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천 년 동안 한 민족이었다 70년 동안 남남이 되어야 했던 우리가 ‘함께 살아야 한다’는 당연한 일이 성사될 가능성이 높아지고 있다. 15만 명의 평양 시민들이 들어찬 5.1 경기장(능라도경기장, 인민대경기장)에서 문재인 대통령이 밝힌 이 희망찬 연설은 한반도 평화가 현실이 되어간다는 사실을 잘 보여주었다.

평양을 찾은 세 번째 대통령은 이번에는 백두산까지 찾았다. 히말라야 트래킹까지 할 정도로 산을 좋아하는 문재인 대통령은 중국을 통하지 않고 우리 땅을 통해 백두산에 오르고 싶다는 희망을 지난 정상 회담에서도 밝힌 바가 있었다.

북한 측에서 이런 문 대통령을 위해 특별한 일정을 만들었다는 점에서도 의미가 있다. 두 정상이 함께 백두산에 오르는 것은 누구도 상상할 수 없던 일이었다. 상상이 현실을 못 따르는 일들이 올 한 해 많이 벌어지고 있다는 사실은 그래서 신기하기도 하고 가슴이 벅차오르기도 한다.

평양정상회담 사흘째인 20일 오전 문재인 대통령과 김정은 국무위원장이 백두산 정상인 장군봉에 올라 손을 맞잡아 들어올리고 있다. ⓒ 평양사진공동취재단

'평양공동선언문'을 통해 한반도 평화는 보다 구체적인 모습을 드러냈다. 한반도 평화를 위해 두 정상은 당장 남북군사공동위를 가동해 상시적 합의를 하자고 했다. 군사적 대결 구도를 접고 더는 전쟁이 없는 한반도를 만들기 위한 시작이라는 점에서 중요하다. 서해와 동해 80km 수역에서 돌발적인 충돌이 일어나지 않도록 근본적인 대책안이 나오기 시작했다.

비무장지대를 진정 비무장을 할 수 있는 공간으로 만들겠다는 계획도 나왔다. 지금까지 비무장지대는 강력한 무기들이 집결된 공간이었다. 그리고 철책을 두고 맞서 종종 일촉즉발의 상황이 만들어지기도 했다. 그 초소들이 남과 북에서 모두 사라질 계기가 마련되었다.

비무장지대를 진정한 비무장지대로 보존한다는 것은 더는 남과 북이 충돌할 수 있는 가능성이 사라진다는 의미가 된다. 서로 무장한 채 얼굴을 맞대고 있는 상태에서 돌발적인 상황이 만들어지는 것은 당연하다. 오발 사고 혹은 우발적인 상황이 곧 국지전으로 확대될 수도 있는 위험이 존재한다.

최소한 완충지대를 통해 더는 직접 총기를 겨누는 상황을 없애는 것만으로도 한반도 평화는 정착될 수 있다. 그만큼 이번 평양정상회담에서 나온 결과물은 중요하게 다가온다. 이제 더는 총구를 남과 북이 겨누지 말자는 합의가 구체적으로 이행된다면 한반도 평화는 꿈이 아닌 현실이 된다.

금강산 상설 면회소 우선 설치 역시 반갑다. 이산가족들은 점점 사라져간다. 최근 재개된 이산가족 상봉에서도 형제자매 혹은 부모와 자식들의 만남은 급격하게 줄어들었다. 더는 생존해 있지 않은 이산가족들이 늘었다는 의미다. 그런 점에서 가장 우선적으로 실행되어야 하는 것은 면회소를 통해 상시 만남을 가질 수 있고, 서신 교환이나 영상 통화를 통해 이산가족들이 서로 안부를 물을 수 있는 조건이 만들어졌다는 것만으로도 대단한 성과다.

