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 축구에서 '축구 천재'로 가장 딱 떠오르는 선수를 꼽는다면 바로 아르헨티나의 리오넬 메시입니다. 뛰어난 기술과 팀에 대한 기여도, 각종 기록들이 다른 선수들보다도 우수하게 나타나면 '축구 천재'라는 칭호를 붙여주는데 바로 그런 조건들을 충족하는 메시가 다른 선수들보다도 뛰어난 모습을 보여주며 현대 축구의 진정한 축구 천재로서 명성을 날리고 있습니다.

주로 10대 후반에서 20대 초반의 젊은 나이에 '전설'로 거듭날 가능성을 보여준 선수들에게 우리는 '축구 천재'라고 부릅니다. 하지만 우리나라에서는 이 '축구 천재'가 그다지 좋은 단어로 여겨지지 않는 게 사실입니다. 어렸을 때는 좋은 평가를 받으며 한국 축구를 이끌 차세대 기대주로 명성을 날렸지만 뜻하지 않은 부상, 선수 혹사, 기타 구설수 등으로 제대로 꽃 피우지 못하며 '천재가 박제가 돼버리는' 사례들을 여러 번 경험해 왔기 때문입니다.

2000년대 초반 '축구 천재'로 불렸던 이천수가 최근 일본 J리그 오미야 아르디자에 어렵게 입단한 뒤 2경기 연속 선발 출장해서 서서히 옛 기량을 회복하고 있다는 소식이 전해지고 있습니다. K-리그 최고의 테크니션으로서 월드컵, 올림픽, 아시안컵 등 각종 국제 대회에서도 국가대표 선수로 명성을 날렸던 이천수였지만 잇따른 해외 진출 실패, 잦은 튀는 언행, 행동, 외적인 문제 등으로 문제를 일으키면서 어렸을 때 얻었던 명성만큼 좋은 성과를 내지 못했습니다. 결국 K-리그에서 임의 탈퇴 공시되면서 복귀할 수 있는 길이 닫혀졌고, 중동에서도 임금 문제로 무적 선수 신분이 되면서 한동안 조기 축구에서 몸을 만들어야 하는 신세가 됐습니다. 다행히 몸을 잘 만든 덕분에 그나마 재기의 몸부림을 치기 시작한 이천수지만 여전히 조광래 축구대표팀 감독을 비롯한 한국 축구 내 지도자들의 반응은 싸늘하기만 해 그를 한국 축구의 중심에서 다시 볼 수 있을 지는 좀 더 지켜봐야 할 것으로 보입니다.

▲ 이천수 선수ⓒ연합뉴스

이렇게 이천수의 소식이 전해지면서 문득 우리가 한때 기억했던 축구 천재들이 어떤 길을 걸었는지 다시 한 번 되돌아보게 됐습니다. 고교 또는 대학 시절 빼어난 기량과 기술을 선보이면서 한국 축구를 선진 축구로 이끌 차세대 선두 주자로 명성을 날렸던 우리의 '축구 천재'들은 그러나 앞서 언급한 잇따른 문제에다 언론의 과도한 관심으로 인한 부담감 또는 자만심 같은 심리적인 요인도 더해져 '축구 영웅'으로 떠오른 사례가 거의 전무하다시피 했습니다.

축구 천재로 불렸다 완전히 잊혀진 선수가 됐던 가장 대표적인 선수는 바로 바르셀로나 올림픽 예선 영웅 김병수 현 영남대 감독입니다. 19살에 성인 대표팀에 발탁됐을 만큼 어린 시절부터 천부적인 경기 운영과 정교한 패싱플레이, 유연한 드리블, 날카로운 슈팅력과 득점력까지 겸비한 걸출한 재목으로 주목을 받은 선수가 바로 김병수였습니다. 김병수의 그림같은 프리킥은 한동안 많은 사람들의 입에 오르내렸을 정도로 날카로움, 정확도가 상당히 눈에 띄기도 했는데요. 이런 그의 능력에 당시 올림픽팀을 맡았던 '명장' 데트마르 크라머 감독은 "50년에 한 번 나올까 말까 한 선수"라며 극찬을 아끼지 않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그는 어린 시절 너무 혹사당한 나머지 잦은 부상 때문에 제대로 꽃 피우지도 못하며 쓸쓸히 사람들의 기억 속에 잊혀져만 갔습니다. 바르셀로나 올림픽 예선 한일전에서 결승골을 집어넣으며 2회 연속 본선 진출의 견인차 역할을 했던 김병수는 정작 본선을 앞두고 부상으로 나서지 못했고, 이후에도 잦은 부상과 컨디션 난조로 이렇다 할 활약을 보여주지 못했습니다. 이후 1993년 일본 실업 축구로 눈길을 돌린 뒤 4년간 뛰었던 김병수는 26살의 아주 젊은 나이에 선수 생활을 갑자기 그만 두면서 씁쓸한 말년을 보냈습니다. 물론 이후 지도자에 뛰어든 뒤 올해 초 영남대를 이끌어 33년 만에 전국 대회 우승을 이끌어낸 주역으로 거듭나면서 '축구 천재' 김병수의 존재감이 다시 드러났지만 선수로서 이렇다 할 활약을 보여주지 못한 것은 개인으로나 팬 모두 아쉬움이 남습니다.

