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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민단체도 피아(彼我)식별이 급하다[지역에서 바라본 세상] 경남도민일보 김주완 기자
경남도민일보 김주완 기자 | 승인 2008.01.01 22:07

진보·개혁세력 동반 몰락 책임…사이비와 결별해야

진보·개혁세력의 대선 참패를 둘러싼 책임 논란이 해를 넘기며 이어지고 있다. 특히 진보의 구체적인 상을 내놓지 못하고 흘러간 옛 노래만 불러대던 민주노동당에 매질이 집중되고 있다. 나 또한 '진보정당이니까 찍어달라고 하던 시대는 지났다'고 주장해왔던 사람으로서 이번 매질이 오히려 만시지탄이라는 느낌이다.

늦은 만큼 민주노동당은 더 철저히 깨져야 한다. 그래서 "왜 지금 갑자기 '종북주의'인가"라며 '진보세력의 대동단결'을 외치는 손석춘씨의 주장은 허망하다. 그의 '대동단결론'은 민주노동당마저 대통합민주신당이나 그 이전의 열린우리당처럼 '잡탕 정당'’으로 만들자는 말처럼 들린다.

   
  ▲ 경향신문 2007년 12월22일자 2면.  
 
나는 오늘날 민주노동당의 문제가 우파 민족주의자와 좌파 사회주의 및 사민주의자, 그리고 그 틈에서 눈치 보던 정치 기회주의자들의 불안한 동거에서 비롯됐다고 생각한다. 따라서 재창당이든, 분당이든 진보정당으로서 제갈길을 찾아가는 것은 당연한 것이다. 역사의 진보는 몇 년 단위가 아니라 좀 더 거시적으로 볼 필요가 있다.

민주노동당만 문제인가?

민주노동당 이야기로 시작했지만, 정작 하고 싶은 말은 이른바 '시민단체'에 대한 답답함이다. 민주노동당에게 진보정당으로서의 실패 책임을 묻는 것은 옳지만, 진보·개혁세력 전체의 동반몰락에 대한 책임을 물을 수는 없다.

나는 그 책임이 노무현 정권과 열린우리당, 그리고 전국의 수많은 시민단체와 시민운동가들에 있다고 생각한다. 정권은 재창출에 실패하고, 정당은 해체되거나 선택받지 못하는 걸로 일단 책임을 진다. 그러나 시민단체와 시민운동가는 아무런 책임을 지지 않는다. 물론 책임 질 의무도 없다.

그러나 분명한 것은 국민들이 시민단체와 진보·개혁세력을 한 묶음으로 보고 있다는 것이다. 그들 단체의 문제는 곧 진보·개혁세력에 대한 평가로 이어진다. 따라서 그들 중 누군가 책임을 지지는 않더라도 진보·개혁의 위기를 논할 때 시민단체에 대한 평가도 반드시 포함돼야 한다고 본다.

주지하듯 시민운동은 87년 6월항쟁 이후 민주화운동의 대안운동처럼 시작됐다. 이 덕분에 그동안 '정권타도'에만 집중돼 있던 과제를 각 지역과 분야별로 구체화시켰고, 풀뿌리 현장에서 참여민주주의를 실현시키는 데 큰 역할을 해왔다. 시민단체의 그런 노력이 김대중·노무현 정권의 탄생에도 상당한 기여를 했음을 부인할 수 없다.

'잡탕'이 돼버린 진보·개혁세력

하지만 바로 그 점이 양날의 칼이었다. 김대중 정권이 들어서자 개혁연(然), 진보연하던 한 무리의 시민단체 사람들이 우르르 정권의 품이나 외곽기구에 들어가더니, 노무현 정권이 들어서자 그보다 더 많은 무리가 또 우르르 들어갔다.(엄밀히 말하자면 김영삼 정권 때부터 그랬다.)

원래 꼴통 보수주의자였던 사람들도 김대중·노무현 정권의 품에 들어가 짐짓 개혁주의자 행세를 했다. 김대중 정권이 만든 '제2건국위원회'는 지역토호세력의 잔치판이었다. 거기에 시민운동가들도 들어가 어울렸다. 그러나 정권 말기가 되자 토호들은 모두 뛰쳐나와 앞다퉈 한나라당에 들어갔다.

노무현 정권이 만든 '지역혁신협의회'도 다르지 않았다. 진보와 보수, 개혁과 수구, 시민운동가와 토호들이 또 한번 '잡탕'이 됐다. 역시 정권 말기가 되자 노무현 대통령이 끌어들인 김혁규(전 경남도지사) 전 열린우리당 의원은 이회창 신당에 줄을 섰고, 그들 따라 열린우리당에 갔던 장인태(전 경남도 행정부지사) 전 행자부 차관은 한나라당에 입당했다.

