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상한 전성시대입니다. 데뷔한 지도 벌써 근 20여년. 열광적인 환호를 받던 청춘스타로서의 기억은 이미 오래전 일이고 군복무로 잠시 자리를 비웠던 시기를 제외하면 늘 꾸준하게 활동하고 있었던 배태랑 진행자. 하지만 그렇기에 참신하고 새롭기보다는 익숙하다 못해 점점 더 식상해서 이제 더 이상 무얼 더 기대할 수 있을까 싶었던 중견 MC가 새로운 방식으로 자신의 활로를 찾고 있거든요. 이휘재. 늦깎이 결혼을 신고한 그의 최근 행보는 갈수록 빡빡해지는 치열한 경쟁의 예능정글에서 살아남는 재미난 방법을 보여주고 있어요.

그도 그럴 것이, 오랫동안 예능 프로그램을 지배해온 양강, 유재석과 강호동, 그리고 여전히 건재한 대부 이경규가 출연하는 프로그램을 제외한다면 현재 방송되고 있는 것들 중에서 단연 두각을 나타내는 메인MC는 이휘재 밖에 없습니다. 수많은 논란을 불어오는 문제 방송이기도 하지만 토요일 저녁을 점령해버린 세바퀴의 기세는 여전히 살아있고, 친정인 일밤에서의 처참한 실패를 뒤로하고 은근슬쩍 동시간대 SBS로 몸을 옮긴(이상하게 이런 재미난 이동을 주목하는 분들은 없더군요.) 영웅호걸도 1박2일의 위력 때문에 미약한 출발을 하긴 했지만 방송 방향 자체는 무난하게 시작하고 있습니다. 그야말로 화끈한 폭로방송, ‘순위정하는 여자’ 역시 케이블 방송 특유의 민감한 선을 아슬아슬하게 넘나들며 순항하고 있구요. 특급 MC들이라던 신동엽, 김용만, 탁재훈 등등의 다른 이들이 맥을 못 추고 있는 요즘 이정도면 남부럽지 않은 또 다른 전성기라 해도 과언이 아니에요.

그런데 그가 활약하고 있는 프로그램들에는 묘한 공통점이 있습니다. 모두가 그 방송의 초점과 중심이 여성 출연자들에게 맞추어져 있다는, 그리고 출연진의 수가 다른 유사한 포맷의 프로그램에 비해 상당히 많다는 것이죠. 바로 이런 차이점들이 다른 MC들이 가지지 못한 이휘재만의 장점과 능력을 돋보이게 하는 지점이기도 하구요. 지금까지 그가 쌓아온 이미지와 방송 경력이 종합된, 어떻게 보면 이제야 그 정체성이 불분명했던 이휘재가 진행자로서의 자신의 색깔을 확실히 하는 시기에 들어섰다고 할 수도 있겠네요.

비록 평가절하되어 있기는 하지만 그는 분배와 균형에 재능을 가진 진행자입니다. 복잡하게 꼬여있고 배분이 쉽지 않은 수많은 게스트들이 출연하는 프로그램에서 그는 각 출연자들이 저마다 가지고 있는 적절한 웃음 포인트를 인지하고 적당히 치고 빠지는 방법을 능글맞게 구사하는 MC이죠. 이른바 대접해야할 게스트와 그들을 빛내게 하기 위해 웃음과 재미를 주는 이들을 확실하게 구분해서 이 둘 사이의 흐름을 조율하는 능력이 매우 탁월합니다. 이른바 특급 게스트의 다소 밋밋한, 혹은 맥락 없는 이야기가 나올 때쯤이면 세바퀴의 임예진이나 조혜련, 영웅호걸의 신봉선이나 노사연, 혹은 순정녀의 김새롬이나 정주리같은 소중한 양념 같은 이들의 멘트를 이끌어 내고 알맞게 그 수위와 분량을 조절해서 프로그램의 포인트를 살려주는 능력은 이휘재만의 특별한 무기입니다.

게다가 오랜 기간 동안 그가 가지고 있던 바람둥이라는 캐릭터는 다른 어떤 남자 MC들보다 여성 출연진과의 관계를 편하고 자연스럽게 만들어 줍니다. 비록 가끔씩은 그런 이미지 때문에 인지도 상승을 위해 만들어진 억지 스캔들에 이름을 올리기도 하지만 이젠 아저씨로 오롯이 나이를 먹은 중년의 바람둥이로서의 이휘재는 10대부터 아줌마까지 연령도, 가수, 연기자, 개그우먼 같은 직종도 불문한 여자 연예인들과 이야기를 다양한 화제의 이야기를 편하게 주고받는 그만의 메리트를 가지고 있습니다. 그만큼 수더분하게 수많은 여자 게스트들과 방송을 진행할 수 있는 메인MC는 같이 영웅호걸에 출연하는 노홍철 정도 밖에는 없어요.

어쩌면 이런 그의 활로 찾기는 급격하게 늘어난, 그리고 서서히 조정 기간을 가지고 있는 여자 중심 버라이어티, 줌마테이너 열풍의 덕분입니다. 남자들 일색의 예능 버라이어티에서 꽃장식의 역할에서 벗어나 서서히 여자 연예인들도 여러 예능 프로그램에서 자신들의 목소리를 내기 시작했지만 그녀들의 영역은 여전히 게스트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죠. 아무리 여성 중심의 프로그램이 생겨나고 여러 변종을 만들고는 있지만 진행자의 자리는 늘 남자의 몫이었고 이 어중간하고 쉽지 않은 자리를 이휘재가 차지하고 있다고 해야 할 거에요. 그리고 서서히 여성 위주의 버라이어티가 하나의 확실한 장르로 정착하고 있지만 그만큼 적합한 진행자가 보이지 않는 이상 그는 독보적인 자리를 유지할 것입니다. 시대의 흐름이 만들어 준 기회이지만 이휘재가 아니라면 그 누구도 하지 못하는, 그래서 더더욱 그 생명력이 길어 보이는 그만의 독특한 생존전략, 재미난 측면승부에요.

'사람들의 마음, 시간과 공간을 공부하는 인문학도. 그런 사람이 운영하는 민심이 제일 직접적이고 빠르게 전달되는 장소인 TV속 세상을 말하는 공간, 그리고 그 안에서 또 다른 사람들의 마음을 확인하고 소통하는 통로' - '들까마귀의 통로' raven13.tistor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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