문재인 대통령과 김정은 국무위원장이 19일 백화원 영빈관에서 정상회담을 마친 뒤 평양공동선언서에 서명한 뒤 펼쳐 보이고 있다. ⓒ 평양사진공동취재단

2032년 하계 올림픽 공동 유치는 그 과정에서 남과 북이 친밀해질 수밖에 없다는 점에서 도전 자체가 중요하다. 철도와 도로를 연결할 수 있는 착공식을 연내 갖겠다는 점도 중요하다. 물리적으로 남과 북이 연결될 수 있는 혈맥인 도로와 철도가 연결되면 남과 북은 보다 가까워질 수밖에 없으니 말이다.

3.1운동 100주년이 되는 내년 남과 북이 함께한다. 이 역시 한반도 영구 평화에 대한 의지라는 점에서 중요하다. 그리고 미국이 그렇게 원하던 비핵화와 관련해 김 위원장이 직접 언급했다는 점도 고무적이다. 당장 트럼프 대통령이 2차 북미정상회담 개최 가능성을 언급할 정도라는 점은 이번 평양정상회담의 성과를 잘 보여준다.

평양 시민 15만 명 앞에서 문재인 대통령은 7분 동안 연설을 했다. 이는 엄청난 사건이 아닐 수 없다. 견고한 일당독재 사회인 북한에서 남한의 대통령이 단독으로 연설을 하는 것 자체가 상상도 할 수 없는 일이었다. 김 위원장이 직접 문 대통령을 소개했고, '핵 없는 한반도에서 함께하자'는 문 대통령의 연설은 역사적일 수밖에 없었다.

5천 년 동안 한민족이었던 한반도가 70년 동안 대립하고 살아왔지만 이제는 함께 살아야 한다는 문재인 대통령의 연설은 엄청난 파급력으로 다가올 수밖에 없다. 공개된 장소에서 남한의 대통령이 직접 한반도에 핵이 사라질 것이라고 했다. 그리고 함께 잘 살자는 발언은 결국 북한의 두려움을 없애 주었다는 점에서도 중요하게 다가온다.

문재인 대통령과 김정숙 여사가 김정은 국무위원장과 리설주 여사와 함께 19일 밤 평양 5.1 경기장에서 열린 '빛나는 조국'을 관람한 뒤 환호하는 평양 시민들에게 손을 들어 인사하고 있다. ⓒ 평양사진공동취재단

남한도 그렇지만 공포를 앞세워 권력을 유지해온 세력들이 존재한다. 남과 북이 대치하면 그 권력은 견고해진다. 그런 공포 정치로 이어진 70년의 세월은 단순히 우리의 문제는 아니었다. 북한 역시 공포는 결국 두려움을 바탕으로 한 준전시 상태로 이어지도록 만들었다. 그런 경직을 문 대통령의 연설이 완전히 무너트렸다는 점은 역사적일 수밖에 없다.

남과 북의 두 정상은 동일한 시각을 견지하고 있다는 점에서도 흥미롭다. 문 대통령의 '사람이 먼저다'와 김 위원장의 '인민제일주의'는 맥을 같이 한다. 특정 세력이 아닌 절대 다수인 국민들이 우선인 정책을 펼치겠다는 것은 패러다임 자체가 바뀌는 문제다.

백두산에 함께 간 남과 북 정상. 상상은 현실을 따라가지 못한다는 말이 사실로 다가오는 이 상황을 어떻게 설명할 수 있을까? 바른미래당 하태경 의원이 5.1 경기장에서 문 대통령이 한 연설에 전율이 몰려왔다고 소감을 밝혔다. 독재국가에서 정상이 대중을 상대로 그런 연설을 하는 것도 처음이라며 야당과 보수 집단도 이 흐름에 적극 동참해야 한다고 했다.

보수 혹은 극우 집단은 여전히 냉면에 이어 만두 이야기만 할 뿐이다. 하지만 절대 다수의 국민들은 냉면과 만두를 먹고 싶었으면 함께 가자고 하지 그랬냐며 오히려 그들을 조롱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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