신(新)관변단체의 출현

시민단체들은 김대중·노무현 정권과 그에 앞선 김영삼 정권 때부터 사상 유례없는 '대접'과 '특수'를 누렸다. 노태우 정권 이전까지만 해도 '민주투사'였던 시민단체의 실무간사들은 정부와 지방자치단체의 입맛에 맞는 프로젝트 기획자로 변신했다. 새로운 민간단체 지원예산이 편성됐다는 소문이 나돌면 설탕을 본 개미떼처럼 맞춤형 프로젝트가 생산됐다. 예산지원을 노리고 급조된 단체도 줄줄이 생겨났다.

예산을 받아 진행된 사업 중 상당수는 '부실' 혐의가 짙었지만 관리와 감독은 제대로 이뤄지지 않았다. 프로젝트 사업에서 가짜 영수증쯤은 아무렇지도 않은 일이 됐다. 언론도 건물이나 교량, 도로의 '부실공사'는 곧잘 지적했지만, 시민단체의 '부실프로젝트'와 '예산 떼먹기'는 제대로 짚지 못했다. 취재접근 자체가 어려웠던 탓이다. 시민단체 역시 스스로 불리한 정보에 대해서는 관료조직 이상으로 철벽이었다.

이렇게 많은 시민단체들은 '신(新)관변단체화'했고, 시민운동가들은 지원금을 따내기 위한 프로젝트 장사꾼이 됐다. 시민단체가 장사가 된다 싶으니 사이비 시민운동가들도 줄을 이어 생겨났다. 과거 민주화운동이나 이후 시민운동에서 검증된 바 없는 교수나 의사, 약사, 변호사들이 시민운동에 줄을 댔다. 시민단체는 그들의 명망이나 재력에 눈이 어두워 각종 위원장이나 본부장, 이사, 위원 직함을 붙여줬다. 심지어 요즘은 지역개발을 위해 한시적으로 만든 이익단체도 시민단체라는 이름을 쓴다.

그들은 이렇게 뒤섞였다. 국민은 진보와 보수, 진보와 개혁을 구분할 수 없었다. 모두가 한통속이었다.

   
  ▲ 경향신문 2007년 12월24일자 6면.  
 
이제는 갈라설 때가 되었다

한나라당의 정권 탈환은 이렇게 뒤죽박죽이 되어버린 피아(彼我)를 식별할 수 있는 좋은 기회다. 그러나 대선 이후 피아 식별의 움직임이 일고 있는 곳은 민주노동당 뿐이다. 시민단체 안에는 그런 목소리를 낼 사람도 없고, 기풍도 사라져버렸나 싶어 답답하다.

그래서 나는 두 가지를 제안한다.

첫째, 원론으로 돌아가 '시민단체'라는 이름부터 정리하자. 정부나 자치단체로부터 사업비는 물론 경상비까지 지원받는 단체를 일컬어 '관변단체'라고 한다. 경상비까진 아니더라도 예산을 받아 사업을 수행하는 단체는 '준관변단체' 쯤으로 부르는 게 마땅하다. '관변'이라는 말이 기분 나쁘다면 '정부보조단체'로 정리해도 좋다. 정부가 해야 할 공익사업을 보조적으로 수행하는 단체라는 뜻이다.

시민단체는 그야말로 시민의 자발적인 회비와 참여로 움직이는 단체여야 한다. 그럼에도 지금 전국 각지에 구성돼 있는 '시민사회단체협의회'는 대부분 '정부보조단체'들이 장악하고 있는 게 현실이다. 그런 단체들은 스스로 '시민단체'라는 이름을 쓰지 말아야 한다. 이건 정말 어렵게 활동하고 있는 '진짜 시민단체'들까지 죽이는 일이다.

둘째, '정부보조단체'가 국민의 세금으로 수행하는 모든 프로젝트의 팸플릿이나 자료집에는 반드시 지원받은 예산의 액수와 명목, 지원기관을 명시하도록 하자는 것이다. 예를 들어 '이 행사는 행정자치부의 ○○○지원사업에 따라 ○○○항목의 사업비 ○○○만 원을 ×××단체가 지원받아 이뤄졌습니다'는 내용을 밝히자는 것이다. 그렇게 하면 지원된 금액에 비해 터무니없는 부실프로젝트는 크게 줄어들 것이다. 또한 국민은 내 세금이 어디에 쓰이고 있는지를 알 수 있다.

이런 최소한의 자정과 피아 식별이 안 된다면 아래와 같이 '시민단체'의 정의를 아예 바꿀 수밖에 없다.

시민단체(市民單體) : [명사] 한국의 기회주의적 지식인과 전문가들이 정부 및 다국적 기업들과 긴밀하게 관계를 맺고 있는 사적·공적기금들을 써먹으려는 의도에 따라 만든 단체.(제임스 페트라스, ‘NGO는 없다, 운동귀족이 있을 뿐’, <월간 말> 2000년 5월호에서 응용)

   
   
1991년 진주에서 일어난 한 시국사건이 전국 언론에 의해 완벽하게 왜곡되는 과정을 직접 목격한 것을 계기로 지역신문 기자로 살기로 마음먹었다. <진주신문>과 <경남매일>을 거쳐 6200명의 시민주주가 만든 <경남도민일보>에서 자치행정부장으로 일하고 있다. 지역현대사와 언론개혁에 관심이 많아 <토호세력의 뿌리>(2005, 도서출판 불휘)와 <대한민국 지역신문 기자로 살아가기>(2007, 커뮤니케이션북스)라는 책을 썼다. 지금의 꿈은 당장 데스크 자리를 벗고 현장기자로 나가는 것이다.

