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치액션 l 안경남] 조광래호가 첫 선을 보였다. 한국 축구대표팀은 11일 저녁 수원월드컵경기장에서 열린 '하나은행 초청 월드컵 16강 기념 경기'에서 나이지리아에 2-1 승리를 거뒀다. 윤빛가람의 선제골로 앞서나간 한국은 피터 오뎀윙기에게 동점골을 허용했지만 전반 종료직전 최효진이 결승골을 성공시키며 조광래 감독에게 데뷔전 승리를 안겼다.

경기 후 조광래호에 대한 언론과 팬들의 반응은 매우 뜨거웠다. 이전과는 180도 달라진 포메이션과 전술을 선보였고 공격적인 플레이를 펼치며 나이지리아를 제압했기 때문이다. 또한 조영철, 윤빛가람, 김영권, 홍정호 등 새롭게 발탁한 신인 선수들이 맹활약을 펼치며 현재보다는 미래를 더 기대케 했다.

그렇다면, 조광래 감독이 선보인 대표팀의 새로운 축구는 무엇일까? 조광래 감독은 취임 당시 "스페인의 빠른 패스게임을 본받고 싶다. 스리백에 기반을 둔 3-4-2-1 포메이션을 사용할 것"이라며 자신만의 확고한 축구 철학을 밝혔다. 그리고 그는 나이지리아전을 통해 어느 정도 그것을 증명해 냈다. 물론 한 경기 만으로 조광래의 축구를 판단하기는 이르다. 더욱이 평가전 상대인 나이지리아는 시차적응과 컨디션 조절에 실패한 팀이었다.

그러나 충분한 가능성을 내비친 것 또한 사실이다. 포백을 스리백으로 바꿨고 선수들의 움직임에도 많은 변화를 줬다. 특히 짧은 연습기간에도 불구하고 조광래 축구를 실현하고자 하는 선수들의 의지는 돋보였다. 경기 후 조광래 감독은 "선수들이 내 전술을 30%밖에 이해하지 못했다"고 말했지만 첫 경기에 그 정도면 매우 높은 수치라 할 수 있다.

FORMATION, 3-4-2-1/3-4-3

조광래 감독은 당초 예고대로 스리백 시스템의 3-4-2-1 포메이션을 선보였다. (노란색)곽태휘-이정수-김영권이 스리백을 구성했고, (파란색)최효진-윤빛가람-기성용-이영표가 중원에서 호흡을 맞췄다. (형광색)최전방에는 박주영이 원톱을 맡았고, 그 뒤에 처진 공격수는 (빨간색)박지성과 조영철이 배치됐다. 큰 틀은 3-4-3이라고 볼 수 있다. 그러나 조광래 감독은 전방의 3을 좀 더 세분화했다. 원톱 박주영은 좌우로 크게 벌리거나 후방으로 내려와 직접 볼을 잡고 전개하는 모습을 보였고, 박지성과 조영철은 중앙지향적인 움직임을 통해 박주영이 빠진 공간을 쇄도했다. 그리고 좌우 윙백인 최효진과 이영표는 상당히 공격적인 자세로 경기에 임했다. 한 가지 특징은 과거 포백 당시 풀백들이 터치라인 돌파를 주로 시도했다면, 조광래호의 윙백은 측면에서 중앙으로 파고드는 움직임을 자주 선보였다는 것이다. 한편, 스리백 중 스위퍼를 미드필더 지역으로 올려 중원에 숫자를 늘리겠다는 조광래 감독의 전술은 이날 선보이지 못했다. 아무래도 전술을 가다듬을 시간이 부족했고, 수비조직력의 경우 많은 시간이 필요하기 때문이다.(후반에 교체된 조용형의 경우 몇 차례 전진을 시도했지만, 형식적인 움직임에 그쳤다)

한 가지 흥미로운 사실은, 조광래 감독의 3-4-2-1 포메이션이 마르셀로 비엘사 감독이 이끄는 칠레와 유사하다는 점이다. 이는 경남FC도 마찬가지다. 스리백에 기반을 두고, 측면 윙백의 적극적인 공격가담을 시도하는 점은 분명 비엘사의 축구와 닮아있다. 그러나 차이점도 존재한다. (첫 경기이긴 하지만) 일단, 비엘사처럼 전체적인 라인을 끌어올리며 상대진영부터 강한 압박을 시도하지 않았고, 윙백만 전진할 뿐 스토퍼의 공격가담은 없었다. 비엘사의 칠레는 윙백뿐 아니라 두 명의 스토퍼까지 적극적으로 공격에 가담한다. 이때 중앙 미드필더 중 한 명이 내려와 스토퍼가 빠진 공간을 메우는 시스템이다. 그러나 조광래의 3-4-2-1은 스토퍼 대신 스위퍼가 전진한다. 나이지리아전에서 이와 같은 모습이 보이지 않았지만, 스위퍼(이정수 혹은 조용형)가 전진을 통해 미드필더에 가담하는 것이 조광래 축구의 특징 중 하나다. 때문에 엄밀히 말하면, 비엘사와 조광래의 축구 스타일은 조금 다르다고 할 수 있다.

