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많은 화제와 이야깃거리, 뜻밖의 스타들을 배출했던 남자의 자격 하모니 편도 드디어 대망의 끝이 보이기 시작했습니다. 이미 각기 다른 이들의 목소리로 하나의 하모니를 이룬다는 본래의 목적은 달성되었다고 선언했고, 수상 결과 역시도 성질 급한 몇몇 기자님들의 친절한 깨방정 덕분에 잘 알려져 있지만 역시 애초에 종착역으로 선정하고 달려왔던 거제도에서 열렸던 합창대회가 대망의 하일라이트인 것만은 분명하죠. 그들의 목표가 합창대회 수상은 아니었지만, 그 마지막은 몇 번이고 반복해서 훈련해왔던 두 곡이 무대에서 울려퍼지는 8분의 시간이니까요.

모두가 긴장하고 있고 실력은 준비한 만큼 발휘되지 않습니다. 긴 이동시간 때문에 생긴 피로, 대회 직전의 흥분이 몸 상태를 어그러뜨린 것이죠. 직접 대회를 준비하던 이들에게는 속이 타들어가는 순간이었겠지만 극적인 드라마를 지켜보는 시청자들에게는 적절한 핸디캡이었습니다. 결말 뒤에 찾아오는 환희와 만족을 위해 필요한 것은 이런 식의 고난과 어려움이니까요. 덕분에 합창단은 다시 한번 각오를 다질 수 있었고, 우리는 드디어 공개될 다음 주의 최종 무대를 또 한 번의 흥분과 기대감을 가지고 볼 수 있게 되었습니다. 결과가 뻔한 드라마처럼 시시한 구경거리는 없으니까요.

하지만 이런 작은 위기 상황을 극복하는 과정에서, 저는 남자의 자격 제작진이 그토록 감추고 싶어 했던, 혹은 모른척하고 싶어 했던 모습을 하나의 작은 틈을 통해 다시금 마주하게 되었습니다. 남자의 자격 하모니 편 최고의 스타이자 실질적인 진행자, 박칼린 선생님이 단원들을 격려하고 자극하면서 던진 말 한마디 때문이었죠. 언제나처럼 정확한 포인트, 적절한 표현으로 전달된 가르침이었기에 다른 프로그램이었다면 별다른 말실수라고 볼 수 없는 말이었지만 남자의 자격 제작진들에게는 약간 아찔하고 뜨끔했던 순간이었을 거예요.

사실 그리 특별하지 않은 말이었을 수도 있습니다. 내일 그들이 서게 될 무대에 책임을 가지라는, 하모니라는 미션은 이미 달성했지만 우리에겐 시청자들, 자리를 찾아줄 관객과의 약속이 남아 있다는 경계의 한마디였죠. 그런데 좀 이상하지 않나요? 그들이 언제 전 국민과 멋진 무대를 보여주마 약속을 하고 합창단에 들어왔었죠? 남격 합창단의 목적은 이미 그녀 스스로 미션 달성을 완료하며 말했던 것처럼, 기자들의 질문에 발끈하며 화를 냈던 것처럼 그럴듯한 성과물을 무대에서 보여주는 것이 아니었습니다. 서로 다른 사람들이 모여서 하나의 화합을 만들어내는 과정. 그 자체에서 느껴지는 감동과 기쁨을 전달하는 것이었죠. 그 즐거움과 재미는 이미 지금까지의 모습을 통해 충분히 전달되었고 많은 이들의 마음을 움직였습니다. 끝까지 멋지게 마무리된다면 더욱 더 멋지겠지만 무대 위에서의 최종적인 모습은 그리 중요한 것이 아니었어요.

