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물이 권상우라는 커다란 장애를 안고도 초반부터 거세게 시청자 마음을 사로잡고 있다. 무엇보다 고현정이 특파원 남편을 잃고 국회와 라디오 생방송을 통해서 토해낸 불만과 성토는 십년 묵은 체증이 내려가는 통쾌함과 공감을 느끼게 해주었다. 특히나 대통령으로 등장한 이순재가 아프간에서 도착한 유품을 직접 들고 고현정의 집을 직접 방문하는 장면은 눈물 날 정도로 감동적인 장면이었다. 자신의 이름으로 보낸 조화를 내팽개치고 발로 걷어찬 서혜림의 집에 찾아간 늙은 대통령의 눈빛은 마치 한국 국민 모두의 눈빛을 담은 듯 했다.

물론 현실에서는 턱도 없는 허구에 불과하다. 역대 대통령이 모두 서민 지향의 모습을 담아내기 위해 일반 가정을 방문하는 일이야 흔한 일이지만 정부의 무능과 잘못을 거칠게 항의하는 피해자 가족을 대통령이 사과하기 위해 방문한다는 것은 상상저차 어려운 일이다. 드마라가 누리는 허구의 허용이란 이럴 때 사용하라고 있는 것이다. 리얼리티를 따지자면 분명 하자가 없지 않은 장면이지만 개연성이 떨어진다고는 할 수 없다.

대통령도 고현정을 찾아간 이순재처럼 정부의 무능에 대해서 직접 사과하는 것은 충분히 있어야 할 겸손하고 적극적인 태도이기 때문이다. 우리에게 그런 대통령이 없었다 뿐이지 그런 진실한 대통령은 앞으로 꼭 나와야 할 것이다. 그런 간절한 희망과 동시에 현실에 대한 완곡한 비판이 담긴 1,2회의 내용은 사실 놀랍기만 하다. SBS 드라마가 이렇게 진보적인 내용을 담을 거라 예상치 못한 것이라 나중에는 또 어찌 변화될지는 아직 몰라도 현재로서는 드라마 자체가 반전의 충격을 주기에 충분하다.

그러나 여전히 권상우가 연기하는 검사역은 대물에 몰입을 방해하는 것만은 어찌할 도리 없는 대물의 원죄라는 점이 안타까울 뿐이다. 권상우가 맞고 있는 하도야 검사가 이유가 어디에 있건 국회의원의 비리를 집요하게 물고 들어지는 것은 어쨌든 우리 사회가 진정 원하는 모습이다. 하도야 검사가 때려잡고자 하는 우리 사회의 편법의 우산 아래 권상우가 있다는 인상이 아직 강하다.

그렇기 때문에 그의 연기를 연기로 대하지 못하고 하도야와 권상우가 겹쳐져 몰입을 방해하는 현상에 대해 시청자 탓을 할 수는 없을 것이다. 물론 권상우가 어이없게도 맡은 역할이 너무도 호감스러워 그의 잘못을 그만 용서해주고 싶은 마음이 들 정도인 것 또한 사실이다. 그가 제작발표회 자리가 아니라 사고 직후에 좀 더 진실된 모습으로 대중 앞에 사과하는 태도를 보였다면 아마도 대물은 지금의 반응보다 훨씬 더 뜨거웠을 것이라 짐작할 수 있다.

대물로서는 다행스럽게도 고현정의 카리스마가 불을 뿜고 적절히 잘 조절된 카메오의 역할이 권상우의 존재를 애써 줄이고도 이 드라마에 대한 관심을 높여주기에 충분하다. 원래 대본은 고현정, 권상우 투 톱의 구조였을지는 모르겠지만 이대로라면 선덕여왕의 미실처럼 대물은 고현정이라는 커다란 이름 하나로 끌어가게 될지도 모를 일이다. 그만큼 미실이 아닌 서혜림으로 완벽하게 변신한 고현정의 변신은 놀랍고도 반가운 일이다.

그러나 걱정이 전혀 없는 것은 아니다. 한국 사회를 꼬집는 사회성 짙은 드라마가 거의 용두사미의 지리멸렬을 보일 수밖에 없는 것이 현실이다. 현재 대물이 거침없이 꼬집고 있는 내용은 정치권에서 바라보기에는 불편하기 그지없는 것들이다. 그런 속내를 대놓고 드러내지는 않겠지만 보이지 않는 압력이 가해질 가능성 혹은 노파심이 없을 수는 없다. 요즘 세상이 그처럼 하수상해진 탓이다.

그러나 그렇게 꺽일 때 꺽이더라도 당장은 서혜림의 낡은 시골집 대문에서 낮고 겸손한 목소리로 대통령이 아닌 자신의 이름으로 인사하는 최고 권력자의 모습처럼 가슴 뭉클한 장면들을 더 볼 수만 있다면 그것만으로도 대물이 거물 되기에 충분한 자격을 갖췄다고 평가하고 싶다.

매스 미디어랑 같이 보고 달리 말하기. 매일 물 한 바가지씩 마당에 붓는 마음으로 티비와 씨름하고 있다. ‘탁발의 티비 읽기’ http://artofdie.tistor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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