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와대가 아무리 아니라고 해도 장하성 대 김동연 구도는 계속 재생산될 전망이다. 국회가 결산심사에 돌입했고 야당이 ‘고용참사’ 등의 기회를 최대한 정치적으로 살려 보려는 노력을 하고 있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당사자들이 이런 구도를 계속 키우고 있다는 것도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인 것 같다.

김동연 경제부총리는 21일 국회 기획재정위 전체회의에 출석한 자리에서 장하성 청와대 정책실장과의 견해차에 대한 입장을 밝혔다. 이런 저런 말을 했지만 큰 틀에서 요약해보면 총론에서는 큰 차이 없으나 각론에선 인식의 차이가 있는 게 사실이라는 거다. 김동연 부총리는 장하성 실장을 “청와대 안의 스태프고 (정책) 결과에 대한 책임은 전적으로 제가 져야 된다고 생각하고 있다”고 말하기도 했다.

원론적으로만 말하면 김동연 부총리의 발언은 문제라고 하기 어렵다. 정부의 모든 당국자가 반드시 똑같은 생각을 할 필요는 없다. 논쟁을 통해 이견을 해소하는 것도 정책이 조정돼가는 과정이다. 또 굳이 정책의 콘트롤타워를 꼽으라면 청와대 실장보다는 부총리가 격에 맞다. 굳이 그렇게까지 따질 일은 아니지만 의전상으로 봐도 그렇다. 청와대 정책실장은 장관급이다.

다만 부총리라는 직책의 무게감이라는 점에서 정치적 효과를 고려하지 않을 수 없다. 20일 문재인 대통령은 ‘완벽한 팀워크’를 언급하면서 직을 건다는 각오로 문제를 해결하라고 지시했다. ‘고용참사’라는 게 단기간에 해결될 문제가 아닌데 굳이 “직을 걸라”는 주문을 한 것은 잡음이 계속될 경우 경제팀의 인사까지 고려하겠다는 신호로 보인다. 21일 이낙연 국무총리도 “위치와 역할에 따라 견해가 다를 수 있지만 일단 결론이 나면 그에 따라야 한다. 부적합한 언행이 더는 노출되지 않기를 바란다”고 했다. 대통령과 국무총리의 발언은 명백한 ‘경고성’이다.

그런데 김동연 부총리는 오히려 불에 기름을 붓는 태도이다. 김동연 부총리는 정부 정책의 수정 가능성을 시사하면서 근로시간 단축 문제를 신축적으로 조정할 수 있다는 취지의 언급을 했다. 언론은 탄력적 근로시간제의 단위 기간 조정이나 특별연장근로대상 확대 등의 논의를 전망하고 있다.

이 두 가지 사안은 결과적으로 주52시간 근로의 예외를 늘리는 것이다. 그런데 주52시간 근로는 현재 특례업종을 제외하고 300인 이상 사업장을 대상으로 시행되며 300인 미만 50인 이상 사업장에 대해선 2020년 1월부터, 50인 미만 5인 이상 사업장은 2021년 7월부터 적용되도록 돼있다. 올해의 경우 그나마도 단속 및 처벌이 6개월 유예된 상태다. 이런 상황에서 다시 축소를 논의하는 것은 주52시간 근로제가 사실상 유명무실해질 가능성을 예감하게 한다.

마치 소득주도성장으로부터의 후퇴를 모색하고 있다는 의심에 “그렇다”고 대답하는 듯한 태도다. 김동연 부총리는 직에 연연하지 않는다며 “책임을 회피하지 않겠다는 자세로 임하고 있다”고도 말했다. 자를테면 자르라는 마치 ‘소신파’ 같은 발언이다.

김동연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이 21일 국회에서 열린 기획재정위원회 전체회의에서 위원들의 질의에 답하고 있다. (연합뉴스)

“직을 걸라”고까지 한 대통령이 계속해서 잡음을 내는 김동연 부총리를 과감하게 정리(?)할 수 있을까? 누가 봐도 부담스러운 일이다. 정부의 정책에 전면적으로 반대한다는 것도 아니고 단지 각론에서 소신을 내세운다는 이유만으로 부총리를 경질하는 것은 어렵다. 그랬다가는 일방적인 불통 정권이라는 이미지만 강화될 뿐이다. 보수세력은 노골적으로 두 사람 간 갈등을 확대재생산 하면서 김동연 부총리 편을 들고 있다. 이런 상황에 김동연 부총리를 날리면 파장이 더 클 수밖에 없다.