그렇기에 박칼린의 그 말 한 마디는 조금 의외의, 전혀 예상하지 못했던 지적이었습니다. 아마도 무대와 공연 자체에 대한 존중이 몸에 배어 있는 그녀의 프로로서의 자세가 공연 전날 초조함과 맞물리며 그런 말을 하게 만든 것이겠죠. 하지만 이런 접근 방법은 잠시 잊고 있었던 남격 합창단의 실체, 리얼 버라이어티의 어려움에 대한 생각을 떠올리게 하더군요. 남자의 자격이 지금까지 숨겨왔던 조그만, 귀여운 비밀은 단원들의 면면을 아무리 살펴봐도 이들이 포장하고 있는 아마추어와는 거리가 멀다는 것입니다. 이미 이전의 글(남자의 자격, 남격 합창단의 귀여운 속임수)에서 언급했던 것처럼 성악 발성이나 합창이라는 것에는 모두 낯설어하는 것은 사실이지만 단원들 중 태반이 노래를 업으로 하고 있고, 박칼린을 비롯한 프로들의 조련을 단기간에 거친 이들을 순수한 아마추어라고 하긴 어렵겠죠.

그럼에도 이 프로그램은 끝까지 자신들의 부족함, 미숙함, 낯설음에 대해 지속적으로 강조했습니다. 그것은 남자의 자격의 방향 자체가 생소한 것에의 도전, 그 과정의 즐거움에 대해 말하는 것이기 때문이에요. 아무리봐도 구멍 투성이인 남격 멤버들의 귀여운 실수들에 집중하고, 평범한 일반인 출신 참가자들의 이야기를 풀어놓으면서 이 프로그램이 하고 싶었던 것은 이들의 하모니가 노래 잘하는 가수들이 모여 만드는 성공 스토리가 아닙니다. 일상에서 벗어나 삶의 작은 활력으로서의 합창을 즐기는 평범한 사람들의 이야기, 시청자들도 충분히 공감하며 참여할 수 있는 우리의 이야기였으니까요. 제작진도, 박칼린 선생님도, 출연자들도 모두 알고 있는 암묵의 기준이었죠.

그러니 남격의 하모니가 전달하고자 한 것은 시청자들과의 약속, 일정한 수준의 모습을 전국민에게 보여주고자 하는 것이 아니라 프로그램 말미에 등장했던 실버 합창단의 수줍지만 진솔한, 진실의 울림이었던 것이죠. 배다해를 비롯한 출연진들이 초로의 합창단원들이 부르는 노래에 감동하고 눈물을 흘린 것은 그들의 수준이 빼어나기 때문에, 놀라운 실력을 보여 주었기 때문이 아닙니다. 그분들의 노래야말로 남격의 하모니가 보여주고자 했던 궁극의 가치, 인생의 작은 부분에서 늘 그 소중한 무언가를 잊지 않고, 즐기며 노력하며 살아가는 평범한 사람들의 아름다움을 전달해주었기 때문이에요.

그렇기에 박칼린과 단원들의 초조함이 만든 약간의 위화감이 말미에는 저절로 풀려버렸다고나 할까요? 아니면 영리한 제작진들이 실버 합창단의 방송 비중을 높임으로써 균형을 맞추어 주었다고나 할까요? 무의식중에 나왔던 조그만 구멍은 유능한 제작진의 빠른 손놀림으로 완벽하게 메꾸어졌습니다. 리얼 버라이어티의 저력은 역시 출연진만큼이나 제작진의 역량에 달려 있다는 사실을 다시 한번 느끼게 해준, 그리고 아무리 프로그램과 이 포맷 자체의 성격까지 이미 충분히 숙지하고 있고 그것에 충분히 가치를 두고 있음에도 도저히 버리지 못하고 튀어나온 박칼린 선생의 철저한 프로 정신에 감탄한 방송이었어요. 유능한 제작진과 정감가는 멤버들, 적절한 도전과제까지 어울린 지금 남자의 자격은 전성기를 맞이하고 있습니다. 이래저래 흔들리고 있는 1박2일의 위기를 생각한다면 이제 해피선데이의 간판 프로그램은 남자의 자격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에요.

'사람들의 마음, 시간과 공간을 공부하는 인문학도. 그런 사람이 운영하는 민심이 제일 직접적이고 빠르게 전달되는 장소인 TV속 세상을 말하는 공간, 그리고 그 안에서 또 다른 사람들의 마음을 확인하고 소통하는 통로' - '들까마귀의 통로' raven13.tistor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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