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별재판부라는 새로운 개념이 논란이다. 양승태 대법원장 시절 사법농단 문제를 현재의 재판부가 제대로 다루지 못할 것이기 때문에 특별한 조치가 필요하다는 것이다. 검찰의 수사를 못 믿어 만든 특별검사제에 이어 이제 특별재판부를 논해야 하는 우리 신세가 딱하다.

특별재판부를 강하게 주장하는 사람들의 논리는 이렇다. 사법농단 관련자들이 기소될 경우 서울중앙지법의 7개 형사합의부에 배당될 가능성이 커지는데, 이 중 5곳의 부장판사나 배석판사가 사법농단 관련 조사나 수사를 받았던 당사자들이라는 것이다. 때문에 이 사건을 다룬 재판부에 한해 외부인사가 참여하는 후보추천위의 추천을 놓고 대법원장이 재판부 구성을 최종적으로 결정하도록 하자는 것이다.

일상적 상황이라면 입법부가 진지하게 추진하기 어려운 내용이다. 그러나 이른바 사법농단 문제에 대한 사법부의 태도가 이런 상황을 만들었다는 점은 부인할 수 없다. 법원은 사법농단 관련 검찰의 수사를 사실상 거부하면서 수사 관련 영장을 거의 대부분 기각했다. 일각에서는 최근 법원이 직권남용 혐의에 대한 판결을 엄격하게 내리고 있는 것에 대해 사법농단 관련자들의 재판이라는 ‘본게임’을 준비하기 위한 포석이라는 해석까지 내놓고 있을 정도이다.

자유한국당을 제외한 여야 4당 원내대표가 25일 오전 기자회견을 갖고 특별재판부 설치에 동의 입장을 낸 것에는 이런 이유가 있다. 당연한 일이라고 해야할까, 자유한국당은 반대하고 있다. 보수언론도 반대 여론에 힘을 싣는다.

조선일보는 26일자 사설에서 재판부를 회피하거나 재배당을 요청할 수 있음에도 특별재판부를 밀어 붙이는 것이야 말로 사법농단이라는 주장을 폈다. 또 조선일보는 특별재판부가 건국 초기 반민족 행위자 처벌이나 3.15 부정선거관련자 소급 처벌 등을 놓고 극히 예외적으로 도입된 바 있다며 “이 나라에 무슨 혁명이라도 난 건가”라고도 했다. 다른 보수언론들도 조선일보처럼 극단적 반응은 아니지만 위헌 소지가 있다는 지적 등에 대한 우려를 거론하고 있다.

더불어민주당 홍영표(왼쪽부터), 민주평화당 장병완, 바른미래당 김관영, 정의당 윤소하 원내대표가 25일 오전 국회 정론관에서 특별재판부 설치 추진과 관련한 기자회견을 마친뒤 나오고 있다. (연합뉴스)

그런데 특별재판부 설치가 옳으니 그르니에 대한 이 논쟁은 다소 허무하게 느껴지는 게 사실이다. 왜냐하면 특별재판부 관련 법안 처리는 불가능할 것 같기 때문이다. 가장 먼저 언급되는 것은 국회선진화법이다. 산술적으로만 따지면 국회선진화법에도 불구하고 특별재판부 관련 법안 처리가 불가능한 것은 아니지만 현실적으로는 상임위 처리 과정 등에서 문제가 생길 가능성이 크다. 김관영 바른미래당 원내대표는 25일 TBS라디오 <색다른 시선 김종배입니다>와의 전화연결에서 “국회 관행상 제1야당이 반대하는데 법이 통과될 수는 없다”며 “특히 법제사법위원회 법안소위를 통과해야 하는데 기본적으로 전원일치가 관행”이라고 설명했다.

이런 이유로 특별재판부 설치는 어떻게든 자유한국당을 동의하게 만들어야 가능하다. 그런데 자유한국당의 태도나 보수언론의 논조를 보면 이 문제 자체만을 놓고 봤을 때는 틈이 보이지 않는다. 따라서 다른 사안과 묶어서 ‘딜’을 하는 방안이 거론되는데, 여기서 등장하는 게 서울교통공사 등 공공기관 채용 비리 관련 국정조사 문제이다. 자유한국당이 반대하는 특별재판부와 더불어민주당이 소극적 태도를 보이는 국정조사를 ‘빅딜’하자는 것이다. 이런 추론은 김성태 자유한국당 원내대표가 여야4당의 특별재판부 구성 입법 기자회견 이후에 “일의 앞뒤가 맞지 않는 야권 분열 공작”이라고 발언하면서 등장했다.

이러한 구상에 현실성이 있을까? 정치는 생물이라고들 말하니 끝까지 지켜봐야 할 일이지만 적어도 지금 시점에서 더불어민주당과 자유한국당이 이런 ‘빅딜’을 이룰 필요는 없어 보인다. 공공기관 채용 비리 문제에 대한 국정조사는 결국 국정감사가 끝나면 어떻게든 향후의 일정 등에서 결론이 날 문제이다.

더군다나 지금까지의 행보를 통해 드러난 공공기관 채용 비리 문제에 대한 자유한국당 등 보수세력의 목표는 반발 여론을 활용하는 것이지 실체적 진실을 밝히는 것이라고 볼 수는 없다. 국정조사를 추진하는 야당들의 입장이 단일한 것도 아니다. 예를 들어 바른미래당, 민주평화당, 정의당은 국정조사 대상에 강원랜드를 넣자고 주장하고 있지만 자유한국당은 우왕좌왕 하고 있다.

‘빅딜’이 이뤄지려면 앞서 언급한대로 특별재판부 관련 법안이 법사위를 통과해야 하는데 판사 출신인데다 극단적 입장을 견지하는 여상규 의원이 국회 법사위원장을 맡고 있는 상태에서 합리적인 논의가 가능할지도 의문이다. 법안을 신속처리안건으로 지정해서 법사위를 우회하는 방법이 있지만 본회의를 거칠 때까지 200일 이상의 시간이 걸려 실효성이 없는 결과가 될 가능성이 높다. 또 최근 박정희 전 대통령을 “천재”로 평한 이언주 의원이나 지상욱 의원 등 바른미래당 내 일부 인사들이 반발 움직임을 보이고 있는 것도 변수이다.

결국 시선은 이르면 오늘 밤 결정될 임종헌 전 법원행정처 차장의 구속 문제로 쏠린다. 만일 법원이 여러 우여곡절에도 끝에 임종헌 전 차장에 대한 구속영장을 발부한다면 특별재판부 설치에 반대하는 이들 입장에선 나름대로 할 말이 생긴다. 그러나 영장이 끝내 기각된다면 특별재판부 관련 법안 처리 문제는 그야말로 정국의 핵으로 떠오르게 되고 경우에 따라서는 정계개편의 불씨를 만드는 ‘나비의 날갯짓’이 될 수도 있다.

물론 판사는 외부의 이런 저런 사정과 관계없이 오로지 법리로만 판단해야 한다. 그러나 지금 누구도 그런 당연한 말을 할 수 없는 상태가 돼있는 것이 문제이다. 사법부는 자기 잘못을 모르쇠하고 검찰은 법원에 대놓고 반발하며 특별재판부 설치를 놓고 정치권이 극단적 대치를 이어가는 장면은 외신에서나 볼 수 있던 광경이다. 이렇게 꼬여버린 상황을 푸는 가장 쉬운 방법은 특별재판부의 위헌성을 주장하기에 앞서 사법부가 먼저 자기 자리를 스스로 되찾는 것이다. 이미 많이 늦었지만 아직 기회는 남아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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