위 화면에서 보시다시피, 3-4-2-1 포메이션을 사용한 것을 확실히 알 수 있다. 앞서 언급했듯이 조광래 감독의 전술적 특징은 처진 공격수(빨간색/박지성, 조영철)들이 기본적으로 중앙에 머물며, 중앙 미드필더(파란색/윤빛가람, 기성용)과 함께 사각형을 형성하며 미드필더 싸움에서 수적 우위를 점하도록 했다는 점이다. (이는 지난 남아공 월드컵에서 스페인, 브라질이 측면 미드필더(혹은 윙어)를 다소 중앙지향적으로 배치하며 중원의 숫자를 늘렸던 것과 유사한 시도다. 스페인의 경우 이니에스타와 다비드 실바가 그랬고, 브라질은 엘라누와 다니엘 알베스(혹은 하미레스)가 그랬다)

공격지역에서 봤을 때도 처진 공격수(빨란색)와 중앙 미드필더(파란색)가 사각형 모양을 형성하며 중원을 두텁게 한 것을 볼 수 있다. 이 때문에 이날 한국은 높은 볼 점유율을 유지하며 나이지리아와의 미드필더 싸움에서 승리할 수 있었다. 원톱 박주영(형광색)도 계속해서 움직이며 상대 수비형 미드필더를 압박했고, 그로인해 한국은 전문적인 수비형 미드필더 없이도 중원 싸움에서 우위를 점했다.

다음은 수비시 대표팀의 전술적 움직임이다. 스리백(노란색)이 간격을 좁히며 상대 투톱을 견제했고, 좌우 윙백이 수비진영 깊숙이 내려와 5백을 구성했다. 그리고 처진 공격수(빨간색)들도 내려와 적극적으로 수비가담을 펼쳤다. 결과적으로 수비시에는 5-4-1의 형태로 변화를 준 셈이다. 물론 이날 이러한 움직임을 그리 많지 않았다. 한국이 전체적으로 경기를 리드했고, 나이지리아의 공격 빈도가 그리 많지 않았기 때문이다. 또한 대부분 역습 형태를 띠었기 때문에 5백이 되는 상황은 많이 발생하지 않았다. 오히려 한쪽 윙백이 전진했을 때 반대편 윙백이 내려와 순간적으로 포백을 구성하는 경우가 더 많았다.

ATTACK, 공격전개

전방 스리톱(원톱과 두명의 처진 공격수)의 핵심은 박주영(형광색)이었다. 박주영은 측면과 후방으로 끊임없이 움직이며 상대 수비진을 유인했고, 그로인해 박지성과 좌우 윙백들의 공격전개가 보다 쉽게 이뤄졌다. 특히 박주영은 기성용과 윤빛가람이 볼을 잡았을 때 후방으로 내려와 공격형 미드필더와 같은 움직임을 보이기도 했다. 이 때 박지성과 조영철은 전방 깊숙이 올라가 마치 투톱처럼 상대 수비진을 상대했다.

'캡틴' 박지성의 움직임도 인상적이었다. 이날 박지성은 조광래 감독의 의도대로 중앙으로 자주 움직이며 쇄도하는 선수에게 전진 패스를 연결하려 노력했다. 전반 초반 윤빛가람, 조영철에게 이 같은 패스가 자주 연결됐고, 전반 종료직전에는 최효진에게 완벽한 패스를 연결하며 결승골을 이끌어냈다. 박지성이 이 같은 역할을 완벽히 해냈다는 증거는, 그가 빠진 후반전을 보면 알 수 있다. 박지성을 대신해 이승렬이 투입됐지만, 이승렬의 경우 중앙에서 박지성과 같은 움직임을 보여주지 못했다. 이승렬이 향후 조영철, 이근호, 염기훈, 이청용과의 주전경쟁에서 살아남기 위해선 전술적 이해와 움직임의 변화가 필요해 보인다.

