난민 문제는 유럽에서나 뜨거운 감자인줄 알았지만 이제는 아니다. 제주도의 예멘 난민 문제가 연일 언론에 오르내리고 있다. 난민 수용을 반대한다는 취지의 주장을 내놓는 사람들과 이들의 주장이 사실과 맞지 않다는 반론이 부딪친다. 언론은 ‘팩트체크’ 코너를 통해 사실관계를 바로잡는 역할에 나섰다. 우리는 세상 오만 것을 다 믿지 못하지만 언론이 언론다운 일을 이렇게 할 때도 있다.

난민 수용을 반대하는 사람들이 묘사하는 한국의 미래는 난민에 의한 무질서 그 자체일 것 같지만 ‘팩트체크’들이 전하는 진실은 전혀 다르다. 오히려 우리나라는 난민에 비우호적인 국가 중 하나이며 이번에 문제가 된 예멘인들도 사실상 방치되다가 국가인권위의 권고에 따라 최소한의 조치를 취한 것에 불과하다.

팩트체크를 하든 말든 같은 주장은 반복되고 있다. 적어도 공론의 장에서 제기되는 주장을 보면 난민 수용 반대론이 최소한의 휴머니즘을 포기하지 않고 있다는 항변이 담겨있는 듯 하다. 인류애적 가치에 따라 난민 일반을 수용해야 한다는 주장에 반대할 마음은 없지만, 예멘인들은 ‘진정한 난민’이 아니기 때문에 우리가 수용해선 안 된다는 논리가 그렇다. 이 주장에서 제주도의 예멘인들은 그저 일자리를 찾아서 온 불법체류자들일 뿐이다. 이 맥락에서 ‘난민’은 신분세탁을 위한 허울 좋은 명분의 자리를 차지한다.

이 주장에 내포돼있는 냉소주의적 현실인식을 발견하는 것은 어렵지 않다. 우리가 난민 수용을 거부하는 이유는 윤리를 포기한 ‘인간백정’이어서가 아니라 난민들이 우리를 신의성실하게 진정성을 갖고 대하지 않기 때문이다. 우리는 속아 넘어간 피해자이며, 그렇기에 우리의 무제한적인 적대 행위는 정당한 ‘복수’이다. 여기서 중요한 점은 “예멘인들은 가짜 난민이다”란 규정은 증명된 바 없는 추측에 불과하다는 것이다. 즉, 속아서 복수를 하는 게 아니라 미리 속을 것을 전제하고 감행하는, 말하자면 사전적(事前的)복수이다.

인터넷의 논리는 좀 더 노골적이다. 난민 수용을 긍정적으로 말하는 사람들은 현실을 모르는 철없는 이상주의자이거나 ‘인권팔이’들이다. ‘인권’을 명분으로 내세우며 사실은 사익을 추구하는 ‘인권팔이’를 비난하는 사람들은 크게 두 가지 측면에서 난민 수용의 부정적 영향을 우려한다. 첫 번째는 위에서 보는 것처럼 난민들이 부당한(불법체류는 불공정하다!) 수단을 통해 ‘돈’과 ‘일자리’를 가져간다는 것이다. 두 번째는 이슬람은 여성에 억압적이므로 난민들이 범죄를 저지를 수 있다는 것이다. 이해득실과 안전은 오늘날 한국인들이 가장 예민하게 반응하는 키워드이다.

특히 난민과 성범죄를 연결 짓는 논리는 독일에서 이미 맹위를 떨친 바 있다. 트럼프식 고립주의에 맞서는 유럽의 대안으로 떠올랐던 앙겔라 메르켈 독일 총리의 지도력은 난민들에 의한 성범죄로 악화된 국내 여론 때문에 심대한 타격을 받았다. 난민들의 범죄 행각이 정치적 이득이 된다는 게 증명되자 극우세력은 가짜뉴스로 없던 범죄까지 만들어내 혐오정서를 재생산했다.

그러나 합리적으로 따져볼 필요는 있다. 쾰른에서 성범죄를 저지른 난민들을 제주도의 예멘인과 동일한 존재로 볼 수 있는 것일까? 성범죄는 오로지 난민이라는 조건 때문에 저질러진 것인가? 그렇다면 옥스팜 등 난민구호단체 직원들이 난민을 대상으로 저지르는 성범죄는 어떨까? 이른바 제3세계에 대한 전형적 착취처럼 보이는 이 문제는 지금도 현재진행형이다. 난민이나 난민구호단체나 성범죄를 저지르긴 매한가지니 ‘무승부’라는 말을 하려는 게 아니다. 성범죄와 난민의 연결고리에 대해 이성적으로 생각해보자는 것이다. 결국 이 역시 상대가 속일 것이 틀림없으므로 속기 전에 행동하자는 태도의 결과가 아닌가?

예를 들어 이명박 박근혜 정권이 종북주의자를 색출해 불이익을 안기려 한 것은 과거 민주정부에서 좌파들이 불순한 의도를 갖고 헤게모니를 장악해 애국자들을 탄압한 것에 대한 ‘복수’였다. 그래서 박근혜 정권은 ‘비정상의 정상화’라는 슬로건을 내걸었다. 그런데 시간이 지나고 나서 우리가 확인한 것은 “불순한 상대에게 복수한다”는 명분은 기만에 불과했고 오히려 이명박 박근혜 정권의 관계자들이 사적 이익을 챙겼다는 사실이다.

