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페미니스트 후보의 '찢긴 얼굴'[도우리의 미러볼] 신지예 서울시장 후보 벽보 훼손 사건 유감
도우리 객원기자 | 승인 2018.06.05 14:20

[미디어스=도우리 객원기자] “얼굴과 말은 서로 연결되어 있다. 얼굴은 말한다. 모든 말을 가능하게 하고 모든 말을 시작하는 것이 얼굴이다.”

프랑스 철학자 에마뉘엘 레비나스는 ‘얼굴’에서 윤리를 발견했다. 레비나스는 우리가 누군가의 얼굴을 보는 일은 단순히 동공이나 얼굴의 형태 따위를 관찰하는 것이 아니라고 한다. 타인을 마주하는 동안은 아무 말 안 하기가 어렵듯이, 얼굴에는 우리를 자극하는 어떤 ‘목소리’를 듣게 된다는 것이다. 인간의 얼굴이 동물의 머리와 구별되는 이유다.

신지예 녹색당 서울시장 후보 선거 벽보(신지예 후보 캠프 제공)

페미니스트 신지예 서울시장 후보의 얼굴이 찢기고 있다. 6·13 지방선거를 앞두고 붙인 선거 벽보가 연이어 훼손됐다. 지금까지 확인된 훼손 벽보만 해도 강남에서만 21건, 동대문 1건, 노원 1건, 구로 1건이다. 벽보뿐만이 아니다. 인터넷 커뮤니티에서는 신지예 후보 외모를 조각조각 뜯어 평가하는 인신공격과 성희롱이 난무하고 있다.

신지예 후보의 얼굴의 무엇이 이들의 얼굴을 찡그리게 했을까? 박훈 인권 전문 변호사가 개인 SNS에 올린 게시물에서 그 속내를 알 수 있다. 그는 신 후보 선거 벽보에 대해 ‘1920년대 이른바 계몽주의 모더니즘 여성 삘이 나는 아주 더러운 사진을 본다. 개시건방진. 나도 찢어 버리고 싶은 벽보다. 그만하자. 니들하고는.’이라고 평했고, 많은 이들이 이에 동조했다. 이후 박 변호사는 ‘페미니즘과 후보를 비방하는 관점은 전혀 없이 사진 구도와 벽보의 분위기에 대한 저의 비평’이라고 변명해 근거 없는 불쾌함이었다는 민낯을 드러냈다.

프랑스 화가 에두아르 마네의 누드화 <올랭피아>에 대해 당시 남성들이 드러낸 불쾌함도 같은 맥락이었다. 고귀한 여인의 부드러운 얼굴이 아닌, 감히 창녀 따위가 정면을 똑바로 바라보는 그림이라며 항의했기 때문이다. 이는 ‘안녕하십니까’ 대자보들 중 성 판매 여성의 대자보는 자격이 없다며 찢기고 모욕당한 것과 같은 이유다. 대단치 않은 여성의 당당한 시선은 ‘시건방진’ 일인 것이다. 신 후보의 얼굴에 대한 반응 역시 ‘젊은(모더니즘) 여성 따위가 페미니스트라며 정치에 대한 목소리(계몽주의)를 낸다’는 데 대한 불편함에 다름 아니다.

장강명의 소설 <표백>에는 이런 대화가 오간다. “남자들이 예쁜 여자애의 관심을 얻는 것보다 더 중요하게 생각하는 게 뭔지 알아요?”, “예쁜 여자랑 섹스하는 거?”, “예쁜 여자애에게 무시당하지 않는 거요.” 강남역 살인사건 가해자도 ‘여자들이 자기를 무시해서’ 죽였다고 밝혔다. 숱한 ‘이별 살인’의 이유도 ‘감히 자신을 거부해서’다. 여성들은 남성들의 비루한 자존심을 위해 ‘기’를 살려줘야 했다. 그렇지 않으면 ‘시건방진’ 여자가 되어 공격에 노출돼야 했다.

그래서 여성들에게 허락된 얼굴은 일부에 불과했다. 무시한다는 기분이 들지 않게 잘 웃어야 하지만 너무 헤프면 안 된다. 노 메이크업은 예의 없지만 ‘무섭지 않게’ 적당히 꾸며야 한다. 여성 연예인들이 잘 웃지 않으면 ‘인성, 태도 논란’으로 불거지는 이유다. 하지만 여성의 얼굴에서는 눈물도 흐르고, 포복절도도 하고 유혹의 시선을 보내는가 하면 경멸로 일그러뜨릴 수 있다. 인간의 얼굴이기 때문이다. 

반면 남성의 얼굴은 '무뚝뚝함'이 기본 표정이다. 남성 후보들의 선거 벽보 중에는 잔뜩 찡그린 얼굴이거나, 한껏 가슴을 내밀고 양팔을 뒤편에 걸치는 자세 등의 모습도 어렵지 않게 찾아볼 수 있다. 그래도 벽보를 찢기는 정도의 위협은 전혀 받지 않는다. 여성 후보들보다 훨씬 '시건방진' 표정의, 중년 남성 얼굴 투성이의 선거 벽보 풍경은 정치판이 중년 남성들 위주인 ‘아재 독식 정치’임을 방증한다.

하지만 페미니즘은 시대정신이다. 낙태죄 폐지, 동성결혼 법제화, 각종 성차별 해소는 세계적 추세다. 우리 대통령도 본인이 페미니스트라고 선언하지 않았나. 그래서 페미니스트를 전면에 내세우는 신지예 후보는 우리 사회에 반갑고 꼭 필요한 인물이다. 이러한 흐름에 딴죽을 거는 것이야말로 시건방진 일이다.

신지예 후보의 얼굴은 말한다. 여성들의 모든 얼굴을 가능하게 하고, 모든 말을 시작하게 만들어보자고. 신지예 후보의 찢긴 얼굴은 말한다. 당당한 표정을 이유로 공격받는 것이야말로 이 시대 시건방진 페미니스트 정치인이 필요하다는 목소리라고.

도우리 객원기자  webmaster@mediau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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