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일 국회 외통위 국정감사장에서 제기된 ‘5·24조치 해제 검토’ 논란이 뜨겁다. 민주당 이해찬 대표의 질문에 강경화 외교부 장관이 “관계부처와 검토 중인 것으로 알고 있다”고 답변한 것에 야당 의원들이 비난하고 나섰고, 결국 강경화 장관은 “범정부 차원의 검토는 아니다”라고 답변을 수정했다.

그러나 다음날인 11일 트럼프 대통령이 “미국의 승인(approval) 없이는 안 된다”는 발언을 해 논란은 더욱 뜨거워졌다. 다만 트럼프 대통령이 주권국가 간에 쓸 수 없는 단어를 썼다고 해 본질인 5·24조치 해제에서 내정간섭 문제로 번지는 양상도 보이고 있다.

강경화 외교부 장관이 10일 오전 서울 종로구 외교부에서 열린 2018 국회 외교통일위원회 국정감사에서 질의에 답하고 있다. Ⓒ연합뉴스

5·24조치는 2010년 천안함 사건 이후에 이명박 정부가 실시한 대북제재를 말한다. 개성공단과 금강산을 제외한 방북 불허, 남북교역 중단, 대북지원사업의 원칙적 보류 등 인도적 차원의 지원까지 차단하는 강력한 조치이다. 그러나 5·24조치는 시행 첫해를 지나 이듬해부터 느슨해졌었다. 박근혜 정부 역시 몇몇 대북교류에 유연한 대처를 보인 바 있었다. 특히 ‘통일대박론’ 이후 당시 여당이었던 새누리당은 5·24조치 해제 논의에 앞장서기도 했다.

문재인 정부 들어 남북관계는 전에 없던 파격적인 진전과 발전의 청사진을 그려가고 있다. 특히 남북철도 연결 등 남북경협은 많은 국민에게 기대와 희망을 안겨주고 있다. 그러나 실제로 남북경협은 5·24조치는 물론 유엔 대북제재가 풀리지 않는다면 사실상 불가능하다. 유엔 대북제재가 완화되거나, 해체되지 않는 한 5.24조치와는 무관하게 남북경협은 불가능한 것이다.

그러나 지금 남북관계는 이명박근혜 정부 때와 백팔십도 달라졌다. 비핵화와 남북경협이라는 쌍두마차가 한반도의 분단을 뚫어내려 하고 있다. 비록 유엔제재 없이는 실효성이 없다고 하더라도 이런 상황에서 적어도 우리 내부에서 상징적으로라도 대북제재를 없애는 노력을 보이는 것은 당연하다고 할 것이다.

역사적 첫 북미정상회담이 열린 6월 12일 오후 싱가포르 센토사 섬 카펠라호텔에서 미국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이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연합뉴스

남북정상은 지난 9월 평양공동선언을 했다. 가장 우선되는 것은 당연히 ‘군사적 적대관계를 종식한다’는 내용이었지만 남북이 호혜적으로 ‘민족경제를 균형적으로 발전’하자는 내용도 그에 못지않게 중요한 의미였다. 평화도 중요하지만 거기서 멈추지 않고 번영된 미래를 추구한다는 의지였다. 남북의 평화는 평화 자체에 머물지 않고 번영이라는 희망찬 미래를 약속한다.

평양선언에 대한 국민의 지지는 뜨거웠다. 우리 스스로도 미래를 위한 최고의 투자는 평화인 것을 잘 알고 동의하기 때문이었을 것이다. 이런 마당에 5·24조치 해제를 검토조차 하지 않는 것은 모순이자 기만이나 다름없다.

물론 한반도 비핵화를 위해 한미 간의 긴밀한 공조가 전제되어야 함은 너무도 당연하다. 그러나 미국과 유엔이 대북제재를 풀기 전에 우리가 먼저 제재를 없애려는 자세를 보이는 것 또한 필요하다. 분단의 당사자이며, 목마른 자는 미국이나 유엔이 아닌 우리다. 우물을 파도 먼저 파는 것은 너무도 당연하다. 더군다나 북한이 중국, 러시아와 함께 대북제재 완화를 요구하는 움직임까지 보이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우리가 5·24조치 해제를 검토하는 것은 성급한 것이 아니라 오히려 늦은 감이 없지 않다. 당연히 5.24조치 해제는 잘못이 아니고, 숨길 일도 아니다.

매스 미디어랑 같이 보고 달리 말하기. 매일 물 한 바가지씩 마당에 붓는 마음으로 티비와 씨름하고 있다. ‘탁발의 티비 읽기’ http://artofdie.tistor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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