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0회는 아쉽게도 전날에 비해 시청률이 다소 떨어졌을 것이다. 동이의 이해 못할 처신이 가장 큰 이유가 되었을 것이다. 그러나 동이의 행동을 보다 잘 이해하기 위해서는 우선 역사를 버려야 한다. 역사의 발자취에 동이의 행동을 대입하면 하나도 맞지 않아 그 혼돈으로 인해 이해할 수도 없거니와 재미도 도통 느낄 수 없기 때문이다. 50회의 주요 키워드를 추려보면 장희빈에게 무고의 증험 넘기기, 기회주의자 장무열의 배신, 장희재의 연잉군 모함 등이다.

그중에서도 일부 시청자들의 울화통을 치밀게 한 결정적 반전은 동이가 고심 끝에 무고의 증험들을 장희빈에게 넘기며 화해를 청한 것이 될 것이다. 특히 남성 시청자들의 전투적 성향에 맞지 않은 이 장면은 한편으로 시청자에 대한 배려 없는 작가의 독주라고 볼 수도 있다. 그러나 드라마가 단순히 역사를 뒤쫓기보다는 다른 상상이나 가정을 통해서 희망적 요소를 찾는 것이 수도 없이 반복된 장희빈 스토리에 대한 새로운 접근이 될 수도 있다.

사실 동이의 화해 제스추어는 상당히 위험한 시도였다. 동이가 많은 부분에서 역사를 비켜가고 있지만 적어도 장희빈이 사약을 받는 사실까지는 바꾸지 않을 것이기 때문에 50회에서 보인 동이의 처신에 대한 오해와 불만은 곧 해소될 것이라 생각된다. 그 근거는 장무열의 변심과 장희재의 무리수가 동시에 진행되고 있다는 점이다. 다만 무고의 증험이 없는 상황에서 어떻게 장희빈에게 사약을 내리게 될 지는 상당히 의문스럽지만 결과를 지켜보는 수밖에 없을 것이다.

아들을 여윈 어미의 마음이 동이를 움직였다

결국 제작진이 동이의 납득하기 어려운 반전을 통해서 보여주고 싶은 것은 도리와 상식과는 정반대로 치닫는 정치에서 동이 모자를 차별화시키고 싶었던 것은 아닐까 싶다. 동이가 손에 쥔 무고의 증험을 숙종에게 알려 장희빈을 죽음으로 몰고 가게 된다면 그 시점에서 동이 역시 장희빈과 조금도 다를 바 없는 권력암투의 더러움에 발을 딛게 되는 것이기 때문이다. 그러기 위해서 세자와 연잉군은 친형제처럼 가깝게 그렸을 것이다. 더 먼 훗날의 일이지만 영조의 경종 독살설을 부정하는 복선도 읽을 수 있다.

왕권이라는 것은 사실 형제끼리도 칼부림을 나게 하고, 심지어 아들까지도 죽게 하는 비정한 것임에도 불구하고 동이는 호형호제하는 세자와 연잉군의 관계를 깨고 싶지 않았다. 동이는 이미 첫 번째 왕자 영수를 잃은 아픔을 알기에 문득 연잉군이 왕위에 오를 경우 세자의 목숨이 위태로울 수밖에 없고, 그때 장희빈이 겪어야 할 고통이 두려웠을 것이다. 자신이 겪어봤기에 더욱 실감할 수 있었을 것이다.

그러나 그런 동이의 깊은 마음을 장희빈이 알아주지 않는다면 자신과 연잉군의 목숨을 고스란히 내어놓는 대단히 위험한 도박이었다. 작가와 감독이 그런 동이의 화해 제안에 흔들리는 장희빈의 모습을 그렸지만 사실은 그다지 현실감이 넉넉지는 않았다. 부분적으로 동이가 고통을 받기는 했지만 전체적으로 장희빈은 동이에게 근본적인 피해의식을 갖고 살아왔는데 한순간에 그것으로부터 자유로워진다는 것은 아무리 결정적 증험을 내놓았다고 하더라도 다소 억지스러운 면이 없지 않다.

그러나 그런 장희빈의 흔들림도 잠시 결국 장무열의 변심과 동이의 빈 책봉이라는 두 가지 일로 인해 다시 적대적 관계로 돌아갈 수밖에 없다. 거의 모든 드라마, 영화의 원칙이라고 할 수 있는 오해로 인해 장희빈은 자멸의 독배를 들게 되는 것이다. 게다가 동이로 인해 숙종의 사랑과 신뢰를 잃었다고 생각하는 지독한 피해의식으로 인해 세자의 왕위 그리고 주인을 잃은 중궁전에 대한 욕심은 더욱 강렬해질 수밖에 없는 것이 장희빈의 입장이다.

딱히 장희빈이 아니라 누구라도 그녀의 입장이라면 그렇게 분노와 욕망에 사로잡힐 수밖에 없을 것이다. 믿어왔던 장무열의 변심 그리고 동이의 신분상승은 숙종과의 커뮤니케이션이 단절된 장희빈으로서는 파장이 큰 충격인 것이다. 이런 모든 상황들이 장희빈에게 동이의 진심을 알 수 있는 이성적 판단을 흔들어 놓게 되고 결국 파국을 향해 돌이킬 수 없는 행보를 하게 될 것이다.

더군다나 무고의 증험은 없어졌어도 세자를 흔들 수 있는 내의녀와 장희재 단검에 대한 증거가 동이 측에 있기 때문에 장무열의 변심은 장희빈을 나락으로 떨어뜨리게 하는 근본원인이 되고 있다. 사실 무당을 통한 중전 방자부터 작가는 장희빈을 무고에서 한발 떨어지게 그렸다. 더욱이 그 증거까지 장희빈에게 넘어감에 따라 무고의 옥은 없어진 것이다. 대신 다른 여건의 변화를 통해서 장희빈에게 변명의 여지를 준 것이다. 문제는 그런 것이 얼마나 드라마적으로 합당하고 시청자의 공감을 끌어낼 설득력을 갖추느냐에 달렸을 것이다.

매스 미디어랑 같이 보고 달리 말하기. 매일 물 한 바가지씩 마당에 붓는 마음으로 티비와 씨름하고 있다. ‘탁발의 티비 읽기’ http://artofdie.tistory.com

저작권자 © 미디어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