김병수 이전에 '비운의 축구 천재'를 꼽는다면 바로 김종부를 이야기하지 않을 수 없을 것입니다. 1983년 멕시코 U-20 월드컵 4강 신화 주역으로서 한국 스트라이커 계보를 이을 선수로 많은 기대를 모았던 선수였습니다. 전천후 공격수로서 파괴력 있는 슈팅과 공격력은 차범근, 최순호의 뒤를 이을 확실한 재목으로 거론되는 밑바탕이 됐습니다. 하지만 1985년 대우(현 부산 아이파크)와 현대(현 울산 현대) 간의 김종부를 둘러싼 스카우트 파동과 그에 따른 모교 고려대학교의 중징계 등의 악재가 이어지면서 김종부는 겉잡을 수없이 나락으로 떨어졌습니다. 결국 1986년 멕시코월드컵 이후 더 이상 대표팀에서도 모습을 볼 수 없을 만큼 평범한 선수로 전락해 씁쓸한 선수 은퇴를 해야만 했습니다.

1990년대에는 천부적인 드리블과 날카로운 패싱플레이, 감각적인 경기 운영을 펼칠 줄 아는 '축구 천재'들의 몰락이 이어졌습니다. 자신의 이름을 딴 존에서 프리킥을 차면 거의 백발백중 골로 연결시킬 만큼 탁월한 프리킥 능력과 센스 있는 플레이가 돋보였던 고종수, 정확한 패스와 넓은 시야, 공수 조율 능력 면에서 타의 추종을 불허했던 윤정환, 청소년-올림픽 대표로 엘리트 코스를 밟으면서 현역 선수 중 최고의 테크니션으로 주목받았던 이관우 등은 모두 잦은 부상과 체력 저하 등으로 정작 스타로 거듭날 수 있는 시기에 그런 모습을 보여주지 못하면서 성공하지 못한 '축구 천재'로 남았습니다. 물론 이관우는 현재 선수로 뛰고 있기는 하지만 전성기를 달릴 수 있는 시기는 이미 지났고, 고종수는 잦은 구설수로 자주 팬들을 실망시키며 진정한 스타로 떠오르지 못했습니다. 박지성이 존경하는 선수로 거론해 주목받았던 윤정환 역시 약점으로 지적된 수비 문제 때문에 더 큰 선수로 발돋움하지 못하며 월드컵 대표로 발탁되고도 정작 단 한 게임도 뛰지 못한 아쉬움을 맛봐야 했습니다.

▲ 윤빛가람 선수ⓒ연합뉴스

해외 무대에 진출해 가능성 있는 모습을 보여주다 잊혀진 선수로 전락한 새로운 '축구 천재'들도 있습니다. 브라질 유학파 출신으로 차세대 한국 중원을 이끌 것으로 기대됐던 이호는 유럽 무대 진출 실패로 평범한 선수가 됐고, 모 항공사 CF에도 나올 만큼 기대주로 명성을 날리면서 잉글랜드 프리미어리그 최초의 한국인 선수가 될 뻔 했던 이산은 현재 어느 팀에서 뛰는 지도 잘 모를 만큼 완전히 잊혀진 선수가 됐습니다. 또 독일 FC 쾰른 유스팀에서 잠시 활약하고 엘리트 코스를 밟으면서 청소년 대표 시절 기대를 한 몸에 받았던 권집도 최근 그나마 K-리그 대전 시티즌에서 부활의 날개짓을 펴고 있지만 7년간 6개 팀을 오갈 만큼 불안한 행보를 이어가며 어렵게 선수 생활을 해 왔습니다.

최근 우리나라 축구계에 또 다른 축구 천재들이 나타났다고 하면서 관심이 모아지고 있습니다. 19세 스트라이커 지동원과 21살의 미드필더 윤빛가람이 그 주인공입니다. 이들 외에도 최근에 선진 기술을 장착하고, 세계화에 발맞춰 유명 클럽 유스팀에서 활약하며 '축구 천재'로서의 자격을 갖춰나가고 있는 어린 선수들도 줄을 잇고 있습니다.

하지만 이런 축구 천재들이 앞서 언급한 선수들과 같은 전철을 밟지 않으려면 꾸준하면서도 철저한 자기 관리와 천재가 영웅이 될 수 있는 주변 환경이 잘 갖춰져야 할 것입니다. 그나마 축구 천재에서 한동안 슬럼프를 겪다가 월드컵에서 좋은 활약을 펼치고 프랑스 명문 AS모나코에서 성공 가도를 달리고 있는 박주영이 하나의 좋은 사례로 여겨질 수 있겠습니다. 어쨌든 우리나라에서 잇달아 배출되는 축구 천재가 더 이상 잊혀진 박제만 잇달아 배출하는 것이 아니라 한국 축구의 진정한 보석으로 다듬어지는 모습으로 성장하는 사례를 더욱 많이 볼 수 있기를 기대해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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