박지성은 중앙에서의 패스 뿐 아니라 문전 쇄도 또한 자주 시도했다. 박주영이 측면으로 빠졌을 때 그 빈자리를 자주 메웠고, 측면 크로스 상황에서도 박스 안으로 쇄도하며 최전방 공격수 같은 움직임을 선보였다. 비록 득점으로 연결되지 못했지만, 최효진의 크로스에 이은 문전쇄도는 상당히 위협적이었다.

좌우 윙백이 볼을 잡았을 때 전방 공격수들의 움직임도 대체적으로 좋았다. 특히 최효진의 전진패스는 매우 좋았다. 위 장면에서도 최효진이 볼을 잡자 조영철(빨간색)과 박주영(형광색)이 빈 공간으로 움직이며 상대 배후를 노렸다. 몇 차례 오프사이드에 걸리긴 했지만, 상대 수비를 흔드는데 큰 역할을 했다.

DRAWBACK, 문제점

중앙에서의 문제점은 상대 압박 시 한쪽으로 지나치게 쏠린다는 점이다. 나이지리아의 공격이 크게 위협적이지 않아, 이 같은 문제점이 반복되진 않았지만 두 명의 중앙 미드필더와 처진 공격수가 사각형을 형성했을 때 반대편에 많은 공간이 생겼다. 이러한 문제점을 해결하기 위해선, 반대편 윙백이 전진을 통해 빈 공간을 최대한 줄여야 하며 중앙에서 압박을 시도할 때 보다 타이트한 견제가 이뤄져야 한다는 점이다. 이날 미드필더 지역에서의 압박은 대체적으로 만족스러웠지만, 상대를 당황시킬 정도로 강한 압박은 아니었다. 감독 부임 이후 첫 경기였고, 무더운 날씨로 인해 체력적으로 어려움을 겪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현재 시스템의 장점을 좀 더 부각시키기 위해선 보다 타이트한 압박과 쏠림 현상을 막기 위한 간격 유지가 보완되어야 할 것이다.

이날 대표팀의 실점은 세트피스에서 나왔지만, 실질적인 위험은 역습 상황에서 발생했다. 위 장면은 수비수 곽태휘가 볼을 빼앗기며 상대에게 역습을 허용한 장면이다. 4명의 미드필더가 전진된 상태에서 수비수가 볼을 빼앗기자 상대 공격과 수비의 숫자가 같아졌고, 마르틴스에게 결정적인 득점 찬스를 내줬다. 조광래 감독의 3-4-2-1은 전문적인 수비형 미드필더를 활용하지 않는다. 때문에 스리백 수비수가 볼을 빼앗기면 상당히 위험한 상황을 맞이하게 된다. 지난 남아공 월드컵에서 칠레도 스페인전에서 이와 같은 실수를 저지르며 다비드 비야와 이니에스타에게 연속골을 내줬다. 스리백 수비수들의 안정적인 볼 처리가 요구되는 이유다.

위 장면은 후반전 나이지리아의 역습 상황이다. 측면에서 오뎀윙기가 드리블 돌파를 시도했고, 이 때 중앙 미드필더(빨간색)이 쇄도하며 마르틴스와의 이대일 패스를 통해 한국의 스리백을 무너트렸다. 정성룡 골키퍼와의 일대일 찬스에서 슈팅이 빗나가긴 했지만, 사실상 실점과도 같은 장면이었다. 위와 같은 위기가 발생한 가장 큰 이유는 상대 선수가 쇄도할 때 미드필더(윤빛가람과 기성용)의 수비가 제대로 이뤄지지 못했기 때문이다. 3-4-2-1의 경우 전문 수비형 미드필더가 없기 때문에 상대 역습시 최종 수비와 미드필더 사이에 공간이 발생할 수 있다. 때문에 두 명의 중앙 미드필더는 상대 역습시 그 공간을 좁히거나 상대 선수의 움직임을 견제 혹은 사전에 차단할 필요가 있다.

WINGBACK FORWARD, 윙백의 전진

이날 조광래호에서 가장 눈부셨던 두 명은 바로 최효진과 이영표였다. 박지성과 윤빛가람의 움직임도 뛰어났지만, 조광래 축구가 공격적이고 다이나믹하게 보인 가장 큰 이유는 좌우 윙백의 활발한 공격가담과 왕성한 활동량 때문이었다. 위 장면에서 볼 수 있듯이, 이영표와 최효진(노란색)은 마치 윙어처럼 상대 진영 깊숙이 전진을 시도했다. 이는 당초 조광래 감독이 3-4-2-1 시스템에서 시도하려 했던 공격전술이기도 하다. 박주영(형광색)이 측면으로 빠지며 상대 수비(여기선 풀백)을 유인했고 그 공간을 이영표가 파고들며 찬스를 만들었다. 과거 4-2-3-1에서 투톱과 공격형 미드필더가 하던 역할을 좌우 윙백이 전진을 통해 시도하고 있는 셈이다. 또한 기 후 언론들이 조광래 축구를 가르켜 토탈풋볼이라 부른 이유도 여기에 있다.

