인상 깊었던 경기가 바로 이 경기였습니다.

5. 1998년 4월 1일 평가전 '황선홍 나래차기 슛' 2-1 승

'한일전의 사나이'를 대표적으로 꼽는다면 바로 '황새' 황선홍을 꼽을 수 있습니다. 통산 5골을 넣으며 일본만 만나면 펄펄 날았던 황선홍이 자신의 진가를 드러낸 경기를 그 가운데서도 꼽는다면 바로 1998년 프랑스월드컵을 앞두고 가진 한일 정기전일 것입니다.

이상윤의 선제골로 앞세다 나카야마 마사시에게 동점골을 내줘 1-1으로 비기고 있던 가운데서 황선홍은 후반 25분 '킬러 본능'을 발휘했습니다. 일본 골문 앞에서 공중으로 뜬 볼을 그대로 몸을 날리며 가위차기 슛으로 일본의 골망을 갈랐습니다. 황선홍의 이 골은 결국 팀의 2-1 승리로 이끌어냈고 부상에서도 완전하게 회복한 모습을 보여주며 자신의 존재를 각인시켰습니다. (물론 두 달 뒤 있었던 중국과의 평가전에서 황선홍은 십자인대 파열이라는 중상을 입고 또다시 고개를 떨궈야 했습니다) 폭우가 와서 잔디 사정이 최악인 가운데서 공이 제대로 나가지 않는 특성을 살려낸 재치 있는 슈팅을 해내며 기가 막힌 장면을 연출해낸 순간이었습니다. 골을 넣은 뒤 황선홍은 비가 와 질퍽해진 그라운드 위를 마음껏 가르는 '슬라이딩 세레모니'를 펼쳐 팬들의 마음을 더욱 통쾌하게 했습니다.

6. 1994년 히로시마 아시안게임 8강전 '황선홍 원맨쇼' 3-2 승

그보다 4년 앞선 1994년에는 도쿄대첩만큼이나 기가 막힌 명승부가 펼쳐졌는데 역시 황선홍의 원맨쇼가 돋보였던 경기였습니다. 0-1로 뒤지던 후반 유상철이 A매치 데뷔골을 넣으며 1-1 균형을 이룬 뒤 황선홍이 깔끔한 헤딩골을 성공시키며 2-1로 앞서나갔고, 2-2 균형을 이루던 후반 45분 황선홍이 홀로 패널티킥을 얻어내 이를 그대로 깔끔하게 성공시키며 3-2 승리를 거두고 4강에 올랐습니다. 미국월드컵 부진으로 마음고생이 심했던 황선홍은 이 경기를 계기로 부활에 성공했고, '일본 킬러'의 명성을 제대로 확인시켰습니다.

7. 2000년 4월 26일 평가전 '하석주의 통쾌한 골' 1-0 승

'왼발의 달인' 하석주의 통쾌한 골이 인상적이었던 경기도 있었습니다. 사실 2000년 4월, 한국은 일본을 만나 반드시 이겨야 하는 상황에 놓여 있었습니다. 올림픽 대표팀이 이전 년도에 연달아 2연패한데다 그 경기 가운데 일본 도쿄에서 열린 경기에서는 1-4로 패하는 수모를 당했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국가대표 경기에서 한국은 일본에 쉽게 무너지지 않았고, 결국 해결사는 하석주가 해냈습니다. 페널티아크 정면에서 강력한 왼발 아웃프런트킥으로 골문을 향해 슈팅을 날렸고, 이 볼은 골대를 맞고 그대로 빨려 들어갔습니다. 지난 1998년 프랑스월드컵 본선 멕시코전에서 선제골을 넣자마자 백태클로 퇴장당해 아픔을 겪었던 순간을 단 번에 날린 멋진 골이었고, 당시 국가대표팀과 올림픽대표팀 감독을 겸직하면서 일본에 내리 진 뼈아픈 상처를 입었던 허정무 감독 입장에서도 분위기 전환을 할 수 있는 경기였습니다.

8. 2003년 5월 31일 평가전 '일본 킬러 안정환의 완벽한 골, 그리고 몸매' 1-0 승

또 한 명의 '일본 킬러' 안정환의 존재감이 부각됐던 경기로 대단히 돋보였던 경기가 바로 2003년 5월에 있었던 한일전이었습니다. 이 경기는 한일월드컵 개최 1주년 기념으로 열린 경기로 나름대로 상당한 의미를 지닌 경기였습니다. 하지만 한 달 전 서울에서 열린 경기에서 0-1로 패한데다 움베르트 쿠엘류 감독이 출범 후 승리를 거두지 못하던 상황이어서 이날 경기는 친선경기의 의미보다 꼭 이겨야 하는 의지가 강했습니다.

결국 한국은 후반 41분 승부를 갈랐습니다. 왼쪽 측면에서 이을용의 땅볼 패스를 받아 문전으로 쇄도해 들어가던 안정환이 왼발로 정확하게 골을 성공시키며 1-0 승리를 거뒀습니다. 골을 넣은 뒤 안정환은 유니폼을 벗고 멋진 복근과 더불어 '혜원 러브 포에버'라는 문신까지 공개해 한동안 상당한 화제가 됐습니다. 아무튼 이 골로 안정환은 2000년 12월에 이어 일본전 골을 성공시키며 또 한 명의 '일본 킬러'로 떠올랐습니다.