제주에 입국한 예멘인들이 제주출입국·외국인청에서 지난 18일 긴급 구호 물품을 받고 있다. (연합뉴스)

난민 문제도 마찬가지일 수 있다. 한국의 기득권은 다문화주의를 도구적으로 내세우지만 이는 어디까지나 통제 가능한 저임금 또는 숙련 노동력으로서의 이주민을 겨냥한 것이지 난민을 대상으로 하지 않는다. 즉, 난민은 별로 쓸모가 없다. 이것 역시 체제가 난민에 비우호적인 태도를 취하는 하나의 원인일 것이다. 이런 상황에서 난민을 바라보는 대중의 혐오적 시선은 인종주의에 기댄 극우정치의 프레임을 강화하면서 동시에 기득권의 의도를 우회적으로 관철한다. 속고 이용당하는 데 이력이 난 우리는 이제 전적으로 난민을 믿을 수도 없고 불신할 수도 없게 되었다. 어느 경우든 속고 이용당하기 때문이다. 상대를 믿을 수 없게 된 것을 넘어 “상대가 속인다”는 인식 자체도 믿을 수 없게 되었다면 이제 우리는 어떻게 해야 할까?

관점을 뒤집어야 한다. 우리를 속이는 것이 누구인가가 아니라 진실이 무엇인가로 초점을 옮겨야 한다. 제주도의 예멘인들 중에 사기꾼이 있을 수도 있다. 그러나 그게 문제의 본질은 아니다. 난민의 자격에 대해선 심사를 하게 돼있고 이들을 어떻게 얼마나 수용할 것인가는 어차피 제도적 틀 안에서 따로 판단할 문제이다. 우리가 주목할 필요가 있는 것은 애초에 이 난민들이 발생한 이유가 무엇이냐는 거다.

예멘은 장기간의 내전을 겪어온 나라다. 처음에는 왕당파와 공화파가 싸우기 시작했고 그 이후에는 공산주의-분리주의자들이, 나중에는 이슬람 근본주의자들이 내전의 불씨를 이어왔다. 지금은 예멘 정부군과 시아파 이슬람 성향의 후티 반군 간 싸움이 치열하다. 끝나지 않는 내전은 한 국가의 문제이기도 하지만 중동 전체의 정세와도 관련이 있다. 중동의 갈등은 시아파-근본주의-공화주의의 결합으로 표현할 수 있는 이란 혁명 이후 확대일로를 걸어왔다. 수니파와 시아파가, 세속주의와 근본주의가, 왕당파와 공화파가, 각 민족과 부족이 서로 끝없는 항쟁을 계속하고 있다. 예멘 내전도 이런 구도 하에서 진행되고 있다. 사우디아라비아와 이란의 대리전 성격이 짙다는 것이다.

오바마 정권이 주도한 이란 핵합의는 이슬람국가(IS)의 발호라는 악조건 속에서도 중동에 새로운 질서를 가져올 수 있다는 기대를 갖게 했다. 하지만 트럼프 행정부는 이를 뒤집고 사우디아라비아가 주도하는 반이란 전선 확대를 의도하고 있다. 얼마 전 예루살렘으로 미 대사관을 이전하기로 한 것은 이러한 움직임에 쐐기를 박는 일이다. 하마스-헤즈볼라-시리아-이란으로 이어지는 시아파 벨트가 이스라엘 및 사우디아라비아와 충돌하는 시나리오에 불을 붙이는 것이기 때문이다.

트럼프 행정부가 중동의 갈등을 키우는 것은 국내 기독교 복음주의자들의 지지를 획득하기 위해서이다. 같은 논리로 트럼프 행정부는 중간선거에서의 승리를 위해 한반도의 군사적 갈등 수위를 줄이는 방향으로 한 걸음씩 움직이고 있다. 즉, 트럼프 행정부의 대외전략은 예멘의 난민들에겐 더 큰 절망을, 한국인들에게는 실낱같은 희망을 선사하고 있는 셈이다.

이런 사실이 난민을 모조리 당장 내쫓자는 주장에 대한 윤리적 반론이 못 된다면 아랍에미리트 얘기를 떠올려보자. 이명박 정권이 아랍에미리트와 부적절한 수준까지 군사적 유대관계를 형성하는 바람에 문재인 정권이 곤혹스러운 상황에 빠졌던 게 바로 얼마 전이다. 아랍에미리트의 실력자가 방한과 우리 정부 주요 인사의 답방이 이어지면서 사태는 봉합된 것 같다.

그러나 우리가 아랍에미리트에 원전을 수출하고 아크부대 파병과 무기 수출을 끼워 팔기 했다는 사실 자체는 변하지 않았다. 파병 이전 5년간 393억원 규모였던 한국의 아랍에미리트 무기 수출액은 파병 후 5년간 1조2천억원으로 늘어났다. 아랍에미리트는 사우디아라비아를 도와 예멘 내전에 개입하고 있다. 우리 덕분에 아랍에미리트는 후티 반군들을 좀 더 효율적으로 공격할 수 있게 되었다. 또, 예멘의 젊은 남성들은 정부군 또는 후티 반군에 가담하라는 더 큰 압력에 직면하게 되었다. 난민들이 대다수 젊은 남성인 이유가 여기에 있다. 이러한 진실을 마주하고도 난민 수용 거부를 말할 수 있다면, 그것은 과연 우리가 ‘인간백정’이 아니기 때문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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