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젠가부터 K-리그 스타 선수들이 일본 J리그로 잇달아 진출했던 시기가 있었습니다. 그러나 이제는 일본 J리그 뿐 아니라 중동에도 눈길을 돌리기 시작하면서 양분화되는 양상을 보이기 시작했습니다.

바로 이틀 전이었습니다. 이미 카타르 알 사드와 입단에 합의했던 '골넣는 수비수' 이정수가 첫 해 연봉 180만달러(약 22억원)를 받는 조건에 3년 계약을 했습니다. 이후에도 남아공월드컵 때 이정수와 짝을 이뤘던 조용형이 카타르 알 라이안으로 이적하면서 '카타르 진출 2호' 선수가 됐습니다. 또 비록 중도에 들어오기는 했지만 이천수, 이호 등도 사우디, 아랍에미리트(UAE) 리그에 진출하고, 송종국이 사우디 알 아흘리 입단을 추진했으며, 김남일도 한때 중동행을 모색하는 등 한국 선수들의 중동 러시가 최근 1년 사이에 계속 이어지고 있습니다.

재미있는 것은 대부분이 우리가 익히 잘 알고 있는 국가대표 출신 스타 플레이어라는 점입니다. 새로운 경험을 쌓는 측면도 있고 무엇보다 세금 없이 연봉을 대부분 수령할 수 있다는 점에서 개인의 가치를 중시하는 프로 선수들 입장에서는 어찌 보면 중동 진출이 '당연한 현상'으로 볼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스타가 필요한 K-리그 입장에서 중동 팀에 잇달아 스타선수들을 뺏기고 있는 현재 상황을 놓고 보면 이같은 중동 러시가 마냥 즐겁지만은 않고 오히려 더 큰 위기를 가져다줄 것으로 보고 있습니다.

그렇다면 왜 갑자기 중동 팀들이 한국 선수들에 눈독을 들이기 시작했을까요? 사실 중동은 한국 선수들이 들어오는 것에 대해 다소 껄끄럽게 여겼을 것입니다. 축구 뿐 아니라 아시아 스포츠 내부적으로도 서아시아와 동아시아는 그야말로 '상극' 관계나 다름없었으며, 문화적인 차이 때문으로도 한국 선수들을 데려오는 것이 쉽지만은 않았을 것입니다. 또 한국 선수들 내부적으로도 중동 축구가 우리보다 못하다는 인식 때문에 '가면 끝'이라는 '편견'도 있었습니다.

▲ 나란히 중동에 진출한 조용형-이영표 ⓒ연합뉴스
그럼에도 한국 선수들의 중동 러시가 유독 두드러지는 것은 중동이 경쟁력 강화 차원에서 외국인 선수를 물색하고 있었고 그 가운데서 '아시아쿼터제'를 활용할 수 있는 실력 좋은 한국 선수들에 매력을 느꼈기 때문이라는 분석이 지배적입니다. 팀당 외국인 선수 보유 제한을 두지 않고 별도로 한 명의 아시아축구연맹(AFC) 소속 아시아 선수들을 1명씩 보유할 수 있는 제도인 '아시아쿼터제'를 활용해 팀에 큰 도움이 되고, 성실한 플레이를 펼칠 줄 아는 한국 선수들에 눈독을 들이게 된 것입니다. 설기현이 풀럼에서 사우디 알 힐랄로 가장 먼저 스타트를 끊은 이래로 이영표, 이천수, 이호, 이정수, 조용형, 송종국 등 국가대표를 뛴 잘 알려진 선수들 가운데서도 실력 있는 선수들에 러브콜을 보내면서 이제는 중동행이 그리 낯선 풍경은 아닌 상황까지 가게 됐습니다.

우리 선수들 역시 해외 무대에서 경험을 쌓고 주요 국제 대회마다 발목을 잡은 중동 축구에 적응한다는 측면에서 긍정적인 시각으로 바뀌기 시작했습니다. 특히 축구에만 전념할 수 있는 환경이 선수들에게 매력적으로 여겨지고 있는데요. 이영표는 "프로축구의 인프라나 시스템도 유럽 못지 않다. 우리나라 선수들이 월드컵에 나가서 좋은 성적을 거두고 중동 클럽의 눈에 띄어 이적 제의를 받고, 선수들 역시 중동행을 결정하는 것은 매우 자연스러운 일이다."라면서 잘 갖춰진 환경이 무엇보다 괜찮다는 점을 강조하기도 했습니다. 한편으로는 앞서 언급한 것처럼 고액 연봉이 보장되고 이 연봉의 대부분을 가질 수 있다는 점에서 중동 무대가 매력적으로 느껴졌을 것입니다. 한때 일본 J리그 진출이 봇물을 이뤘을 당시에도 가장 큰 이유 가운데 하나가 한국에서 뛸 때보다 더 좋은 금전적인 조건 때문이라는 말이 있었는데 그보다 더 많은 돈을 받을 수 있으니 선수들 입장에서는 마다할 이유도 없다는 것입니다.

문제는 이같은 현상이 국내 프로 축구 스타 부재로 이어지는 면에서 아시아 최고를 꿈꾼다는 K-리그에 더 심각한 타격을 불러일으킬 수 있다는 점입니다. 지금까지 중동에 진출한 선수들이 모두 K-리그 경험이 있는 선수들이면서 나름대로 큰 족적을 남겼던 선수들이기도 했는데요. 상품성이 있는 선수들을 그저 중동에 빼앗기기만 한다면 일본, 유럽 뿐 아니라 선수 유출이 더욱 확대되면서 궁극적으로 경쟁력이 약화될 것이라는 우려를 낳게 하고 있습니다. 특히 서울, 수원 등 몇몇 구단을 제외하고는 아시아쿼터제를 효율적으로 이용하지 못하는 측면이 있는데 중동에 잇달아 우리 선수들을 내주면서 이런 효과를 전혀 보지 못하는 상황도 맞이할 공산이 큽니다. 가고 싶다는 선수를 붙잡을 수는 없는 노릇이라 해도 그만큼 선수들이 훈련에 몰두하고 좋은 인프라에서 국내에서 선수 생활을 할 수 있었다면 선수 개인에게나 K-리그 입장에서도 큰 도움이 될 수 있었을텐데요. 구조적인 문제나 자금력 문제 등으로 선수들이 하나둘씩 떠나면서 이제는 중동에까지 진출하는 현상을 바라보면 분명히 아쉬운 일이 아닐 수 없습니다.

재미있는 경기를 펼치고도 TV 중계가 없어 가뜩이나 붐 조성도 제대로 이루지 못하고 있는 K-리그. 스타 선수들마저 하나둘씩 빠져 나간다면 과연 어떤 팬들이 경기장을 찾을 것인지 걱정스럽기만 합니다. 자칫 K-리그가 유망한 선수들 키워놓은 뒤 스타 선수들이 많은 리그가 아니라 다른 나라 리그에 수출만 하는 리그가 되지 않을까 염려스럽습니다. K-리그는 일본 J리그에 이어 중동에 잇달아 진출하는 스타 선수들의 이적 현상에 대해 분명한 위기 의식을 가질 필요가 있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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