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극은 참 어렵다. 특히나 역사 중 가장 많은 사료가 남아있는 왕실을 배경으로 한 사극은 더더욱 어렵다. 사료가 모두 사실이 아닌 것도 어렵고, 사실인 것도 어렵다. 모든 사실을 무시한 완벽한 창작이라면 모를까 동이처럼 어설프게 역사를 따라가는 사극에서 역사는 스포일러도 됐다가 때로는 작가가 슬쩍 훔쳐보는 컨닝 페이퍼가 되기도 하기 때문에 어렵다. 그 어려운 사극을 이병훈 감독은 참 오랜 세월 동안 참 잘 해냈다. 그러나 동이는 후반부에 들어서면서 망작의 늪에 빠져들고 있다. 모두 작가의 부족한 역량이 빚어낸 결과다.

동이의 주인공이건 누가 주인공이 되었건 간에 등장하는 인물로서 가장 중요한 모티브 세터는 장희빈이다. 결국에는 새로운 장희빈 그리기에는 실패했으나 동이에서 장희빈으로 등장한 이소연은 초반 드라마 인기를 주도하는 산뜻하고 명징한 연기를 선보였다. 이후 장희재 등이 허당 케릭터로 전락하면서 함께 장희빈의 케릭터 자체도 갈 길을 잃고 말았지만 그래도 지금까지 이 드라마의 인기를 견인하는 데 중추적 역할을 해왔다.

원래 죽었어야 할 무고의 옥이 아닌 자기 자식의 고백에 의해 죽음의 자충수를 두게 된 장희빈이었다. 그러나 그 죽음은 앞서 인현왕후의 죽음 때처럼 황당한 일은 벌어지지 않았으나 여전히 그 죽음을 그려내는 디테일함과 여운을 남기는 것은 실패했거나 등한시했다. 장희빈 정도의 죽음은 역시나 실망스러운 묘사였다. 올해 동이와 반드시 비교될 또 하나의 사극 추노에서 천지호가 죽을 때 대길과 함께 보였던 그런 인상적인 장면 하나 남기지 못했다.

물론 숙종을 소리를 죽인 오열도 명연기였고, 마지막 사약을 마시기 전 왕이 있을 방향으로 고개를 들어 응시하는 이소연의 절제된 연기 역시도 뜨거운 감정을 북받치게 했지만 그것 뿐이었다. 그저 연기자에게 맡겨놓았을 뿐 거기에 연출은 없었다. 장희빈이 아니라 연기자 이소연을 보내기에는 너무 소홀하고 초라한 최후였다. 그저 서둘러 다음 장면에 쫓기는 듯한 모습이라고 할 정도로.

그러나 거기서 끝이 아니었다. 동이를 끝까지 천사표 케릭터로 유지하려는 작가의 마음은 뭐라 비판할 수 없는 고유의 영역이나 그것을 가능케 하기 위한 개연성은 갖췄어야 했다. 여기서 잠깐 이병훈 감독의 불명의 명작 대장금의 후반부로 돌아가 보자. 중종은 장금에게 이런 말을 한다. “그동안 많은 빈과 비가 있었지만 그들은 단지 어떤 세력의 대표였을 뿐이었다” 왕의 여자는 여자이기 전에 붕당의 아이콘이라는 조선왕조의 비극적 상황을 함축하는 대사였다.

왕의 수많은 여자들 속에서 태어난 왕자들은 왕이 되지 못하면 대단히 불행한 삶을 살아야 했다. 그나마 살면 다행이겠지만 경종과 영조의 관계처럼 은원과 붕당이 엮이게 되면 둘 중 왕이 되지 못한 한 쪽은 죽을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그런 속에서 착한 동이는 중전의 자리에 올라 연잉군을 보위에 올리자는 노론의 결정에 반기를 든다. 그리고 대안으로 왕세제라는 묘안을 내놓는다. 경종와 영조 둘 모두를 살리는 평화전략이기는 하지만 개연성 없는 상상에 불과하다.

왕세제 전략은 역사를 컨닝한 것에 불과하다. 경종이 보위에 오른 뒤 연잉군이 왕세제에 책봉되었기는 하지만 이는 결코 동이의 힘으로 될 수 있는 일이 아니었다. 즉, 정유독대를 통해 노론이 움직이지 않았다면 왕세제는 고사하고 죽음을 면치 못했을 것이다. 또한 숙종의 세 번째 계비 인원왕후와의 연합으로 가능한 일로 봐야 한다. 그런데 인원왕후가 헤게모니를 잡기 위해 사납게 나오는 상황에서 동이의 왕세제 발상은 현실성 없는 낙관론에 불과하다. 연잉군이 살아남을 수 있었던 것은 동이의 정치보다는 노론의 지지 때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정유독대의 장본인 이이명을 비롯하여 노론 사대신을 비롯해서 수백명이 경종에 의해서 처벌당할 정도로 경종과 소론 입장에서 왕세제는 목숨을 위협하는 일일 수밖에 없다.

물론 결과적으로 그렇게 됐지만 그것은 장희빈 사사 후 20년이란 세월이 지나도록 경종이 후사를 보지 못했다는 사실이 있었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또한 조선의 2대왕인 정종이 아우인 태종에게 보위를 물려준 일이 있었지만 그것은 개국 초의 아주 특별한 상황 속에서 벌어진 일이고 왕의 동생이 보위에 오른 것은 쿠데타로 인한 예가 더욱 기억된다는 점에서 상생의도가 아닌 역모로 몰리는 것이 당연한 상황이다.

세조가 그랬고, 비록 연산과 광해군이 패주라고 하더라도 어쨌든 형태는 반정에 의한 것이었기 때문이다. 결국 왕세제 전략은 평화보다는 반정의 이미지가 더욱 강할 수밖에 없는 것이 조선왕실의 분위기를 망각한 어처구니없는 발상이다. 동이는 비록 걸작은 아니어도 시청률 20대 후반을 유지하는 성공적인 드라마다. 그 여세를 몰아 10회를 연장했다. 내용만 좋다면 10회가 아니라 100회를 연장한다고 마다할 이유는 없다. 그러나 연장 이후 전개되는 내용은 개연성도, 특별한 노림수도 없이 그저 분량만 늘리고 있다는 인상이 짙다.

매스 미디어랑 같이 보고 달리 말하기. 매일 물 한 바가지씩 마당에 붓는 마음으로 티비와 씨름하고 있다. ‘탁발의 티비 읽기’ http://artofdie.tistor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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