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디어스=도우리 객원기자}

“총학이 학교 일과 무관한 정치적인 발언을 함부로 해선 안 된다”

서강대학교 총학생회에 대한 학내의 주된 여론이다. 지난 17일 서강대학교 총학은 안희정 전 충남지사의 1심 무죄 판결을 비판하는 입장문을 냈다. 그러자 서강대 학생 커뮤니티를 중심으로 ‘운동권 나가라’, ‘학생회가 아니라 여성학회에서나 낼 법한 내용’ 등의 비난 여론이 일었다. 이 비난 여론에는 올해 초 총학이 페미니스트 작가 은하선 씨 강연을 기획한 일도 포함돼 있었다. 더불어 학생회비 미납 운동까지 일자 총학 측에서 압박을 느끼고 사퇴한 것으로 알려졌다.

정치적 입장 표명으로 학내 자치기구가 홍역을 치른 것은 서강대뿐만이 아니다. 최근 대학가 전반의 분위기다. 연세대에서도 두 달여 전 은하선 작가 초청에 반대하며 강연을 주최한 총여학생회 재•개편안을 가결시켰다. 직접 행동에 나서지 않더라도 ‘00대학교 대나무숲’이나 대학별 익명 커뮤니티 ‘에브리타임’등에서는 총학 및 단과대별 학생회가 정치적 중립을 지켜야 한다는 주장을 어렵지 않게 찾아볼 수 있다.

서강대학교 [연합뉴스TV 캡처]

그런데 불과 2년 전 박근혜 전 대통령 탄핵 정국 때의 대학가는 이와 정 반대의 분위기였다. ‘의견 수렴에 너무 매이기보다 시급히 시국선언문을 발표하라’는 학내 여론이 거셌다. ‘보수 텃밭’ TK 지역의 경북대학교 총학생회장은 박근혜 전 대통령 하야를 요구하며 단식까지 나섰고, 지지를 받았다. 오히려 인제대학교 총학생회는 중립을 지킨다며 시국선언을 하지 않았다가 비판 여론을 부딪힌 뒤에야 선언문을 발표했다.

유독 페미니즘 이슈에 대해 ‘정치적 중립’이 요구되는 모양새다. 탄핵 정국 때의 시국선언문이나 촛불 집회 참여에 비해 ‘무죄 판결’ 비판 입장문, 페미니스트 연사의 초청은 ‘훨씬 덜 정치적’인 편이었다. 그런데도 어떤 공론화 과정 없이 총학생회 퇴진이라는 극단적 결과로 곧바로 이어진 것은 단순히 ‘정치적 입장 표명’이 이유라고 보기 어렵다. ‘안희정 판결’을 총학이 아닌 여성학회의 문제로 한정 지으라는 의견, 그런 입장문은 총학생회장 개인 sns에만 올리라는 의견도 마찬가지다.

특히 서강대 총학의 입장문은 충분한 ‘대표성’이 확보된 상황이었다. 이번 총학이 선본 때 내세운 주된 공약 중 하나가 ‘성차별 철폐’였기 때문이다. 그리고 이 공약은 기존의 학칙인 ‘대학 학생 자치활동 내 성 평등을 위한 자치 규약‘을 발전시키려는 기획이었다. 또 최근 단과대별로 ‘커뮤니케이션 학부 k 교수 성폭력 가해 처벌’에 대한 릴레이 입장문이 이어지고 있었다. 이 역시 안희정 사건처럼 ‘권력형 성폭력’이었다. 무엇보다 ‘안희정 판결’은 미투 운동에 대한 최초의 사법적 판결이자 권력형 성폭력에 대한 사회적 판결 성격이 컸던 만큼 중차대한 현안이었다.

그런데도 이번 총학에 대한 비판 여론은 ‘총학이 충분한 의견 수렴을 거치지 않았다’며 총학의 대표성을 ‘절차적 정당성’ 검증 문제로 만들어 버렸다. ‘무오류에 가까운 절차적 정당성 요구’는 기득권의 무기다. 기득권 자신은 정당성을 확보하고, 약자를 비윤리성으로 공격할 수 있는 명분이 되기 때문이다. 실제로 서강대 총학에 대해 그간의 업무 실책, 총학 임원의 자질 문제가 마타도어로 제기되며 ‘원래부터 탄핵되었어야 했다’는 여론이 형성됐다. 이러한 비판 여론은 연세대의 총여학생회 재•개편때도 비슷한 양상이었다.

결국 학내 ‘정치적 중립’에 대한 과도한 요구는 페미니즘에 대한 백래시의 일종이며, ‘절차적 정당성’은 그것을 정당화하기 위한 명분에 불과하다. 오히려 페미니즘, 그리고 성 소수자 및 다문화 등 사회적 약자 관련 이슈는 적극적으로 ‘편파성’을 띠어야 할 문제다. ‘흑인 차별을 하지 말자’는 주장에 ‘정치적 중립’을 운운하거나 ‘인종 차별 위원회에서나 할 이야기’라고 하지 않듯, 기본권의 문제이기 때문이다. 그런데도 계속 ‘정치성’, ‘중립성’을 요구하는 것은 사실상 ‘차별을 방관하겠다’라는 입장에 서라는, 적극적인 정치적 요구다.

‘함부로 정치적 발언하지 말라’는 ‘정치적 발언’은 부메랑이 되어 돌아올 것이다. 총학의 역할을 단순히 ‘학교 본부와 학생들의 요구 사항을 취합해 주고받는 대리인’으로 한정 짓는 일이기 때문이다. 서강대에서도 이번 사건이 이대로 일단락되는 한, 앞으로 서강대 총학의 발언의 무게는 약화될 수밖에 없다. 또 인권은 캠퍼스의 안과 밖, 반대자와 찬성자를 가리지 않는다. 사회적 약자에 대한 반대는 결국 모두의 권리를 협소화 할 것이다. ‘정치적 발언하지 말라’는 발언을 함부로 해서는 안 되는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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