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제축구연맹(FIFA) 주관 U-17(17세 이하) 여자월드컵에서 우승을 차지한 U-17 여자축구대표팀이 국민들에게 선사한 희망과 감동이 아직도 채 가시지 않고 있습니다. '트리플 크라운'을 달성한 여민지에 대한 찬사가 끊이지 않고 당당하게 세계의 벽을 넘어선 어린 선수들 모두, 그리고 그동안 크게 주목받지 못했던 여자 축구 자체가 새롭게 조명받고 있습니다. 한국 여성 특유의 끈질김과 젊은 패기가 뭉쳐 이뤄낸 이번 쾌거는 한국 스포츠사(史)에도 길이 남을 명장면으로 기억될 것입니다.

▲ 포트오브스페인<트리니다드토바고>=연합뉴스) 양정우 특파원 = 국제축구연맹(FIFA) U-17 여자월드컵에서 우승을 차지한 태극소녀들이 시상대 위에서 환호하고 있다.
그동안 한국 스포츠 역사를 돌아보면 여자 선수들의 활약이 유독 두드러진 것을 볼 수 있습니다. 특히 구기 종목에서 여자 선수들의 괄목할 만한 성과는 대단했습니다. 이번 여자 축구 이전에도 오랫동안 효자 종목으로 사랑받던 핸드볼, 그리고 인기 실내 스포츠인 배구, 농구, 탁구가 좋은 성과를 내며 큰 족적을 남겼습니다. 그 밖에도 개인 종목에서도 여자 선수들은 상당한 성과들을 내며 자신을 빛내고 나라를 빛냈습니다. 척박한 국내 환경에서도 여성 스포츠는 이렇게 국제 대회에서 잇달아 좋은 성적을 내 대한민국을 세계 만방에 알리는 데 큰 역할을 해냈습니다.

한국 여성 스포츠가 국제적으로 가장 먼저 크게 주목받던 것은 지난 1967년 체코슬로바키아에서 열린 세계 여자 농구 선수권 대회였습니다. 당시 다른 나라보다 평균 신장이 작은 가운데서도 선전을 거듭한 여자 농구팀은 소련에 이어 준우승을 차지하면서 세계적으로 주목받았습니다. 특히 당시 농구대표팀의 주포였던 박신자는 이례적으로 준우승팀에서 대회 최우수선수(MVP)상을 받는 이력을 세우기도 했습니다. 박신자는 1999년, 세계 여자 농구 100년을 빛낸 25인 가운데 한 명으로 선정되기도 했습니다.

1973년 구기 종목 세계 대회 출전 사상 최초로 우승을 차지한 팀은 바로 여자 탁구 대표팀이었습니다. 이에리사, 정현숙을 앞세운 여자 탁구팀은 유고슬라비아 사라예보에서 열린 세계 탁구 선수권에서 중국을 3-1로 꺾고 단체전 우승을 차지하며 남녀 통틀어 첫 세계 대회 정상에 우뚝 섰습니다. 여자 탁구는 세계선수권 첫 우승 을 차지한 지 18년 뒤, 1991년 남북 단일팀으로 출전한 세계선수권에서도 현정화, 북한의 이분희를 앞세워 기적같은 우승 신화를 쓰면서 남북 선수들이 손을 맞잡고 '아리랑'을 부르는 감격을 누리기도 했습니다.

그리고 올림픽에서 여자 구기 스포츠의 선전이 계속 이어졌습니다. '구기 종목 최초 메달' 기록을 모두 여자 선수들이 세운 것입니다. 1976년 몬트리올 올림픽에서 여자 배구 대표팀이 사상 처음으로 올림픽 구기 종목에서 메달(동메달)을 따낸 데 이어 1984년 로스엔젤레스(LA) 올림픽에서는 한국 여자 농구 팀이 세계적인 강호들을 잇달아 물리치고 미국에 이어 은메달을 목에 걸며 전 세계를 경악시키게 만들었습니다. 작은 키에 체격이 열등한 가운데서도 특유의 끈기와 팀워크를 앞세워 역대 올림픽에서 가장 빛나는 메달을 목에 건 태극 낭자들이었습니다.

▲ (연합뉴스) 중국 창저우 올림픽스포츠센터에서 열린 2009 여자핸드볼 세계선수권대회 1차리그 D조 중국과 경기에서 승리를 거둔 대한민국 대표팀 선수들이 기쁨을 나누고 있다
착실하게 메달 행진을 이어온 가운데, 결국 1988년 서울올림픽에서 여자 핸드볼 팀이 소련을 따돌리고 사상 첫 구기 종목 금메달을 목에 거는 쾌거를 이뤘습니다. 1984년 LA 올림픽 때도 은메달을 따낸 여자 핸드볼은 1988, 1992년 올림픽에서 2연패를 달성하고 4회 연속 메달 행진을 이어오며 구기 종목 가운데 최고 효자 종목으로 떠올랐습니다. 특히 2004년과 2008년에는 평균 연령 30대의 '아줌마 팀'이 나섰음에도 특유의 '아줌마 정신'으로 세계적인 강호들을 잇달아 완파하며 각각 은메달, 동메달을 따내는 성과를 내기도 했습니다.