경남도민일보 김주완 기자  wan@idomi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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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 댓글 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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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김주완 기자 2008-01-04 11:30:12

    무슨 말씀인지 잘 이해는 안되지만, 바람몰이보다는 '실력'을 키워야 한다는 말로 알아들으면 될까요?   삭제

    • 김주완 기자 2008-01-04 11:27:48

      "NGO는 신자유주의 또는 미국 제국주의로 요약되는 민중억압체제에 정면으로 대항하는 대신 빈민 대상 무료식당을 만드는 식으로 민중을 위로하고 다독거리는 데 역량을 기울였다. 이로써 민중들을 탈동원화시키고 민중운동을 파편화시킴으로써 그 반대급부로 NGO 사람들이 마침내 정부 산하기관 운영자가 되거나 심지어는 대중적인 영향을 끼칠 수 있는 직위, 예컨대 여성·시민참여·민중권력 같은 분야의 장관으로 기용됐다."   삭제

      • 김주완 기자 2008-01-04 11:24:13

        “NGO는 최근 전세계적으로 야망을 지닌 고등교육 학력을 가진 계급들에게 가장 유력한 신분상승 수단이 되었다. 즉 학계, 언론계, 전문가 등의 계층은 NGO에서 수지가 맞는 경력관리를 하기 위해 보상이나 대가가 거의 없는 좌파운동으로 향했던 초기여행을 포기했다.”   삭제

        • 김주완 2008-01-04 11:23:29

          이해해 주셔서 고맙습니다. 서울은 잘 모르겠지만 지역에서, 특히 경남지역에서의 문제는 심각합니다. 제임스 페트라스의 탄식이 딱 들어맞아 가고 있습니다. 안타까운 일입니다.   삭제

          • 신학림 2008-01-04 09:45:37

            기사는 진작 읽었는데 댓글을 늦게 달아 죄송할 따름.

            폐부를 찌르는 글 감사 또 죄송...   삭제

            • 섬마을 2008-01-03 00:26:05

              수고 하십니다 ....
              이번 대선의 결과를 보자면 간단 하다고 봅니다
              진보 세력은 정정 당당하게 정치를 시작 하고 더이상 민심을 이용을 하지 말았으면 합니다
              각 사회 단체역시 순수한 민심에 동요를 주는 바람 몰이는 하지 말았으먼 합니다
              하고 싶은 이야기는 이회창씨 같은 경우 대권의 이상을 아직도 버리지 못하고 총선 운운하며 불쌍한 이미지를 보이지 말아야 하며 정동명씨 그 동일하다고 봅니다......
              참신한 "   삭제

              • 양문석 2008-01-02 22:11:06

                과정을 거친다면 다시금 부활하는 시민사회로 거듭날 있을 겁니다...그렇게 쉽게 무너지 않을만큼의 내공과 자정능력을 가지고 있다고 자부합니다...아프게 비판한 내용이 공염불되지 않도록 이를 악물고 피를 흘리더라도 부활의 기운을 빠른 시간 안에 피워 올리겠습니다...죄송합니다...   삭제

                • 양문석 2008-01-02 22:08:52

                  시민단체에서 일하고 있는 활동가의 한 사람으로서
                  아래 님께서 지적하신 언론단체의 한 구성원으로서
                  김주완 기자와 mt님의 저적을 뼈아프게 받아드립니다...
                  따뜻한 시절이었습니다...방송위원회 구성부터 공영방송 사장 이사 구성이 진행중이었던 지난 해 여름 처음으로 사무처장을 맡았는데...온갖 인사민원에 제게 집중했었죠...황당했습니다...이미 시민단체는 그렇게 썩어 있었죠...하지만 다시 한번 피아식별의...   삭제

                  • 김주완 기자 2008-01-02 14:49:38

                    물론 거절하고 참여정부의 언론홍보방식을 비판하는 기사를 썼지만...
                    그러나 무엇보다 진보를 표방하는 언론의 책임은 그런 언론 역시 독자(유권자)에게 진보적 대안을 보여주지 못했다는 것입니다. 명색이 진보언론이라면서 누군가가 잘 가공해 내놓은 걸 단순전달만 하려 했다는 점에서 반성해야 할 점이 많습니다. 저 역시 반성해야 하고요...   삭제

                    • 김주완 2008-01-02 14:45:34

                      그런 언론과 언론단체가 있다면 역시 반성해야지요. 저희도 그런 유혹을 받은 적이 있었습니다.   삭제

                      11개의 댓글이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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