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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대의 물음에 응답하는, 주목할 만한 여성 캐릭터 셋[미디어비평] 톺아보기
meditator | 승인 2018.09.24 15:35

- <보이스2> 강권주, <미스터 션샤인> 쿠도 히나, 그리고 <러블리 호러블리> 오을순

OCN <보이스 시즌2>, tvN <미스터 션샤인>, KBS2 <러블리 호러블리>

'여성'의 정의를 새롭게 써내려가는 시대다. 여성에 대한 태도, 사고, 관행들에 대해 의문이 제기되고 반성이 이루어지며 새로운 전통과 가치관을 모색하는 시절이다. 하지만 이 새 시대는 녹록지 않다. 여성이 이 사회에 어떻게 자리매김해야 하는가부터 여성다움에 대한 정의조차 합의에 이르는 것이 쉽지 않다. 그 쉽지 않은 공감에의 도출은 어쩌면 애써 무엇으로 규격화하려는 것이 아니라, 그 무엇으로도 규정하지 않는 것으로부터 시작되어야 하는 게 아닐까? 

그런 면에서 최근 드라마에서 주목할 만한 세 여성 캐릭터가 있다. 그들은 여성이지만 지금까지 우리 사회 문화에서 그려오던 여성 캐릭터와는 차별된다. 하지만, 그들을 하나의 범주로 묶을 수는 없다. 이렇게 다른 여성들을 통해 이 시대 여성상을 풍부하게 하는 것, 그것이 새로운 여성을 정의내리는 첫걸음일 듯싶다.   

냉철한 리더십의 바탕엔 편견 없는 파트너십이, <보이스2> 강권주(이하나 분) 

OCN 주말드라마 <보이스 시즌2>

어릴 적 사고로 눈을 다치면서 절대 청력을 가지게 되었다. 그 특기를 살려 112 신고센터 요원이 되었다. 하지만 무진혁 형사 아내의 죽음, 그리고 이어진 아버지의 죽음 등 전화기를 통해 생생하게 전해지는 죽음의 현장에 대한 경찰의 늑장 대처로 자신의 직업적 한계를 느껴 미국 유학을 떠난다. 그로부터 3년 후 강권주는 '소머즈'와 같은 청력에 기반하여 보이스 프로파일링 및 긴급구조라는 독보적 분야의 전문가로 돌아와 골든타임팀을 꾸린다. 

시즌1에 이어 시즌2에서도 골든타임팀의 수장으로 등장한 강권주를 특징짓는 건 당연히 그녀의 남다른 청력이다. 하지만, 청력만으로 강권주를 예단해서는 아쉽다. 청력을 기반으로 하여 보이스 프로파일링 전문가가 된 강권주는 112 응급구조센터라는 절체절명의 응급 상황에서 흔들리지 않는다. 그렇게 의연하게 사건에 대처하며 골든타임팀 및 출동 팀을 이끄는 '리더십'이 진짜 그녀의 강점이다. 그 누구보다 사건의 희생자에 대해 공감하고 마음 아파하지만, 그 공감의 감정을 절제된 이성으로 통제하며 상황을 이끌어간다. 즉, 그 어떤 순간에도 흔들리지 않는, 흔들리지 않으려 노력하는 그녀의 통제력. 그에 기반한 기민하고 냉철한 지시와 대처, 그것이야말로 <보이스2> 골든타임팀을 가능케 하는 핵심이다. 

그에 덧붙여 동료에 대한 편견 없는 파트너십이 그녀의 리더십을 배가시킨다. 시즌 1에서 밥 먹듯 야근을 하는 남편을 위해 도시락을 챙겨 오다 잔인하게 살해된 아내 때문에 폭주하다 폐인이 되다시피 한 무진혁을 출동 팀장으로 이끈다. 시즌2에서도 마찬가지다. 동료 형사를 죽인 사이코패스라 낙인찍힌 왕따 도강우 형사(이진욱 분)을 동료로 받아들인다. '미친 개'라던 무진혁, '또라이'라던 도강우를 자신의 파트너로 이끈 이유는 동물적 감각으로 굵직한 사건들을 처리해냈던 혹은 알파고라고 지칭되는 그들의 능력이다. 즉 그들에 대한 세간의 편견을 넘어 그들의 능력을 존중한다. 이런 사심 없는 강권주의 리더십은 해커였던 팀원들을 규합하는 과정에서도 드러난다.

