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필자인 블로거 '디제'님은 프로야구 LG트윈스 팬임을 밝혀둡니다.

외형적으로는 3:2로 앞선 9회말 마무리 오카모토가 유한준에게 동점 홈런을, 11회말 김광수가 송지만에게 역전 끝내기 홈런을 허용하며 10승을 목전에 둔 봉중근의 승리를 불펜이 날린 것처럼 보이지만, 진정한 패인은 타선 침묵에 있습니다.

LG는 무수한 득점권 기회에서 적시타는커녕 희생 플라이조차 단 1개도 나오지 않았습니다. 5회초 무사 2, 3루, 6회초 2사 1, 2루, 9회초 2사 2루, 11회초 무사 1, 2루의 기회를 전혀 살리지 못했습니다. 많은 기회를 한 번이라도 살렸다면 결과는 달라졌을 것입니다. 어제와 오늘 경기를 합쳐 20이닝 동안 LG는 8개의 홈런을 쏘아 올렸지만 모두 솔로 홈런에 그쳤고, 득점권에서 적시타나 희생 플라이는 단 1개도 나오지 않는 극도로 비효율적인 야구를 했습니다.

▲ 봉중근(사진-LG트윈스)
박종훈 감독은 무사에 출루 시에는 희생 번트, 1사 혹은 2사 1루에서는 치고 달리기 작전을 기계적으로 구사하는데, 선수들의 작전 수행 능력이 떨어져 번트 실패, 도루자, 주루사 가 속출하며 공격의 맥이 끊어지고 있습니다. LG 타자들의 작전 수행 능력이 떨어지는 것은 어제 오늘 일도 아니기에 선수들에게 책임을 묻는 것이 당연하지만 과연 감독의 책임은 없는 것인지 의문입니다.

박종훈 감독의 잘못은 세 가지입니다. 첫째, 타자들의 작전 수행 능력을 향상시키지 못한 책임에서 자유로울 수 없습니다. 다년간 지속되어온 선수들의 약점을 파악하고 개선하지 못했다는 점에서 책임을 묻지 않을 수 없습니다. 둘째, 작전 수행 능력이 떨어짐에도 불구하고 이를 고집한다는 것입니다. 신인 감독이라면 다양한 해법과 실험을 통해 도전하며 팀에 가장 어울리는 야구가 무엇인지 고민해야 하는데, 그렇지 못하다는 것입니다. 셋째, 작전 구사를 천편일률적으로 고집하니 상대에게 쉽게 간파 당한다는 것입니다. 7회초 박경수의 타석에서 치고 달리기 작전이 나왔지만 상대에 간파당해 1루 주자 박용근이 2루를 파다 횡사했듯이, 치고 달리기 작전에서 상대의 피치 아웃을 통해 주자를 죽이는 일이 지나치게 잦다는 것입니다. 뻔한 타이밍에 작전을 걸고 상대에게 간파당하는 일이 빈번히 발생하는 것은 그야말로 감독의 내공 부족이라고 볼 수밖에 없습니다. (아마도 경기 내내 작전 구사가 실패로 돌아가자 11회초 무사 1, 2루에서는 자포자기의 심정으로 타자들에게 맡기는 쪽을 선택한 것으로 보이는데 역시 실패했습니다.)

선발과 불펜 모두 부실한 LG의 투수진을 감안하면 롯데처럼 초반부터 대량 득점을 통해 넉넉히 점수차를 벌리며 상대의 추격 의지를 완전히 꺾어야 하는데, 1점 리드에 연연하는 작은 야구로 인해 오늘과 같은 역전패가 반복되는 것은 아닌지 근본적인 고민이 필요합니다. 초반부터 희생 번트 작전 나오는 작은 야구는 김재박 감독의 임기 3년을 통해 LG에는 부적합한 스타일이라는 것이 입증된 것이 아닌가 싶습니다.

타순 배치에 있어서도 부진한 타자와 호조인 타자를 뒤섞어 놓아 흐름이 끊기는 일을 자초하고 있습니다. 이를테면 조인성을 4번 타자로 기용하며 타격감이 좋지 않은 이택근, 이대형 등이 조인성 앞에 배치되어 결과적으로 조인성 앞에 주자가 없거나, 아니면 조인성이 선두 타자로 나오는 일이 잦다는 것은 근본적으로 타순 배치가 잘못됐다는 의미입니다.

어제 8회말 승계 주자의 실점을 허용하며 추격에 찬물을 끼얹었고, 오늘은 9회초 동점 홈런을 허용하며 블론 세이브를 한 오카모토는 더 이상 마무리로 기용되지 않는 것이 바람직합니다. 애당초 구속과 구위보다 제구를 바탕으로 승부해왔는데, 최고 구속이 140km 초반에 그치고 있어 상대 타자들에게 아무런 압박감을 주지 못하고 있습니다. 어차피 내년에는 외국인 선수를 모두 선발 투수로 계약하며 오카모토가 재계약을 하지 못할 가능성이 높으니 지금부터라도 이동현을 마무리로 기용하며 내년 시즌에 대비하는 것이 바람직할 것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봉중근의 투구는 모처럼 에이스다웠습니다. 5회초 무사 2, 3루의 기회에서 무득점에 그쳤지만 5회말 넥센의 중심 타선을 삼자 범퇴로 처리하며 분위기를 내주지 않았고, 7회말 2실점하며 흔들렸지만 계속된 무사 1, 2루에서 추가 실점하지 않은 덕분에, 8회초 작은 이병규의 홈런으로 승리 투수 요건을 갖출 수 있었습니다. 그리고 오카모토의 피홈런 및 블론 세이브로 10승이 날아가는 순간에도 봉중근은 미소를 잃지 않는 꿋꿋한 모습을 과시했습니다. 허리와 팔꿈치와 좋지 않은 가운데 최선을 다하는 봉중근의 멘탈을 동료들이 배울 수 있다면, LG의 미래는 어둡지만은 않을 것입니다.

야구 평론가. 블로그 http://tomino.egloos.com/를 운영하고 있다. MBC 청룡의 푸른 유니폼을 잊지 못하고 있으며 적시타와 진루타를 사랑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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