9. 2010년 2월 14일 동아시아컵 '단두대 매치, 그리고 완벽한 승리' 3-1 승

▲ 2월14일 일본 도쿄 국립경기장에서 열린 2010 동아시아축구선수권대회 한국 대 일본의 경기에서 한국의 김재성이 승리를 확정짓는 세 번째 골을 넣고 환호하고 있다 ⓒ연합뉴스
올해 열린 두 차례 경기에서도 명승부가 연달아 펼쳐졌습니다. (물론 일본 입장에서는 달갑지 않게 여기겠지만요.) 지난 2월에 있었던 동아시아컵 때는 경기 전부터 참 화제가 됐던 경기로 기억되고 있는데요. 한국과 일본 두 팀 감독이 운명이 걸려있다 해서 '단두대 매치'라는 별칭이 붙었던 것이 그것이었습니다. 상황이 그렇게 된 것은 한국 허정무 감독이 이전 경기에서 중국에 0-3으로 참패했고, 일본 오카다 다케시 감독 역시 부진한 경기 때문에 두 감독 모두 여론의 질타가 대단했기 때문입니다. 어쨌든 이 경기를 승리해야 그나마 분위기 반전을 이룰 수 있는 상황이었고 그래서 선수들보다는 감독들이 더욱 진땀을 흘려야 했던 경기였습니다.

선제골은 일본이 먼저 넣었지만 경기는 의외로 한국이 쉽게 가져갔습니다. 설날에 열리는 경기다보니 국민들에게 뭔가를 보여줘야겠다는 인식이 강했고, 결국 이동국의 패널티킥 골에 이어 이승렬, 김재성 등이 잇달아 골을 터트리며 3-1 완승이라는 쾌거를 이뤘습니다. 이 경기 승리로 허정무 감독은 살아남았고, 겨울 전지 훈련에 대한 논란을 불식시킨 반면 오카다 감독에 대한 일본 내 여론은 더욱 악화됐습니다.

10. 2010년 5월 24일 '박지성의 통쾌한 세레모니, 그리고 차미네이터' 2-0 승

분위기 반전을 위해 꼭 한국전 승리가 필요했던 일본은 월드컵 본선을 한 달도 채 안 남겨둔 상황에서 다시 한국을 불러 들였습니다. 이 경기에 대한 논란이 상당했지만 한국 선수들은 크게 개의치 않고 오히려 더욱 전의를 불태우며 일본을 상대했습니다. 일본대표팀의 출정식을 겸해서 열린 만큼 경기는 그야말로 축제 분위기와 같았습니다.

하지만 이는 경기 시작 단 5분 만에 박지성의 골로 일본이 원했던 시나리오가 완전히 깨졌습니다. 박지성은 한국의 에이스답게 특유의 거침없는 돌파와 드리블 능력, 상대 선수의 타이밍을 뺏는 통쾌한 슈팅으로 전반 5분 만에 선제골을 넣으며 승부를 갈랐습니다. 골을 넣은 뒤 박지성은 일본 울트라니폰을 향해 뚫어지게 쳐다보는 세레모니를 펼치며 '한국 축구의 힘'을 몸소 보여줬고, 이어 후반 종료 직전 박주영의 패널티킥골로 또다시 2-0 승리를 거두면서 일본 축구 축제에 제대로 찬물을 끼얹었습니다.

▲ 차두리 선수 ⓒ연합뉴스
이 경기가 낳은 또 다른 스타는 바로 '차미네이터' 차두리였습니다. 오른쪽 측면 풀백으로 선발 출장한 차두리는 월등한 피지컬과 드리블 능력을 앞세워 좋은 경기력을 보여줬고, 특히 드리블 과정에서 몸싸움에 밀리지 않고 오히려 상대 선수를 '제대로' 쓰러트리며 우리 축구팬들의 마음을 '흐뭇하게' 하며 강한 인상을 심어줬습니다. 이 경기에서 나타난 활약상을 계기로 차두리에게는 '차미네이터'라는 별칭이 붙어졌고, 남아공월드컵에서 태극전사 가운데 가장 인기 있는 선수로 떠오른 계기로도 이어졌습니다.

물론 마냥 최고의 순간만 있었던 것은 아니었습니다. 앞서 언급했던 '도하의 기적' 같은 경우 만약 일본에 0-1로 패하지 않았다면 그런 힘겨운 순간이 있지도 않았을 것입니다. 또 2000년 4월 이후 두 차례 홈에서 열린 경기에서 한국은 모두 0-1로 패했고, 특히 2005년에 열렸던 동아시아컵 0-1 패배는 조 본프레레 당시 감독이 경질되는 결정적인 계기가 됐던 경기이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일본을 만나면 어떤 경기가 펼쳐지든 참 흥미로운 장면들이 많이 나오고, 정말 스포츠가 이런 것이구나 하는 걸 느끼게 만들었던 것이 사실입니다. 경기를 펼칠 때마다 어떤 승부가 펼쳐질지 알 수 없는 경기, 그래서 더 재미있고 스포츠의 묘미를 느낄 수 있는 경기, 이틀 앞으로 다가온 73번째 한일전에서는 또 어떤 승부가 펼쳐져서 우리 축구팬들의 마음을 설레게 할지 벌써부터 기대가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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