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 3대 스포츠 대회 가운데 하나인 제13회 세계육상선수권대회가 꼭 1년 뒤인 내년 8월 27일 대구 스타디움에서 열립니다. 9월 4일까지 9일간 세계 육상 스타들이 한 자리에 모여 세계적인 기량을 과시할 것으로 예상되는 가운데 성공적인 개최를 위한 준비가 착착 잘 이뤄지고 있어 또 한 번 대한민국 땅에서 스포츠로 감동받는 순간을 맞이할 수 있을 것으로 기대되고 있습니다.

하지만 이런 큰 대회에서 한국 육상이 좌절하는 모습을 또 한 번 보여준다면 경기장을 찾은 많은 팬들을 실망시킬 뿐 아니라 자칫 흥행 문제로도 연결되는 상황을 맞이할 수도 있습니다. 흥행과는 상관없이 1980년대 중반 이후 줄곧 실망스러운 경기력으로 패배 의식에 사로잡혀있던 한국 육상은 국내에서 열린 큰 대회에서마저 실패를 맛볼 경우 최악의 순간을 맞이할 가능성도 있습니다. 이 때문에 지난 1986년 서울 아시안게임 때처럼 큰 전환점이자 도약의 계기로 삼고 중, 장기적인 프로젝트를 가동하면서 내년 세계선수권을 착실히 준비해나가고 있습니다.

▲ 2011 대구세계육상대회를 1년 앞둔 27일 대회조직위 관계자들이 대구 노보텔에서 입장권판매 론칭 관련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왼쪽부터 이상규 인터파크INT 총괄대표이사, 박정기 국제육상경기연맹 집행이사, 김범일 대구시장, 조해녕 공동조직위원장, 오동진 대한육상경기연맹 회장 ⓒ연합뉴스
현실적인 목표, 오히려 약 될 수 있다

당초 한국 육상의 목표는 메달 한 개라도 건지는 것이었지만 최근에는 다소 현실적으로 바뀌었습니다. 바로 10개 종목에 걸쳐 결선에 진출하는 것입니다. 여기에는 그동안 유망한 종목으로 평가받았던 마라톤, 경보를 비롯해 멀리뛰기, 세단뛰기, 장대높이뛰기 등 필드 도약 종목, 창던지기 등이 포함돼 있고 트랙 경기는 구체적으로 밝혀지지는 않았지만 2-3회전 진출을 목표로 할 것으로 예상됩니다. 하루 아침에 기록 향상이 있을 수 없는 육상 종목의 특성상 그동안 국내, 국제 대회를 통해 어느 정도 가능성 있는 성적을 냈던 종목들에 더욱 집중적인 지원을 하는 '선택과 집중'이 적용된 셈입니다.

이렇게 목표에 변화가 생긴 데에는 무모한 도전보다 적당한 도전을 통해 단계를 밟아나가는 자세로 세계 무대에 도전장을 던진다는 의지로 해석해볼 수 있겠습니다. 적당한 목표를 통해 선수들에 진정한 동기 부여를 주고, 이것을 점진적으로 더 높여가면서 세계선수권 이후 런던올림픽이나 각종 국제 대회에서는 정말로 좋은 성적을 내는 계기를 만들겠다는 것입니다. 메달을 따내지 못할 것이라는 것에 대해 다소 아쉽게 여길 수도 있겠지만 국내 육상의 현실을 고려하면 차라리 밟을 수 있는 곳을 밟아나가면서 미래를 내다보겠다는 자세는 상당히 긍정적인 측면이 많은 게 사실입니다.

신기록, 국제 대회 선전...세계선수권 효과 나타난다

물론 한국 육상이 세계선수권을 준비하면서 하나둘씩 긍정적인 현상들이 나타나고 있는 것도 고무적입니다. 세계 기록과는 차이가 나더라도 10-20년 묵은 한국기록을 갈아치우는 모습들이 나타나고 있는 것입니다. 지난해 가을, 김하나(안동시청)가 여자 200m, 400m 계주에서 잇달아 23년 묵은 한국 기록을 갈아치웠고, 올해는 남자 단거리 기대주 김국영(안양시청)이 남자 100m에서 10초 31의 기록을 세우며 1979년 서말구가 갖고 있던 10초 34의 벽을 드디어 깨는데 성공했습니다.

또 상위권 진입을 노려볼 만 하다는 필드 종목 세단뛰기, 멀리뛰기에서 간판 김덕현(광주광역시청)과 정순옥(안동시청)이 지난 5월에 열린 대구국제대회에서 드디어 첫 메달을 따내면서 가능성을 보여줬고, 박재명(태백시청)이 남자 창던지기에서 역시 메달을 따내며 아시아 최강자다운 면모를 보여줬습니다. 아직 갈 길이 멀고 세계적인 수준과도 거리가 있는 점이 여전히 아쉽지만 하나하나 단계를 밟아나가는 측면에서 놓고 보면 세계선수권 준비가 한국 육상의 해묵은 과제들을 깨는데 큰 역할을 하고 있는 것만은 분명합니다.

▲ 왼쪽부터 창던지기 박재명, 멀리뛰기 정순옥, 여자장대높이뛰기 최윤희, 임은지 ⓒ연합뉴스
궁극적 목표는 지도자 체질 개선

무엇보다 한국 육상이 이번 세계선수권을 준비하면서 가장 크게 역점을 두고 해결하고 싶은 과제는 바로 지도자의 체질 개선입니다. 현실에만 안주하고 전력 향상에는 힘을 쏟지 않아 정체기를 맞이하게 했던 일선 지도자들에 철퇴를 가하기 시작한 것입니다. '지도자가 달라져야 선수도 발전한다'는 마인드로 제대로 된 지도자를 양성하고 그러면서 선수들의 기량 발전도 이뤄내려 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유망한 선수들을 해외에 내보내 체계적인 훈련을 시키고, 지도자도 같이 배우면서 선진 지도법을 익히게 하는 등 내부적인 노력이 계속 됐고, 그 덕에 선수들이 하나둘씩 성과를 내기 시작하면서 주목받고 있습니다.

세계선수권 유치를 통해 그동안 좌절감에 휩싸였던 한국 육상이 서서히 기지개를 켜고 있는 것은 상당히 의미 있는 일이 아닐 수 없습니다. 비록 당장의 성과를 내는 것이 힘들다 할지라도 '세계무대에서 경쟁할 수 있는 기량 완성'에 초점을 맞춰 나름대로 최선을 다하는 모습을 보여주고 또 덩달아 성과를 낸다면 육상의 현실을 어느 정도 아는 팬들 입장에서는 박수를 보낼 수 있을 것입니다. 1년이라는 시간동안 한국 육상이 더 땀흘리는 모습을 보여주며 그 과정에서 성과를 내고, 그러면서 진정한 도약기를 맞이할 수 있을지 지켜봐야 하겠습니다.

대학생 스포츠 블로거입니다. 블로그 http://blog.daum.net/hallo-jihan 를 운영하고 있습니다. 세상의 모든 스포츠를 너무 좋아하고, 글을 통해 보다 많은 사람들과 공유하고 이야기하고 싶습니다.

저작권자 © 미디어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