또한 시즌2에서 골든타임팀을 경찰청 내부의 이간질과 불신으로 궤멸시키려 했던 방제수의 전략으로 도강우의 정체성에 대한 의심을 가지게 되었던 강권주는, 그에 대한 자신의 불신이 불식되자 기꺼이 사과하며 그의 의견에 귀를 기울인다. 이런 강권주 캐릭터는 새로운 여성상을 넘어 어쩌면 우리 시대 '리더십'의 새로운 전형으로 주목할 만한 지점이다.   

세상을 주무르나 옹졸하지 않다, <미스터 션샤인> 쿠도 히나, 아니 이양화 (김민정 분)

tvN 주말 드라마 <미스터 션샤인>

그녀는 이양화로 태어났다. 하지만 나라조차 팔아 일신의 영달을 구한 아비는 그녀를 일찍이 쿠도 히나로 만들었고 그녀를 돈 많은 일본인에게 팔았다. 그녀의 몸 안에 새겨진 흉터와 같은 결혼 생활. 하지만 그녀는 그 학대를 기꺼이 갚고 글로리 빈관으로 여주인으로 돌아왔다. 

하지만 그녀는 그저 호텔의 여주인이 아니다. 조선의 모던 보이, 모던 걸이 보이는 이 개화의 중심지에서 그녀는 세상 돌아가는 모든 정보들을 모은다. 그 정보는 그녀의 의사에 따라, 그리고 그녀가 일원인 고종의 휘하 비밀조직의 명령에 따라 조정된다. 그 중심에 그녀가 있다. 

그저 돌아가는 세상의 조정자로 살던 그녀, 그런 그녀 앞에 미국인 유진이 나타났다. 아버지는 물론 남편도, 남자들에게는 득보다 실이 많았던 그녀의 삶에 다른 감정의 결을 느끼게 해주는 사람. 그런데 그런 그의 눈은 다른 여인 애신을 바라본다. 그만이 아니다. 동지인지 정인인지 모르게 늘 그녀의 곁에 있던 동매조차도 애신 앞에서는 흐트러진다. 처음엔 대가댁 규수였던 애신이 가소로웠고 고까웠고, 세상을 주무르는 자신의 능력으로 그녀의 발을 걸어볼까도 싶었다. 

하지만, 쿠도 히나의 선택은 달랐다. 자신이 사랑하고픈 남자의 정인으로 등장한 여인에 대해 질투 대신, 기꺼이 그녀의 처지와 존재를 들여다봐 준다. 연적에게만이 아니다. 사랑하고픈 남자에게도, 벗인지 연인인지 모르는 남자에게도 가장 앙칼진 칼을 들이대는 대신, 든든한 둔덕이 되어 애신도 유진도 동매도 쿠도 히나의 그늘에서 위기를 피할 수 있게 해준다. 

쿠도 히나가 된 이양화가 가장 멋졌던 장면은, 그의 아비 이완익의 죽음 앞에서다. 자신을 팔아넘겼지만, 그래도 아비의 죽음이다. 하지만 그 육친의 죽음 앞에서 그녀는 그 아비로 인해 핏덩이 때 고아가 되어버린 애신의 가엾은 생을 놓치지 않는다. 그런 식이다. 가장 감정적인 듯한 포지션을 취하지만, 어쩌면 <미스터 션사인>에서 가장 품이 넓고 공명정대하며 정의로운 인물은 쿠도 히나가 되어버린 친일파 이완익의 딸 이양화다. 

육친의 혈연 대신 이성의 조국을 택한 여인. 친어미의 소식을 속인 정문 대감에 대한 복수 대신 고종의 호위를 선택한 여인. 드라마 속 모든 인물들의 가장 든든한 의지처. 그렇게 일본에게 팔려갔던 친일파의 딸은 빛나는 외모보다 그 캐릭터가 더 멋진, 말 그대로 여장부가 되었다. 스스로의 상징인 글로리 빈관이 일본군에게 농락당할 때 기꺼이 거길 폭파할 만큼. 

