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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일랜드 ‘레이스 티 팬티 판결’ 논란에 대하여[도우리의 미러볼] #이것은_동의가_아니다, 성관계에서 동의란 무엇인가?
도우리 객원기자 | 승인 2018.11.17 12:11

최근 아일랜드에서 ‘레이스 티 팬티 판결’이 논란이 되고 있다. 성폭력 사건에서 피해 여성이 입은 레이스 티 팬티가 성관계에 동의한 정황증거로 채택돼 무죄판결이 났기 때문이다. 

이는 전혀 새롭지 않은 이야기다. ‘그러게 왜 짧은 치마를 입었냐’, ‘만취할 때까지 마신 것도 잘못이다’, ‘모텔까지 따라간 것은 알고 간 것 아니냐’ 등, 왜 성을 제대로 지키지 않았느냐 지적하는, 성폭력 피해 여성의 행실을 문제 삼는 전형적인 2차 가해이기 때문이다.

이에 대한 항의의 의미로 해외 SNS에서 레이스 티 팬티 사진과 함께 ‘#이것은동의가아니다(#ThisIsNotConsent)’라는 해시태그를 올리는 운동이 일고 있다. 그런데, ‘도대체 무엇이 동의인가’란 의문도 제기되고 있다. 성관계 때 분위기를 깨 가며 일일이 동의를 구해야만 하냐는 것이다. 이 역시 오래된 이야기다.

성폭력 판결에 항의하는 아일랜드 의원(사진=bbc 유튜브 갈무리)

먼저 성에 대해 ‘지킨다’는 말을 살필 필요가 있다. 우리가 보통 지키는 대상은 물건이나 집과 같은 재산을 말한다. 하지만 성폭력은 재산에 대한 침해와 달리 피해자의 행실을 문제 삼고, 피해자가 더 수치스러워한다는 점에서 다르다. 왜일까.

우리 사회에서 여전히 여성의 성의 주체를 여성 자신이 아닌 남성에 두는 탓이다. 그래서 가부장 남성은 여성의 성을 소유하며 거래하는 자, 그러니까 여성의 성은 남성이 맡긴 것이라고 가정하면 많은 것이 설명 가능하다.

그래서 ‘여성이 성을 지킨다’와 ‘남성이 성을 지킨다’는 다른 의미다. 각각 여성은 성을 맡은 자로서, 남성은 소유자로서 관리한다는 뜻이기 때문이다. 여성의 성은 소유물로 상상되기에 훼손 가능하다는 의미에서 ‘순결’이, 남성의 성은 주체의 권리로 상상되기에 빨리 벗어나면 좋다는 의미에서 ‘아다’가 되는 이유다.

피해 여성은 성폭력 때 최대한 ‘맡겨둔’ 성을 지키려고 저항했느냐, ‘맡겨둔’ 성을 부실하게 관리했느냐라는 기준에서 행실과 태도가 문제가 된다. 또 잘 지키지 못하고 잘 관리하지 않았다는 의미에서 ‘수치심’이라는 감정을 강요받는다.

이러한 성 관념이 성관계에 있어 ‘이것이 동의인가’를 제대로 판단하지 못하게 되는 근본 원인이다. 동의는 양 당사자가 주체로서 자율적으로 맺는 행위다. 누군가 지갑을 벌려 놓거나 길바닥에 떨어뜨린다고 해서, 만취 상태라고 해서 그것이 돈을 넘긴다는 동의가 아니라는 것쯤은 어린아이도 안다. 하지만 성관계에서는 이러한 기본적인 상식이 제대로 적용되지 않는다.

마찬가지로 돈을 빌리거나 교환할 때 상대의 동의 여부를 면밀히 구하고, 최대한 신용을 확보하는 일에 ‘재미없음’ 운운하는 경우도 없다. 그런데도 성관계를 확실히 합의하는 것을 섹시하지 않다고 지적하는 것은 여성의 성을 ‘지켜야 하는 것’으로 보는 데서 온다. 남성은 그것을 공격적으로 쟁취하는 역할로만 상상하게 되기 때문이다.

아일랜드에서 열린 #이것은동의가아니다(#ThisIsNotConsent) 시위(사진=트위터 계정@ibelieveher_ire 갈무리)

비슷하게 ‘열번 찍어 안 넘어가는 나무 없다’라는 말이 있다. 이 말에는 여성을 나무와 같은 수동적 객체이자 넘어뜨려 쟁취하고 소유할 대상이라는 관점이 함축돼 있다. 하지만 여성은 나무가 아니다. 꽃도 아니다. 성적 자기결정권을 자유롭게 행사하고 존중받아야 하는 사람이고 주체이다.

결국 제대로 된 동의란, 상대의 성적 자기결정권을 마음껏 발휘하게 하는 ‘유혹’의 행위다. 유혹은 맥락을 정확히 읽고 만들어가는 능력이다. 제대로 발휘한 유혹이라면 기습 키스와 같은 행위도 즐거울 수 있다. 이는 ‘이것은 동의가 아니다’는 가능하지만, ‘무엇이 동의란 말이냐’라는 질문은 핀트가 어긋난 이유이기도 하다. 레이스 티 팬티, 짧은 치마, 만취, 모텔 그 무엇이든 자체로 동의의 표식으로 고정할 수 없다. 똑같이 레이스 팬티를 입고 똑같이 모텔까지 갔더라도 관건은 동의의 맥락을 얼마나 면밀히 구했느냐이다. 상대를 성적 자기결정권을 가진 성적 주체라고 생각할수록 이 과정은 귀찮지도, 어렵지도 않은 일일 것이다.

간단한 시력 테스트를 해 보자. ‘쾌락’과 ‘인권’, 이 둘이 얼마나 멀어 보이는가? 쾌락과 인권이 서로 얼마나 밀접한지 구체적으로 설명이 가능할수록, 당신은 진정 섹시한 관계를 맺을 수 있는 주체일 것이다.

도우리 객원기자  webmaster@mediau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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