마찬가지 이유로 장하성 정책실장 경질도 쉽지 않다. 참여연대 출신이라는 이유로 비슷한 인사로 분류되는 박원석 전 정의당 의원이 페이스북에 올려 화제가 된 글을 떠올려 보자. 박원석 전 의원은 청와대 관계자의 하소연이라며 관료들의 조직적 저항이 심각한 수준이라는 요지의 주장을 했다. 언론은 이 관계자를 장하성 정책실장으로 추측하였는데, 청와대는 아니라고 하지만 박원석 전 의원은 굳이 그런 시각을 부정하지 않는다. 한겨레의 ‘단독보도’로 시작된 ‘구걸’ 논란도 비슷하다. “구걸”이 누구 입에서 나왔는지 확인된 바는 없지만 많은 사람들이 아마도 장하성 정책실장이려니 한다.

이런 구도로 보면 장하성 정책실장은 대통령의 공약인 소득주도성장을 관료로부터 지키는 마지막 보루처럼 보인다. 그게 사실이든 아니든 이런 상황에 대통령이 장하성 정책실장을 경질하면 언론은 소득주도성장으로부터의 후퇴가 가시화됐다고들 할 것이다. 보수언론은 이에 만족하지 않고 후퇴가 아닌 척 하지 말라며 실패를 인정하라고 나올 게 분명하다.

이런 상황에서 ‘잡음’을 진정시키는 가장 효과적인 방법은 두 사람을 모두 집에 보내는 것이다. 그런데 이것도 정기국회와 국정감사를 코앞에 두고 있는 상황에서 쉽게 할 수 있는 일은 아니다. 그렇잖아도 자유한국당은 정기국회에서 경제라인 청문회를 열어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이고 있다. 하지만 이 국면을 지나면 기다리는 것은 예산 정국이다.

전면 개각을 논할 타이밍이지만 청와대가 던져 놓은 카드인 ‘협치’에 개각 문제가 연동돼버린 상황도 고려해야 한다. 야당들은 마음에 들지 않는 장관들을 거명하며 경질을 요구하고 있다. 교체 대상으로 언급된 장관들은 대개 어떤 의미에서든지 ‘소신파’이다. 교체하면 교체하는 대로, 유임시키면 유임시키는 대로 논란이 생긴다.

지금 청와대가 처한 딜레마는 전면에 나서지 않을 수 없는 상황을 스스로 만들어왔으면서도 동시에 고립돼가고 있다는 것이다. 애초에 대기업은 협조적이지 않았고 관료들은 복지부동을 유지하며 여소야대의 구조는 변하지 않는다. 유일하게 기댈 곳은 국민여론과 지지율이었는데 경제 문제가 쟁점이 되면서 이마저도 흔들리고 있다.

장하성 실장과 김동연 부총리 간의 ‘엇박자’ 논란이 커지자 청와대 고위관계자는 21일 기자들을 만나 “(두 사람 간의 생각 차이를) 정부가 충분히 수용할 수 있다고 보고 맡기는 것”이라고 했다. 이대로 버티자는 쪽과 속도 조절을 하자는 쪽이 있지만 모두 수용할 수 있다고 말하는 것은 결국 속도 조절이 가능하다는 얘기가 될 뿐이다.

정권이 고집쟁이가 될 필요는 없겠지만 지금과 같은 정치적 구조가 유지되는 상황에서 관료를 장악하지 못하고 이런 식으로 끌려가는 것처럼 돼버리면 끝내 출구를 찾지 못할 수 있다. 문재인 대통령이 윤종원 경제수석을 임명할 때 “장악력이 강하시다고요”라고 말한 것에 다 이유가 있다. 김동연 부총리도 ‘그립’이라면 뒤지지 않는 캐릭터라고들 한다. 그런데 소득주도성장에 있어서는 이 두 사람이 한 편에 서 있다.

이러쿵 저러쿵 말하지만 지금은 겨우 정권 2년차를 지났을 뿐이다. 이 지면에서 수차례 지적했듯 정권이 경제 정책에서 오락가락하며 수시로 교체 인사를 하는 것은 망하는 지름길이다. 그러나 제대로 시작도 하지 않은 노선을 어쨌든 끝까지 유지한다는 의지를 갖고 있다면 지금이야말로 충격적 대안이 필요한 때가 아닌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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