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여자 친구는 구미호(아래 여친구)’는 트렌디에 판타지를 얹은 얼핏 일본 드라마의 형식에 더 가깝게 느껴진다. 한국 드라마에서는 사실 이런 형식은 좀처럼 접하기 어렵다. 미리부터 예상컨대 이 드라마는 아마도 일본이라면 훨씬 더 큰 호응을 거둘 것 같다. 그런 이유로 더해질 수 있는 큰 요인은 아주 미묘하게 에로틱한 대사에 있다.

여친구를 비판적으로 보자면 한도 끝도 없을 것이다. 무엇보다 두 주연 이승기, 신민아의 연기는 CF거나 버라이어티의 연장선에서 크게 벗어나지 못하고 있어 불만을 갖자면 이 드라마를 10분 이상 견디기 어려울 것이다. 그러나 그것은 비단 이승기, 신민아 커플만이 아니다. 변희봉, 성동일, 윤유선 감히 연기력을 논할 수 없는 배우들도 역시 오버연기를 기본으로 깔고 있다.

그래서 이승기, 신민아의 드라마에 어울릴 것 같지 않은 부자연스러운 대사와 연기에 대한 평가를 잠시 보류하게 된다. 게다가 이 드라마의 대사는 누군가 오해하지 않으면 재미가 없는 구조를 갖고 있다. 첫째 시청자가 오해를 해야 하고, 둘째 드라마 속 인물들이 오해를 해야 하는 언어유희에 크게 의존하고 있다.

신민아가 이승기를 만난 이후 반복적으로 하는 대사가 있다. 먹는다, 잡아먹는다고 하다가 급기야 체육관 천장에 매달린 이승기를 향해서는 따먹는다는 말을 한다. 사실 이 부분은 심의에 걸릴 수도 있는 상당히 노골적인 대사였다. 나무에서 사과를 따먹듯이 구미호인 신민아에게 공중에 매달린 이승기를 식육하는 것을 따먹는다고 말할 수는 있다. 물론 다소 억지스러운 면이 없다고는 할 수 없다.

이 말은 성적인 내용을 담은 너무 흔한 속어를 떠올리게 한다는 점에서 오해의 소지가 매우 크다. 그 오해를 통해 이 대사에 시비를 걸자는 것은 아니다. 솔직하게 말하자면 아직은 판단 유보상태다. 결코 만만치 않은 필력의 소유자인 홍자매가 대사 전반에 채용하고 있는 이 언어유희의 본질을 겨우 2회를 보고 다 파악했다고 말하기 어렵기 때문이다. 다만 여기서 더 위험해지는 대사들은 자제를 하는 것이 좋을 것이다.

아무튼 이 공포와 에로 사이를 줄타기하는 신민아와 이승기의 대화의 절정은 맥주 파티를 벌인 후 기분이 좋아진 신민아가 이승기에게 달빛이 좋다면 꼬리를 보여주겠다고 밖으로 끌고나갈 때 나왔다. 듣기에 따라 아주 야릇해질 수도 있는 대화 내용이다.

신민아 : 못참겠다 나가자

이승기 : 나는 아직 거기까지는 마음의 준비가

신민아 : 이미 한번 경험도 했으면서 뭘 그래? 이제 우리 사이 익숙해져야지

이승기 : 미호씨 살살 천천히

이보다는 조금 약하지만 웃어야 할지 말아야 할지 시청자를 어색하게 하는 오해는 학교 서클룸에서 있었다. 신민아가 “내 가장 소중한 걸 너한테 준거야. 너무 괴로워하지 말고 네가 한 일을 책임진다고 생각해”라고 한 말을 밖에서 들은 친구들 특히 이승기를 짝사랑하는 효민을 발끈하게 만들었다. 현실감은 무척 떨어지는 상황이지만 전체적으로 만화적인 설정이라는 점에서 그러려니 하고 넘어가야 했다.

그러나 대부분의 언어유희적 상황에 대해서 다소 느슨한 판단을 하더라도 체육관 장면에서 변희봉이 전화를 했을 때의 상황은 좀 지나친 느낌이 강했다. 이승기가 놓친 휴대폰을 통해 변희봉이 손자가 어디 있냐고 묻자 신민아는 "대웅이는 지금 내 위에 있지?"라고 했고 때마침 줄에 매달린 이승기의 헐떡거리는 숨소리가 들렸다. 과연 마이크 감도가 그렇게 좋은 휴대폰이 있는 지는 의문이지만 아무튼 그 상황은 보수적인 할아버지 입장뿐만 아니라 시청자도 많이 당황스럽게 할 정도로 억지스러웠기 때문이다.

그 에피소드는 나중에 이승기가 잉어를 훔치려 집에 갔다가 할아버지에게 들킨 후 신민아에 대해서 말을 하다가 호되게 따귀를 맞는 장면으로 이어진다. 이승기가 "잠깐 데리고 살다가 보낼 거야"라고 했기 때문이다.
역시나 말하는 사람과 듣는 사람이 의미가 다른 탓에 생긴 해프닝이지만 그 오해로 인해 작가 자신도 따귀를 맞을 수 있음을 짐작하고 있는 것만 같았다. 아무튼 여친구 속 아주 많은 상황은 이 오해의 불안한 받침 위에 올려져 있다. 그것이 앞으로 독이 될지 약이 될지는 더 떠먹어봐야 알 수 있을 것이다.

매스 미디어랑 같이 보고 달리 말하기. 매일 물 한 바가지씩 마당에 붓는 마음으로 티비와 씨름하고 있다. ‘탁발의 티비 읽기’ http://artofdie.tistory.com

저작권자 © 미디어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