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방이 확실시되던 동이가 천신만고 끝에 시청자와의 약속을 지켰다. 그것은 한예조와 동이 외주제작사 간의 극적인 합의에 의해 가능했다. 그렇다고 해도 이미 손을 놓고 있던 촬영현장이 다시 정상으로 돌아가기란 말처럼 쉬운 일은 아닐 것이다. 결국 본방 10시간 전에 가까스로 촬영을 재개한 제작팀은 촬영과 편집을 실시간으로 처리하기 위해 위성중계차까지 동원하는 필사적인 모습을 보였다.

마침 49화분이 인현왕후가 마지막 숨을 거두는 장면을 담고 있어서 그 어느 때보다 시청자 관심이 집중되는 사건이 기다리고 있어 6일 동이 제작진의 실시간 촬영, 편집 과정은 그야말로 피를 말리는 순간이었을 것을 쉽게 짐작할 수 있다. 그러나 평소 방송되던 시간이 돼도 동이는 시작되지 못했다. 결국 10시 12분을 넘겨서야 가까스로 49화가 전파를 탈 수 있었다.

자이언트의 추격도 한 몫 했을 동이 사수 특수작전은 성공을 거두었지만 한편으로는 인현의 죽음을 차마 받아들이기 참담해서 차라리 결방이 낫다는 말도 없지 않았다. 장희빈에게 이리저리 치이다가 폐위까지 겪으면서 얻은 심장병으로 인해 고난의 생을 마감하는 인현의 마지막 순간은 연기와 실제 감정이 겹쳐보였다. 병과 한으로 힘겨운 마지막 숨을 겨우 부여잡고 있는 인현과 연기자로서 마지막 장면을 대하는 박하선의 실제 감정이 복합되어 보는 마음을 더욱 짠하게 했다.

혼수상태의 인현왕후가 깨어난 것은 회광반조(해가 지기 직전에 잠깐 하늘이 밝아진다는 뜻으로, 죽기 직전에 잠깐 기운을 돌이킴을 비유해 이르는 말)였다. 중전의 쾌유를 빌며 극진히 간호하던 동이도, 늘 빚진 마음으로 미안한 숙종도 정신을 차린 인현왕후의 모습에 반색했으나 그나마 지아비와 함께 한 임종이 위안이 됐을까 인현은 주체 못할 눈물로 베개를 적시며 살아서의 마지막 모습을 남겼다.

인현왕후가 동이에게 당부한 유언은 연잉군과 함께 꼭 살아남으라는 것이었다. 죽어갈 때는 악인도 선해진다는 말이 있지만 마지막 순간까지도 자기 자신이 아닌 동이의 안위를 걱정하는 모습이 더욱 안쓰러웠다. 그것만으로도 부족해 인현은 지아비와의 마지막 대화조차도 동이와 연잉군을 꼭 지켜달라는 말로 대신했다. 마지막의 마지막까지도 이타적인 인현의 손을 동이는 차마 놓고 싶지 않았을 것이다.

그러나 숙종이 중전을 찾자 동이는 황망하게 어의를 불러야겠다는 어색한 혼잣말을 하며 자리를 피한다. 동이도 이미 어의 따위는 필요 없음을 알았다. 다만 마지막 임종의 순간만은 숙종과 인현 둘만 있게 해주고자 하는 배려였다. 같은 여자로서, 그것도 궁궐에서 쫓겨나 오욕의 사가 생활을 같이 겪은 권력다툼의 피해자로서 동이 역시 인현의 임종을 지키고 싶은 마음이 컸겠지만 그러나 역시 같은 여자로서 마지막 순간 인현이 여자로서 숙종과 함께 할 수 있게 한 마음이 엿보였다.

그렇게 숙종과 단 둘이 남게 된 인현은 마지막 유언으로 동이를 중전으로 앉히라는 부탁을 하는 것처럼 예고됐다. 실제 역사는 인현의 죽음 뒤 숙종은 두 번째 계비 다시 말해 세 번째 중전인 인원왕후를 맞이하게 된다. 그렇기 때문에 동이가 중전이 되는 것은 기대하기 어렵다. 아직 인원왕후에 대한 캐스팅 소식이 알려지고 있지 않지만 결국 장희빈의 중전 방자(남이 못되거나 재앙을 받도록 귀신에게 빌어 저주하거나 그런 방술을 쓰는 일)이 밝혀져 무고의 옥이 일어나게 되면 장희빈 역시 죽음을 맞이하게 되기 때문에라도 중전의 자리는 동이가 아닌 실제 역사를 따라갈 것으로 보인다.

어쨌든 인현은 생의 마지막까지 숭고하고 그래서 아름다운 모습을 보였다. 아무리 연기라도 죽음의 순간을 맞는 사람의 모습이 혼례를 위해 꽃단장한 모습만큼이나 순결하고 아름다웠다. 그러나 중전의 죽음을 알리는 숙종의 외마디 부름 뒤에 이어진 트로트 엔딩곡은 그런 인현의 죽음에 애통해 할 분위기를 순식간에 망쳐버렸다. 그 노래 자체로도 동이 OST로 적절하다는 느낌은 주지 못하는데 그 상황에서는 절대로 사용될 수도, 사용해서도 안 될 최악의 실수였다. 초혼도 부족할 판에 댄스풍 노래라니.

인현의 죽음은 곧 국상을 알리는 것이다. 거기에 쿵짝 거리는 반주에 간드러지는 장윤정의 목소리는 국상을 모독하는 것이나 다름없었다. 위성중계차까지 동원해 핏발 서는 전쟁을 치르듯 겨우 내보낸 49회의 긴장과 애도를 일순간에 망가뜨린 어이없는 최대 악수였다. 기껏 동이와 숙종과의 애절한 순간을 잘 만들어 놓고는 난데없는 노래 하나로 모든 것을 물거품으로 만들고 말았다. 비단 인현의 죽음만이 아니라 결방을 막기 위한 연기자, 제작진 모두의 노력도 함께 망가지고 말았다.

이것이 실수인지 아니면 제작진이 작정하고 넣은 것인지는 모르겠지만 동이는 적어도 음악에 관해서는 완벽한 실패를 보이고 있어 아쉽기만 하다. 동이가 애초에 조선의 음악기관인 장악원을 조명하는 데에도 실패한 것도 있어 동이와 음악과는 풀지 못한 악연의 관계가 있는가 보다.

매스 미디어랑 같이 보고 달리 말하기. 매일 물 한 바가지씩 마당에 붓는 마음으로 티비와 씨름하고 있다. ‘탁발의 티비 읽기’ http://artofdie.tistor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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