병상에 누워 이미 오래 전부터 예고되기도 했고, 결국은 그렇게 마무리될 것임을 알고 있었지만 김탁구의 방황과 고민을 잠재우고 마음을 다잡게 해주었던 거대한 버팀목 팔봉 선생이 끝내 자신의 진정한 후계자 김탁구와 함께 빵을 만들며 자신의 마지막을 장식했습니다. 세상에 믿을 놈 하나도 없고, 누구 하나 본받을 사람 찾기 어려운 불신의 세상에 모처럼 드라마에서나마 좋은 참스승의 역할을 보여주던 팔봉 선생이었던지라 다시 극에서 그 모습을 만날 수 없다는 것이 아쉽네요.
하지만 극 전개상 무리하고 급작스러운 퇴장도 아니었고 열연을 펼쳐준 멋진 배우 장항선에게 돌아가야 할 마땅한 예우와 준중이 드러나는 퇴장이었기에 불만은 없습니다. 결국 빵, 그리고 자신이 보살펴온 사람들과 함께 한 마지막은 아름다웠고 감동적이었고 의미 있었습니다. 수많은 등장인물들이 죽어나갔지만 퇴장하는 그들 하나하나에 대한 애정과 존중이 감겨있었던 올봄의 추노 이후에 이렇게 중도 퇴장 배우에게 세심한 배려와 감사를 담은 화면 구성을 했던 드라마가 올해 또 있었나 싶을 정도에요. 물론 그만큼 극중 팔봉 선생의 존재감이 컸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말이죠.
처음에는 말썽꾸러기 풋내기에 불과했지만 모두의 인정을 받으며 팔봉빵집의 진정한 일원으로 인정받고 봉빵의 비법까지 터득한 그가 이제 그곳에서 할 수 있는 것은 아무것도 없어요. 물론 그들은 김탁구가 의지하고 기댈 수 있는 든든한 버팀목으로 남아 줄 것이고 신유경에게 상처 입은 김탁구의 곁에는 양미순이 남아 4각 러브라인을 공고하게 만들어주겠지만 한동안 이야기의 핵심 장소였던 팔봉빵집은 더 이상 이 드라마의 중심 무대로서의 가치를 상실했습니다. 팔봉선생의 죽음은 바로 이런 배경과 소재, 구도의 변화를 예고하는 마침표였어요.
어쩌면 제빵왕 김탁구는 이제야 본 이야기를 시작했다고 할 수도 있겠네요. 잘못된 출생의 엇갈림으로 시작해 서로 같은 듯 다른 길을 선택한 두 남자가 돌고 돌아 결국 이제야 진짜 타이틀매치를 시작하려 준비하고 있습니다. 물론 제작진이 지금까지 보여준 시각을 본다면 그 타이틀은 얽히고 얽힌 남녀간의 사랑도, 부와 명예를 이룰 수 있는 거성 그룹도, 두 남자 모두 상실한 것이나 다름없는 가족의 회복도 아닌 빵을 만드는 것 자체에서 느끼는 즐거움, 사람의 성장과 완성, 즉 진정한 제빵왕이 되는 것이겠지만 말이죠. 시작부터 그 끝이 뻔히 보이는 결말이기는 하지만 그 과정을 하나하나 지켜보는 재미가 워낙에 크다보니 지루할 틈이 없네요. 팔봉 선생님은 큰 울림을 남기고 떠났지만 수목 드라마의 승자 자리는 점점 더 굳건해 보여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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