윤빛가람이 중앙으로 이동한 박지성에게 볼을 연결했고, 박지성이 자유로운 상태에서 쇄도하는 최효진에게 완벽한 전진패스를 연결했다. 이 또한 조광래 감독이 원하던 공격전개 중 하나다. 처진 공격수(박지성)이 상대 포백과 미드필더 사이의 공간으로 이동해 볼을 잡았을 때, 원톱 혹은 윙백이 파고들며 상대 뒷공간을 노리는 전략이다. 이 같은 움직임은 좌측의 이영표보다 우측의 최효진쪽에서 보다 많이 연출됐다. 현재 대표팀의 오른쪽 윙백 경쟁은 최효진, 차두리, 오범석 등으로 압축돼 있다. 차두리의 경우 파워와 스피드에서 높은 점수를 받고 있지만, 최효진과 같이 상대 뒷공간을 파고드는 움직임은 부족한 편이다. 오범석의 경우 최효진과 비슷한 스타일을 가지고 있지만 공격적인 측면에서 있어선 최효진이 보다 위협적이다.

후반전 이영표의 공간 침투 장면이다. 이승렬(화면 가장 밑의 빨간색)이 측면으로 빠지며 상대 풀백을 유인했고, 이영표가 중앙으로 이동한 뒤 그 뒷공간을 파고들었다. 김영권의 패스도 좋았지만, 공격수와 윙백간의 유기적인 포지션 체인지와 돌파가 인상적이었다.

FORE LIBERO, 전진 수비수

서두에 언급했듯이 이날 조광래 감독은 스리백 수비 중 스위퍼의 전진을 시도하지 않았다. 그러나 간간이 그러한 움직임을 암시하기도 했는데, 후반전 교체 투입된 조용형은 상대진영까지 전진하며 마치 수비형 미드필더처럼 볼을 전개하는 모습을 보였다. 패스 후 이내 제 자리로 돌아갔지만 조광래 감독이 인터뷰를 통해 밝힌 전진 수비수의 모습을 어느 정도 표현했다고 볼 수 있다. 만약 이 같은 시스템의 정착이 가능하다면 중원 숫자를 4명에서 최대 5명까지 늘릴 수 있다.

TASK, 앞으로의 과제

나이지리아전을 통해 선보인 조광래는 축구는 매우 희망적이었다. 첫 경기임에도 과감한 전술 변화를 시도했고, 어린 선수들을 대거 기용하며 세대교체에 대한 발판을 마련하기도 했다. 그러나 나이지리아전 승리가 조광래 감독의 밝은 미래를 보장해주는 것은 아니다. 팀을 만드는 과정에 있어서 시행착오는 반드시 겪어야할 과제다. 그리고 이는 보다 장기적인 관점에서 조광래 축구를 바라봐야 한다는 이유이기도 하다. 조광래 감독이 제시한 스리백의 3-4-2-1은 상당히 매력적인 시스템이다. 그러나 "한국 축구를 세계적인 수준으로 끌어 올리겠다"는 조광래 감독의 목표를 실현하기 위해선 해결해야 할 문제점도 많다. 우선 1) 엄청난 체력이 요구된다. 좌우 윙백은 물론 처진 공격수들은 90분 내내 끊임없이 움직일 수 있는 체력을 길러야 한다. 2) 스위칭 플레이에 대한 확실한 전술 이해가 필요하다. 현재의 30%를 100%로 끌어올리기 위해선 적지 않은 시간이 필요할 것이다. 3) 스리백 수비수들의 안정적인 볼 처리와 중앙 미드필더의 수비적인 움직임이 필요하다. 이밖에도 세부적으로 디테일하게 수정해야할 부분들이 많다. 향후 이란, 일본과의 평가전은 조광래 축구의 장단점을 보다 확실하게 파악할 수 있는 계기가 될 전망이다.

축구전문블로그 피치액션(http://pitchaction.com)을 운영하고 있다. '축구의 축구에 의한 축구를 위한 축구광(蹴球狂)시대'를 꿈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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