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년까지 두산의 팀 컬러를 정의하면 소위 ‘육상부’, ‘발야구’로 명명된 기동력을 앞세우는 섬세한 야구였습니다. 국내에서 가장 큰 잠실야구장을 홈으로 사용하며 특화된 야구를 추구하는 것인데, 어느덧 30대 중반을 넘어선 중심 타자 김동주에 대한 의존도를 줄이겠다는 의도가 포함된 것입니다. 그리고 2007년부터 2년 간 두산의 한국시리즈 준우승을 이끈 불펜의 핵심은 임태훈이었습니다.
그러나 2010년에 새로워진 두산의 팀 컬러는 어디까지나 페넌트 레이스에만 통용되는 것이었습니다. 준플레이오프가 시작되고 막상 뚜껑을 열어보니, 20홈런 이상을 터뜨린 5명의 타자들로부터 홈런은 단 1개도 나오지 않았으며, 이용찬이 불미스러운 일로 엔트리에서 탈락하고 마무리를 대신한 정재훈이 고비마다 무너졌습니다.
어제 삼성과의 플레이오프 1차전에서 패했던 두산이 오늘 신승을 거둘 수 있었던 것은 2009년 이전의 팀 컬러로 회귀했기 때문입니다. 어제 김현수가 선발 출장 명단에서 제외되었고, 오늘은 최준석이 아예 출전하지 못했습니다. 이성열은 선발 출장했지만 2타석만에 임재철로 교체되었습니다. 상대에 대한 현미경 분석을 바탕으로 임하는 포스트 시즌에서 장타력에 의존한다는 것이 얼마나 불확실한 것인지 두산 김경문 감독은 절감한 듯합니다.
오늘 두산을 승리로 이끈 것은 정수빈과 이종욱입니다. 정수빈은 3회초 1사 2, 3루에서 희생 플라이로 선취점이자 결승 타점을 얻었는데, 큰 경기에서 희생 플라이로 타점을 기록하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 것인지 9회말 1사 2, 3루에서 채상병이 입증한 것을 보면 정수빈의 클러치 능력은 작은 체구와 반비례한다는 점에서 인상적입니다. 게다가 정수빈은 6회초 선두 타자로 나와 2루수 방면의 절묘한 기습 번트로 출루해 4:0까지 벌릴 수 있도록 포문을 열었는데, 박진만의 발이 빠르지 않고 2루수로서 익숙하지 않다는 약점을 활용한 영리한 플레이였습니다.
이용찬이 불미스러운 일로 엔트리에서 제외되고 정재훈이 극도로 부진하면서 어쩔 수 없이 마무리 보직을 떠안게 된 임태훈이 4:3으로 쫓긴 1사 2, 3루에서 풀카운트 끝에 채상병과 김상수를 연속 삼진으로 처리하며 경기를 매조지한 것도 인상적이었습니다. 마치 2008년 이전의 두산의 마무리 보직을 책임지던 시절의 임태훈으로 돌아간 듯합니다. 김경문 감독은 리버스 스윕으로 준플레이오프를 통과했고 플레이오프에서 1승을 챙기면서 2009년 이전의 팀 컬러, 즉 섬세한 발야구와 마무리 임태훈으로 회귀해야겠다는 결심을 굳히지 않을까 싶습니다.
반면 삼성은 1회말 무사 1, 2루에서 득점에 실패하며 히메네스를 공략하는 데 실패했습니다. 무사 1, 2루에서 박석민이 번트에 실패하고 진루타를 기록하지 못하며 직선타로 물러난 후, 최형우의 직선타가 병살 처리되며 무득점에 그쳤습니다. 만일 박석민이 희생 번트를 성공시켜 1사 2, 3루가 되었다면 2루수 오재원의 수비 위치가 달라져 최형우의 잘 맞은 타구가 내야를 꿰뚫고 적시타가 되었을 지도 모릅니다.
삼성의 근본적인 고민은 가장 강력한 장점인 불펜의 한 축 권혁이 부진하다는 것입니다. 어제 경기에서는 9회초 어이없는 보크를 범하며 위기를 자초했고, 오늘은 0.1이닝 동안 볼넷만 2개 허용하며 1실점했습니다. 두산의 발 빠른 테이블 세터진이 좌타자로 이루어져 있다는 점에서 좌투수 권혁이 계속 부진할 경우, 두산의 발야구를 삼성이 저지할 수 없는 문제에 봉착한다는 의미입니다.
김동주를 제외한 양 팀의 중심 타선이 모두 부진한 가운데 두산은 적지에서 1승 1패로 소기의 목적을 달성하고 가벼운 마음으로 상경하게 되었습니다. 어제 역전패를 딛고, 오늘 종반 역전패의 위기에서 벗어나 챙긴 1승 1패라는 점에서 상승세를 탈 수 있게 되었습니다. 반면 삼성은 어제 극적인 역전승의 분위기를 오늘 경기 1회말에 살리지 못했고, 9회말 역전 기회를 날리며 아쉬운 마음으로 원정길에 오르게 되었습니다. 이제 장기전으로 치닫는 플레이오프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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