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박2일은 지리산 둘레길을 걸어가고 있습니다. 처음을 같이 시작하고 오랜 시간 동안 그 흐름을 이끌어갔지만 후임자에게 자리를 물려주고 영국으로 유학을 떠난 해피선데이 이명한 CP 대신 새로운 제작 책임자를 맞이한 첫 방송은 그 변화를 방송으로 보여주고 있죠. 단순한 산책도, 무의미한 고생길도, 예능에서 다큐를 하는 지루한 시도도 아닙니다. 그들이 지리산을 둘러보며 보여주고 있는 것들은 그동안 1박2일을 위기라고 말하며 받았던 많은 불만과 지적 사항들에 대해 곱씹고 곱씹었던 제작진들의 묵직한 대답인 셈이에요.

당연히 출연자들에 대한, 가장 가슴 아픈 부분을 가장 중심적으로 이야기합니다. 병역비리 관련 수사를 받고 있는 MC몽과 여전히 적응을 하지 못하고 겉돌고 있는 김종민에 대한 제작진 나름의 결정이죠. 검찰과 MC몽의 주장이 서로 대립하는 상황에서 수사 결과가 아직 나오지 않은 상태이고, 그 결과와는 상관없이 이미 비호감의 덫에 빠져 버린 MC몽. 자신의 길이 이제야 보인다며 다짐을 하고 마음을 다잡았지만 여전히 소심하고 부족한 모습을 보여준 김종민. 이 두 사람을 모두 껴안고 같이 가겠다는 다소 위험하고 섣부른 결정이죠. 누구 하나 냉정하게 내치기에는 1박2일의 균형이 일거에 무너져 버릴 수밖에 없기에 어쩔 수 없는 선택이긴 했지만 독이 될지, 득이 될지 이 결정의 결과는 시간이 해결해줄, 기다림이 필요한 문제입니다. 제작진의 신뢰에 보답하기 위해서라도 이 두 사람의 분발이 절실하다는 것을 부각시켜준 방송이었어요.

하지만 이런 멤버들을 향한 불만을 그들을 감싸 안는 신뢰와 믿음으로 보여준 제작진들의 대답보다, 제게 훨씬 더 흥미롭고 긍정적인 부분들은 프로그램의 방향 자체에 대한 재검토와 숨고르기였습니다. 승부와 대결, 게임과 협상으로 한동안 1박2일을 지배했던 복불복이 지리산 둘레길 여행에서 완전히 사라져 버렸기 때문이에요. 이들의 걸음에는 어떠한 경쟁도 다툼도 묻어나질 않습니다. 길을 떠나기 전에 촬영 장비를 고르기 위한 분배와 용돈을 얻기 위한 자그마한 게임이 있긴 했지만 그것은 다소 지루할 수 있는 다큐식 산행에 긴장을 불어 넣고 각 팀에 차별점을 주면서, 동시에 지리산 자연의 정경을 좀 더 풍성하게 보여주기 위한 장치였어요. 같은 게임이었지만 이전의 복불복과는 전혀 다른 접근이었죠.

이것은 굉장히 신선한, 그리고 매우 반가운 시도였습니다. 한동안 1박2일은 여행을 소재로 하는 리얼 버라이어티이라는 의도와는 상관없이 그저 어디를 가서 무엇을 하든 그 목적이 복불복이나 게임을 하기 위한 부수적인 배경에 불과했습니다. 여행을 떠나서 그 중간 중간 용돈이나 편의사항을 제공받기 위해 복불복을 하고, 숙소에 도착하기 위해 게임을 하고, 저녁 식사와 야외 취침을 위해 또 복불복을 하고, 아침에 일어나서도 또또또 기상 미션을 하는 것이 1박2일의 모든 것이 되어 버렸어요.

확실히 강력하고 재미있는 소재였습니다. 예측 불가능한 결과, 서로 간에 속고 속이는 심리전, 그 사이사이를 끼어드는 멤버들의 위트는 1박2일이 줄 수 있는 폭소와 즐거움의 대부분이었으니까요. 그 안에서 각각의 개성 있는 캐릭터가 형성되고, 멤버들 간의 관계가 짜여지고, 방송 분량을 채울 수 있는 인상적인 장면들이 만들어졌습니다. 단순하면서도 쉽게 공감할 수 있는, 그리고 그 결과에 따른 가혹한 차이는 1박2일이 폭넓은 시청자들에게 사랑받을 수 있는 가장 강력한 무기였으니까요.

하지만 복불복이 이어지고, 게임과 협상이 많아질수록 1박2일은 전국 어디를 가도 내용이 똑같은 재방송 같은 방송이 되어가고 있었습니다. 게임에 중독된, 매번 똑같이 반복되는 한정된 포맷에 익숙해지면서 여행 그 자체의 묘미, 아름다운 한반도의 풍광과 그 지방의 독특한 재미를 전달하고, 그 곳에서 만난 사람들과 부대끼며 일반 시청자들과 다를 바 없는 사람냄새를 폴폴 풍기던 1박2일이 가진 또 다른 장점들이 점점 희미해져 버렸기 때문입니다. 오히려 과한 분량 욕심에 게임은 잔혹해지고 심지어 짜고치는 조작을 의심받는 상황이 만들어 졌었죠. 그들에게 필요했던 초심은 버라이어티 정신을 외치며 서로 이기기 위해 점점 더 가혹하고 힘겨운 고생을 하거나, 혹은 기발하고 재치 넘치는 게임과 복불복을 하는 것이 아니라 그저 일요일 저녁, 또 다른 한 주를 시작하기 위해 쉬고 있는 시청자들과 TV를 통해 함께 여행을 떠나는 것이었어요.

그래서 이번 복불복 없는 1박2일의 지리산 둘레길 산책은 무척이나 반갑고 기분 좋은 여행이었습니다. 물론 평소보다 웃음이 부족했기에 조금은 지루하기도 했고, 각자가 뽑아낸 분량의 차이가 컸기에 멤버별로 활약의 차이나 방송의 질이 불균등하기도 했지만 (특히 재신임하기는 했지만 확연히 줄어든 MC몽의 분량은 제작진의 조심스럽고 곤란한 상황이 그대로 전해지더군요.) 게임에 졌기 때문에 입수하는 것이 아니라 더위를 잊기 위해 계곡에 몸을 담구고, 출연진과 제작진들간의 지루한 협상이 이어지는 것이 아니라 같은 여행객과 함께 이야기를 나누며 여행길을 공유하는 모습, 밀고 당기는 승부 끝에 겨우 얻은 저녁 식사가 아니라 시골의 민박집에서 그집 인심이 담긴 푸짐한 저녁상을 먹는 그런 모습. 전 정말 오랜만에 이들과 같이 여행을 떠난 기분이었어요. 아름다운 풍광에 취하고, 그곳 사람들의 인심이 그리워지고, 그래서 다음엔 한번 그들이 갔던 그 곳으로 떠나고 싶은 마음을 전해주는 것. 이것이야말로 1박2일이 잊어버리고 있던 그들만의 장점입니다. 이런 상쾌한 여행에 굳이 복불복은 필요 없었어요.

'사람들의 마음, 시간과 공간을 공부하는 인문학도. 그런 사람이 운영하는 민심이 제일 직접적이고 빠르게 전달되는 장소인 TV속 세상을 말하는 공간, 그리고 그 안에서 또 다른 사람들의 마음을 확인하고 소통하는 통로' - '들까마귀의 통로' raven13.tistor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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