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디어스=송창한 기자] 전국언론노동조합 EBS지부(이하 언론노조 EBS지부)가 UHD 송신지원과 관련해 방송통신위원회가 제시한 각서에 서명했다는 의혹을 받고 있는 장해랑 EBS 사장에 대한 사퇴 촉구를 본격화하고 있다. 언론노조 EBS지부는 사옥 1층에 장 사장의 사퇴를 촉구하는 농성장을 꾸렸고, EBS직능단체협회는 총회를 개최해 장 사장을 비판하는 공동성명을 발표했다.

장해랑 사장은 사내게시판을 통해 '각서에 서명한 적이 없고, 문건은 어떤 효력도 없다'는 허욱 방통위 부위원장의 말을 전하며 직원들에게 사과했지만 EBS내부 구성원들의 사퇴촉구가 지속될 것으로 보인다.

전국언론노조 EBS지부는 30일 EBS사옥 1층에 장해랑 사장의 사퇴를 촉구하는 농성장을 꾸렸다. 같은날 EBS직능단체협회 역시 총회를 개최해 장해랑 사장의 퇴진을 촉구하는 공동성명을 발표했다. (사진=언론노조 EBS지부 제공)

지난주 방통위가 제시한 '수도권 지상파 UHD 송신지원에 관한 합의 각서'에 서명을 했다는 의혹이 제기된 장해랑 EBS 사장은 30일 오전 사내게시판을 통해 사과의 글을 올렸다. 해당 각서에는 송신설비 구축비용을 KBS와 EBS가 분담하는 내용이 포함됐는데, 방송법상 EBS가 행하는 방송의 송신 지원은 KBS의 업무로 규정되어 있어 논란이 일었던 바 있다.

장 사장은 사과문에서 "방통위와 협의한 적은 있지만 싸인은 기억나지 않았다"며 "당시 문건을 찾았다. 고대영 KBS사장과 제 이름이 적힌 문건이 있었다. 다시 읽어봤지만 기억나지 않았고, 효력도 없는 이 문건이 왜 지금 불거졌는지 이해가 되지 않았다"고 회상했다.

이어 장 사장은 "확인이 필요했다. 그날 저녁 7시경 허욱 부위원장과 통화가 됐다. 허 부위원장은 따지듯 한 제 전화에 화를 내며 만나서 얘기하자며 전화를 끊었다"며 "목요일 아침 방통위로 갔다. 허 부위원장은 자신을 주목하고 항의하는 제가 이해 안 된다며 오히려 제게 언성을 높였다. 돌아오며 생각했다. '아, 싸인을 했나 보구나. 그렇다면 과정과 내용을 하나도 감추지 말고 전부 다 알리는 게 좋겠다'"라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장 사장은 "금요일 오후, 그제서야 사태의 맥락을 파악한 허욱 부위원장으로부터 전화가 왔다. '장사장이 뭔가 착각하고 있다. 그날 의견을 나누었을 뿐 싸인한 적이 없다. 싸인한 적도, 받은 적도 없으니 문건은 당연히 없다. 협의한 안조차 당시 논의했던 수없는 제안 중의 하나일 뿐, 그 어떤 효력도 없다'. 황당했지만 그건 팩트였다. 비로소 12월 14일 장면이 또렷이 떠올랐다"고 해명했다.

장 사장의 말을 종합하면 당시 상황이 기억나지 않는 상태에서 관련 부서의 문의와 허욱 부위원장의 반응때문에 각서에 '싸인을 했다'고 생각하게 됐고, 이후 허욱 부위원장의 설명을 듣고 나서 '싸인을 안 했다'는 기억이 났다는 것이다. 장 사장은 "제 기억의 혼선으로 회사를 충격의 수렁으로 빠뜨린 이번 사태에 대해 먼저 허리 숙여 사과드린다"고 밝혔다.

그러나 언론노조 EBS지부는 장 사장의 해명을 믿을 수 없다며 사옥 1층에 농성장을 꾸렸고 EBS경영인협회, 그래픽협회, 기술인협회, 기자협회, 미술인협회, 연구인협회, 카메라맨협회, PD협회로 구성된 EBS직능단체협회는 총회를 통해 장 사장의 사퇴를 촉구하는 공동성명을 냈다.

직능단체 성명에 기재된 사태일지에 따르면 장해랑 사장은 26일(목) 허욱 부위원장과의 면담에서 각서 폐기를 요청했으나 허욱 부위원장은 이를 거부했다. 이후 노조 집행부와의 면담에서 해당 각서에 서명하였음을 시인하고 각서 사본을 노조 집행부에 보여줬다. 노조 면담 전에도 장 사장은 부사장, 정책본부장, 기술본부장에게 서명 사실을 인정한 것으로 전해졌다.

다음 날인 27일 장 사장은 부사장-부서장 회의에서 각서에 서명했다고 재차 시인하고 '전략적 경영판단'으로 결정한 것이라고 인정했다. 이후 노조에도 "전략적 경영판단으로 서명했으며 10~30억 원 예산이 발생할 것으로 알고 있다"고 밝혔다. 이후 장 사장은 방통위로 이동 중 허욱 부위원장으로부터 전화를 받았고, 오늘 사내게시판에 사과문을 게재했다는 것이다.

EBS직능단체협회는 공동성명에서 "허욱 부위원장이 내민 굴욕적인 합의 각서에 서명한 처사가 '전략적 경영 판단이었다'는 당신의 궤변에 우리는 황망한 마음과 강한 분노를 느낀다"면서 "그런데 오늘 사과문을 통해 그렇게 당당하던 당신이 각서에 서명하지 않았다고 고백했다. 며칠 전까지만 해도 그 각서는 전략적인 경영 판단하에 서명했다고 당당히 밝힌 당신이 자신의 기억조차 믿지 않게 되었다"고 비판했다.

이어 EBS직능단체협회는 "우리는 분노를 넘어 놀라움과 실소를 금할 수 없다. 각서에 서명한 적도 서명한 문건도 결코 없다는 것"이라며 "정말 이 상황은 기억의 혼돈인가 아니면 지속적인 식언과 거짓말의 향연인가. 더 이상 앞뒤가 맞지 않는 변명과 거짓말을 자행한다면 그것은 당신 개인을 넘어 우리 EBS의 치욕과 부끄러움으로 남을 것이다. 치욕과 불명예를 더 이상 EBS에 남기지 말고 당당하게 퇴진하기 바란다"고 촉구했다.

EBS직능단체협회는 허욱 방통위 부위원장에게도 "이 생소한 문서는 지난 이명박, 박근혜 정권에서도 등장하지 않았던 괴문서"라며 책임을 물었다. 직능단체협회는 "KBS의 EBS 방송 송신지원 문제는 결코 쟁점화되었던 적 없었다"며 "국민의 수신료로 운영되는 공영방송사 간의 명백한 법적 관계를 밀실 서명, 원본 폐기 시도, 서명 사실 부정 등의 촌극으로 곤두박질시키는 저의는 무엇인가. 분명한 것은 이 사태를 야기한 책임은 허욱 부위원장에게 있다는 것"이라고 비판했다. 언론노조 EBS지부는 지난 27일 성명에서 허욱 부위원장에 대해 직권남용으로 법적 책임을 묻겠다고 밝힌 바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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