팀 구기 종목 외에 개인 종목에서도 여자 선수들의 활약도 대단했습니다. 대표적으로 여자 골프를 들 수 있는데요. 1998년, 미국 LPGA(여자프로골프)에서 박세리가 맥도날드 챔피언십, US 오픈 등 메이저 대회에서 잇달아 정상에 올라 LPGA를 한국 선수의 무대로 만드는데 선구자 역할을 해냈습니다. '박세리 키드'라 불릴 만큼 박세리의 등장 이후 한국 선수들의 LPGA 러시가 대단했는데 이제는 '지존' 신지애가 새로운 세계 챔피언을 향해 전진하는 등 10년 넘게 LPGA에서 한국 여성 골프 선수들의 활약이 계속 이어지고 있습니다.

'피겨 여왕' 김연아도 빼놓을 수 없는 여자스포츠 영웅입니다. 불모지나 다름없는 국내 피겨계에서 세계적인 실력을 보여주며 세계선수권에 이어 밴쿠버 동계올림픽에서 사상 최고 점수를 기록해 '세계 최고의 피겨 스케이터'로 떠올랐습니다. 또 역도 장미란은 여자 +75kg급에서 세계에서 가장 힘이 센 여자로 떠오르며 세계선수권 4연패, 베이징올림픽 세계신기록 금메달이라는 위업을 달성했습니다. 비록 2008년 베이징올림픽에서 명맥이 끊어졌지만 1984년부터 6회 연속 이어온 여자 양궁의 '올림픽 신궁 계보'도 어느 나라가 감히 따라잡지 못한 '위업 중의 위업'이었습니다. 그밖에도 동계올림픽에서 2회 연속 2관왕이라는 기록을 세운 쇼트트랙 스타 전이경, 작은 키에도 아랑곳 않고 세계적인 강호들을 따돌리며 세계선수권 우승, 베이징올림픽 은메달을 목에 걸었던 펜싱 남현희 등도 인상 깊은 여자 개인 종목 선수들입니다.

그리고 마침내 축구에서도 여자 선수들의 활약이 쾌거로 이어지기 시작했습니다. 지난 7월, 독일에서 열린 20세 이하(U-20) 여자월드컵에서 3위에 오른데 이어 9월 트리니다드 토바고에서 열린 U-17 여자월드컵에서 국제축구연맹(FIFA) 주관 대회 출전 사상 처음으로 남녀 통틀어 첫 우승을 거머쥐는 위업을 달성했습니다. 나이가 어린 가운데서도 당당함과 자신감을 잃지 않은 선수들은 세계 정상 정복에 성공하며 국민에게 큰 기쁨을 선사했습니다.

어려운 환경, 그리고 여성이 스포츠를 한다는 것에 대한 편견 속에서도 여성 스포츠는 비약적인 발전을 이루며 한국 스포츠의 발전에 큰 밑거름이 됐습니다. 목표를 이뤄내겠다는 집념과 강한 정신력, 여성들만의 특유의 승부 근성, 여기에 보다 체계화된 훈련과 연습을 통해 여성 스포츠는 남성에 결코 뒤지지 않는 성과를 내면서 국내는 물론 세계를 깜짝 놀라게 했습니다. 이렇게 수십 년간 좋은 성과를 내면서 스포츠와 여성이 잘 맞지 않다는 편견도 하나둘씩 깨지고 있고, 그에 따라 주변 환경, 여건도 두드러지지는 않지만 서서히 나아지는 모습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하지만 이것으로 끝나선 안 됩니다. 아직 여성 스포츠가 이룰 것은 너무나도 많습니다. 그러기 위해선 남자 선수들 못지 않게 여성 스포츠에도 꾸준한 관심과 지원이 어느 정도 뒷받침돼야 할 것입니다. 나라에 '효녀'같은 역할을 톡톡히 해내고 있는 우리 여자 스포츠에 대한 지속적인 관심과 격려, 응원이 여자 스포츠를 더욱 거듭나게 하고, 질적인 발전을 이루는 계기가 된다는 것을 많은 사람들이 알았으면 하는 바람입니다. 그래서 육상, 수영 같은 기초 종목 그리고 아직 빛을 내지 못한 다른 아마추어 스포츠들에서도 효과가 이어져 더욱 위대한 역사를 만드는 대한민국 스포츠가 되기를 기대해 봅니다.

대학생 스포츠 블로거입니다. 블로그 http://blog.daum.net/hallo-jihan 를 운영하고 있습니다. 세상의 모든 스포츠를 너무 좋아하고, 글을 통해 보다 많은 사람들과 공유하고 이야기하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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