힘은 이렇게 쓰는 것이다, <러블리 호러블리> 오을순(송지효 분)

KBS 2TV 월화드라마 <러블리 호러블리>

호러블 로코를 표방한 이 드라마에서 남녀 주인공이 처음 만난 건 칼을 든 괴한을 만나게 되면서이다. 그런데 이 위기의 상황에서 드라마는 기존의 남녀 성역할을 전복시킨다. 당대 최고의 스타라는 자신의 처지가 드러날까 검은 비닐봉지까지 뒤집어 쓴 남자 주인공은 각자 갈 길을 가자며 읍소한다. 반면, 이미 칼을 들고 여성을 위협하던 괴한을 향해 '거기 서'라고 우렁차게 외치며 날아온 오을순은 여성을 구하고 자신이 칼 앞에 당당하게 다리를 날린다. 심지어 남자 주인공을 향해 찌르는 칼날을 손으로 막는다. 그렇게 드라마는 여주인공을 설명한다. 입봉도 못하고 되는 일이 없는 루저라지만 사실은 그 어떤 상황에서도 물러서지 않는 당당한 여성이다. 

어릴 적부터 그랬다. 유도를 해서 전국체전에서 금메달까지 땄지만, 그 시절 공원에서 불량배들에게 괴롭힘을 당하던 남자 주인공을 구하기 위해 나섰다가 결국 자신의 꿈이던 유도를 접었다. 하지만 좌절하는 대신 가난했던 자신에게 유일한 재미가 되어주었던 글쓰기를 또 다른 희망으로 삼았다. 10살 무렵 엄마는 달아나고 아버지는 돌아가시고, 하고자 했던 유도는 다쳐서 못하게 되고, 이제 작가라는 꿈마저 요원하지만 그녀는 포기하지 않는다. 며칠을 안 감은 머리, 눈 한 쪽이 안 보이게 가리고 다니지만 불의 앞에서는 거침없고, 불쌍한 사람을 그냥 지나치지 않으며 그리고 여전히 자신의 꿈을 포기하지 않는다. 

그 대신 칼을 맞고, 의자 다리에 갇힌 그를 구하러 뛰어가고, 죽을 위기에 놓인 남자 필립을 구하느라 고군분투하던 을순은 그가 어릴 적 아버지가 만들어 준 목걸이를 빌려준 아이임을 안다. 그리고 그 목걸이와 함께 자신의 운도 그가 가져갔음을 안다. 자신의 행운을 도둑질해 갔을지도 모를 남자. 하지만 병상에서 의식을 찾지 못하는 그에게 기꺼이 자신의 목걸이, 혹은 행운을 돌려준다. 아니, 그녀의 손에 다시 전해진 목걸이를 바다 멀리 던져버린다. 운명 따위에 자신의 행운을 맡기고 싶지 않겠다고 한다. 

로맨틱 코미디의 정석이라 할 예쁜 여자 대신, <러블리 호러블리>의 오을순은 든든하고 믿음직해서 남자 주인공이 사랑에 빠지게 된 여자다. 물론 알고 보니 입술도 예쁘고 이마도 예쁘다는 로코의 정석을 외면하지는 않지만, 여전히 날아오는 야구공을 손으로 막아줄 만큼 그녀는 힘이 세다. 하지만 그저 힘이 셀뿐만 아니라 운명으로 인해 상황으로 인해 쫄보가 되는 남자 주인공 앞에서, ‘내가 지켜줄게’ 하며 어설프게 남자연하는 남자 앞에서 '너님은 내가 지킬 거 같다'며 여유롭다. 백마 탄 왕자 대신, 기꺼이 그 백마를 자신이 잡아타고 운명을 잡으러 갈 기세다. 

자신의 운을 아들에게 건네준 키워준 엄마. 그런 운을 빼앗은 남자 필립에게 새삼스레 운명의 손익계산서를 들이밀며 감정적 부채에 흔들리지 않는다. 뿐만 아니라 자신의 입봉작을 도둑질해 스타작가가 된 옛 친구를 품을 만큼 당당하다. 감정의 동요로 인한 갈등 대신, 기꺼이 품고 사랑하기를 택하는 오을순 식 사랑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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